목우씨의 詩詩한 소통(489)

제489편 :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원규 시인 편 ♡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옛 애인의 집](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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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

대학 들어가고 나서부터 첫해부터 지리산에 올랐습니다. 마침 직장도 학교라 방학이면 시간이 났으니 십여 년간 해마다 서너 차례 올랐습니다. 그러니 지리산은 제가 좋아하는 산이 되었지요. 가장 ‘아름다운 산’ 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역사적 한(恨)을 많이 간직한 산’ 하면 지리산이 될 겁니다.
오늘 시는 지리산 아래 살며 대처로 나들이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한 번은 바이크 타고 지리산 둘레를 돌아보는 시인이 쓴 시입니다.


각 연에 나오는 지명은 다 지리산 10경(景) 할 때 나오는 명소입니다.
1. 천왕봉 일출, 노고단 구름바다
2. 반야봉 저녁노을, 피아골 단풍
3. 불일폭포, 벽소령 하얀 달빛
4. 세석평전 철쭉, 칠선계곡
5. 연하봉 선경, 섬진강 푸른 물

오늘 시를 이해하면 제목과 2행에 나오는 ‘행여’, 3연과 6연에 나오는 ‘굳이’ 두 시어를 유심히 봐야 합니다.
다른 곳에선 어서어서 찾아오라고 아우성인데 처음부터 ‘행여’라 합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지리산 찾을 마음이 생긴다면 오라는 뜻이니. 몸이 건강하고 시간이 나는 사람 가운데서도 올라가고 싶은 사람만 지리산 찾아오라니요. 시 읽는 독자를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요.
다음 '굳이'도 마찬가집니다. 오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도 갈 데 없어 이곳저곳 찾다가 마땅한 곳 없다면 지리산으로 오시라고. 언뜻 읽으면 가고픈 한가닥 정마저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참 예의라곤 시궁창에 던져버린 듯한 표현입니다.

허나 우린 잘 알지요. ‘행여’와 ‘굳이’ 쓰임의 의도를. 원뜻 그대로의 쓰임이 아니라 반어적으로 쓰였음을. 즉 오십시오, 제발 오십시오 하는 간절함의 표현임을.

물론 이를 반어적 아닌 문맥 그대로 읽어도 됩니다. 어쩌면 지리산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들끓는 걸 바라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특히 산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오는 것을 꺼려 썼을지도.

몇몇 시행만 간추려 봅니다.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원추리꽃을 보면 꺾고 싶은 욕심을 품지 말고, 아름다움을 그저 맑게 바라볼 수 있는 이슬 같은 눈으로 오라고 합니다. 웅장하고 장엄하게 펼쳐진 노고단의 구름바다를 굽어보면 우리네 마음도 바다처럼 넓어지고 구름처럼 가벼워질 것입니다.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지리산 벽소령 달빛은 유명합니다.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으로 보이는데, 달빛이 해처럼 환하다고 해서 눈이 시릴 정도라 합니다. 일반적으로 달빛은 어둠을 밝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 후회와 실패로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 오면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까마득히 높이 솟은 지리산에서도 세석평전은 특이한 지형입니다. 30만 평 규모의 넓고 광활한 평원지대가 펼쳐지니까요. 이곳에 봄이면 철쭉꽃이 만발하여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우리 민족의 아픈 한이 담겨 있습니다.
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민초들의 피맺힌 한이 서린 곳입니다. 세석평전에 올 때는 그곳 철쭉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그 철쭉빛과 같은 빛깔의 피아픔이 어려 있음을 알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연하봉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우리는 버릇처럼 '못 살겠다' '죽고 싶다' 하는 말을 남발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연하봉 벼랑과 고사목 (죽어서도 꼿꼿이 서 있는 나무)을 보라고 합니다. 벼랑은 생명이 붙어있는 초목에게도 척박하고 모진 환경입니다. 거기에 죽어서도 넘어지지 않고 비바람을 견디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사목을 본다면 죽고 싶다는 말이 쑥 들어가겠지요.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사람의 변덕과 지리산의 변덕은 다릅니다. 사람은 자기 편의에 의한 변덕이라면 지리산은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변덕입니다. 지리산에 '행여' '굳이' 올까 말까 망설였다면 오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정말 초지일관 좋아하는 사람만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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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규(1962년생) : 경북 문경 출신으로 1984년 [월간문학]과 1989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중앙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지리산 밑 오두막집에 거처하면서 시를 쓰며 지리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삶.
(혹 지리산에 가시면 박남준과 이원규 두 시인을 만나보세요. 이미 지리산이 된 두 시인은 시를 쓰면서 지리산 지킴이로 생명평화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 첫 사진은 피아골 단풍이며, 둘째는 세석평전 철쭉인데, 둘 다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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