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이베리와 취업 앞둔 여고생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27)

* 아사이베리와 취업 앞둔 여고생 *



<에피소드 1 - 맛 없는 아사이베리>



며칠 전 일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20여 km 떨어진 마을에 퇴직 후 텃밭 일구며 사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선배님, 5년 된 아사이베리 베어 내려 하는데 혹 필요하세요?"

그의 말에 바로 답했습니다. '아니!' 하고. 5년생이면 제법 커 옮겨 심은 이듬해엔 수확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왜? 아사이베리는 블루베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영양학적인 면에서는 블루베리를 능가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아니 그러면 더욱 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베리’라는 이름의 과일은 그 종류가 무려 아홉 가지나 됩니다. 우리나라에 나는 복분자와 구기자를 제외하고도 '블루베리, 아사이베리, 크랜베리, 아로니아, 마키베리, 진생베리, 라자베리'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아사이베리는 아마존 지역에서 자라는 야자수 열매로 ‘오메가3, 식이섬유, 마그네슘’ 등이 많이 들어 있어 현지에서는 ‘생명의 나무 열매’라 불립니다. 덧붙이자면 베리 가운데서 신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혈당을 조절하는 등 우리 몸에 가장 필요한 요소를 지닌 작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사이베리 재배 농가에선 요즘 그 나무를 베어내고 다른 작물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왜일까요? 저에게 전화한 후배 말고도 다른 이로부터 아사이베리 뽑아줄 테니 가져가란 말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이렇게 기피 작물이 된 까닭을 뉴스에선 너무 많이 심어 수지가 맞지 않다고 하는데 사실은 생과(生果)로 먹기엔 맛이 너무 떫고 쓰기 때문입니다.

잠시 블루베리랑 비교해 볼까요? 영양 면에서야 아사이베리보다 떨어지지만 블루베리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첫째 맛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영양이 많고 약성(藥性)이 뛰어나다고 해도 생과로 먹기에 좋아야 버티지 그렇지 않으면 버티지 못합니다. 굳이 약으로 먹을 바에야 그와 비슷한 건강보조식품이 숱하게 많은데... 그런 점에서 아사이베리가 밀린 겁니다.




<에피소드 2 – 취업 앞둔 여고생>



중등학교 학생부 교사들에게 ‘합동교외 생활지도’ 나가는 업무가 존재했던 아주 오래전 이야깁니다. ‘합동교외 생활지도’란 말 그대로 생활지도 담당교사들이 모여 합동으로 학생 출입 제한 구역에 나가 교칙에 벗어나게 행동하는 학생을 단속하는 일을 말합니다.

시간 외의 업무라 학생부 교사들은 싫어했습니다만 교외지도 담당교사는 반드시 나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담당교사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다 보니 서로 안면을 트게 되어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게도 거기서 만나 친밀한 사이가 된 동갑인 선생님이 생겼습니다. 그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아 조금 낯가림이 심한 저에게 먼저 다가와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합니다. 제가 “ㅇㅇ공고에서 왔습니다.” 하자 대뜸 받아 “아이구 사돈, 참 반갑습니다.”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 저는 ㅇㅇ여상에서 나왔는데, 우리 학교 가시내들이랑 그쪽 학교 머스마들이 서로 많이 짝짜꿍이 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러 그쪽 학교 여학생과 우리 학교 남학생이 함께 가출하여 난리를 피운 적 있었으니 사돈이란 말이 제대로 들어맞는다 할까요.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오른쪽 주인공이 뚱뚱해서 사랑 잃고 직장 잃는 내용을 그림)



그 뒤 ‘합동교외 생활지도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재미있는 일화로 주고받다가 친하게 지냈고, 모임 끝난 뒤 꼭 술 한 잔씩 하는 사이가 되면서 나중에 모임이 아니더라도 가끔 둘이 만나 술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꼭 저랑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하도 말투가 착 가라앉아서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취소하고 나갔습니다.

“정 선생, 나 오늘 정말 교사 된 걸 후회했다.”

“아니 왜? 무슨 일 있었어?”

