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0편 : 이화주 시인의 '벌들의 꿈'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화주 시인 편 ♡
- 벌들의 꿈 -
개미와 사촌이었던
벌들이 어떻게 날개를 갖게 되었냐고?
꿈을 이룬 거지.
날개를 갖는 게
벌의 꿈이었거든.
생각해 봐.
흙 묻은 발로
어떻게 꽃들을 찾아갈 수 있겠니?
- [토끼 두 마리가 아침을 먹는다](2023년)
<함께 나누기>
꿈 얘기가 나오면 종종 인용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죽기 전에 글을 써 유언으로 남기려고 펜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죽기 직전이어서 그런지 힘이 딸려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충 적어주었습니다.
큰아들의 책상에는 다음과 같이 걸렸습니다. "Dream is nowhere. (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 작은 아들의 책상에도 걸렸습니다. "Dream is now here. (꿈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
띄어썼느냐 안 띄어썼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큰아들은 실패한 삶을 살았고, 작은아들은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오늘 시는 동시입니다. 시인 소개를 보면 당연히 아시겠지만 읽어봐도 동시임이 드러납니다. 해설이 필요 없는.
“개미와 사촌이었던 / 벌들이 어떻게 날개를 갖게 되었냐고?”
제가 오래전부터 ‘산골일기’ 형태로 글을 쓰다 보니 개미와 벌을 글감으로 할 때가 종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두 곤충이 전혀 다른 종류라고 알았습니다. 하나는 하늘을 날고 하나는 땅에 붙어살 뿐만 아니라 먹이도 다르니까요.
그러다 둘 다 ‘벌목’에 속하는 사회성 높은 곤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생물 분류 7단계인 ‘계문강목과속종’ 할 때의 그 ‘목(目)’.
둘 다 여왕을 중심으로 엄격한 계급 분화(여왕, 일개미/일벌, 수컷)와 협동생활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헌데 같은 목이지만 개미는 날개가 없는데 벌은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생물학자에게 물으면 당연히 ‘진화’의 과정에서 달라졌다고 하겠지요.
허나 시인이 볼 때는 아닙니다. 차마 ‘흙 묻은 발’로 꽃을 찾아갈 수 없기에 날아서 흙 밟지 않고 가고자 하는 오랜 꿈이 벌에게 날개를 갖게 해주었다고.
“날개를 갖는 게 / 벌의 꿈이었거든”
벌이 날개를 가지려는 꿈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같은 目에 속하는 두 곤충(벌, 개미) 가운데 벌은 유독 꽃을 좋아했답니다. 처음에는 꽃을 보려고 개미처럼 기어올라갔겠지요.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찾아가려면 흙 묻은 발로 가 더렵혀선 안 되겠다고.
더럽히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땅을 디디지 않고 날아서 가야겠다고. 그런 꿈을 오래도록 꾸었기에 마침내 날개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생물학자가 보면 말도 안 되지만 시인의 이런 발상이 아름다운 시를 낳게 되었습니다.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아기 새와 둥지 -
엄마!
우리 집에는
왜 문이 없어?
우리 집에는
백 개도 넘는 문이 있단다.
온통 열려 있을 뿐이지.
그 순간
사과꽃 향기가
노크도 없이 놀러 왔다.
#. 이화주 시인(1948년생) :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198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강원도 오지만 돌며 초등교사로 근무하다 전교생 19명인 횡성군 ‘유현초등학교’를 끝으로 퇴직.
(여담입니다만 인터넷에 이화주 하고 검색하면 시인 이름 대신 이화주(梨花酒)란 술이 먼저 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