한참 열받아하더니 꺼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상에서 3학년 담임을 하면서 진로지도 담당(전에 학생부에서 진로과로 변경됨)이 되다 보니 학생들 취업 시키는 일을 맡았나 봅니다. 그 도시 소재 제법 큰 합동세무사에서 여직원 1명 채용한다는 공고를 받고 ‘만세!’를 불렀답니다.

세무사 사무실 일은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괜찮고 근무 환경도 좋아 선호하는 직종이라 했습니다. 그 채용공고에 자기네 반 한 학생이 마침 떠올랐다고 합니다. 가장 공부를 잘할 뿐만 아니라 아주 착해 꼭 좋은 곳에 취직시키고 싶은 학생이었다고.

(영화 [미녀는 괴로워] 주인공의 실제 뒷모습)



그런데 거기서 한 명을 뽑되 반드시 두 명을 보내야 한다는 조건이었답니다. 그러니까 임의채용이지만 공개채용이라는 요식 행위를 거치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경우가 흔하여 자기가 마음에 둔 학생 한 명과 좀 격이 떨어지는 학생 한 명을 끼워 보냈다고 합니다.

곁들이로 보낸 그 여학생은 생활기록부 종합란에 따르면 1학년 때는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학생’이었고, 2학년 때는 ‘규칙을 잘 지키지 않으며 열성적인 면이 부족함’이었답니다.


지금 같으면 이런 내용을 적지 못합니다만 당시엔 행동을 그대로 적는 경향이라 그렇게 적혀있었답니다. 그런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었다더군요. 일 학년 때는 가출 두 번, 이학년 때는 급우 때려 정학 두 번, 교사 지도 불응으로 정학 한 번...

그러니까 종합란을 읽어보면 누가 봐도 채용하고픈 마음이 하나도 일지 않을 것 같은 학생을 모범생과 경쟁하면 당연히 떨어질 후보라는 뜻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모범생이며 우등생인 여학생이 떨어지고 문제아이며 열등생인 학생이 합격하는.


그래서 그가 아무래도 이상해 전화해 보았답니다. 그쪽의 답입니다.

“물론 생활기록부를 꼼꼼히 다 읽어보았지요. 헌데 우리 사무실에 여상 출신이 와서 하는 일은 회계 같은 중요 업무가 아니라, 손님 오면 차를 끓여 내오고 사무실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선생님의 머릿속이 하얘졌답니다. 모범생은 키가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반면 문제아는 키가 크고 날씬하고 이뻤다 하니까.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설마 그런 사유로 뽑을 사무소가 있겠느냐만 당시엔 외모가 실력보다 더 중요한 시대였으니...


그의 말이 귀에 남습니다.

“정 선생, 앞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까? 열심히 공부하고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할 필요 없이 대충 학교 생활하면서 외모만 번듯하게 가꾸면 된다고 가르칠까?”




<에피소드 3 – 어떻게 할까요?>



에피소드 1과 2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 글 읽는 글벗님들도 그리 여길 겁니다. 그럼에도 제게는 다르지 않고 같아 보입니다. 아사이베리처럼 맛없는 작물은 도태되듯이 아무리 범생이라도 외모 번듯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가끔 실속(내면)보다는 겉치레(외형)를 더 중시하는 경우에 당혹합니다. 삶에도 원칙이 있다고 여기며 살아왔건만 이럴 때는 회의를 느낍니다. 저도 5년생 아사이베리를 거저 주겠다는 후배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어차피 약으로 쓸 생각 없고 생과를 따먹고 싶다면 맛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만약 제가 단순한 업무 맡을 사무실 직원을 뽑을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성적은 좋지만 외모가 처지는 아이와, 성적은 못하나 외모가 뛰어난 아이 둘 가운데 한 명을 뽑는다면 과연 전자를 택했을까요?

‘원칙이 무너지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혹 후배에게 혹 아직도 아사이베리 잘라내지 않고 있다면 두어 그루 옮겨 심어야 하겠습니다.


@. 영화 [미녀는 괴로워]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으며,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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