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그리고 빨래집게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28)

* 빨래, 그리고 빨래집게 *



산골에 갇혀 사는 게 싫증 났던지 갑자기 자격증 하나 딴 아내가 날마다 출근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아내가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되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예를 들어 밭은 내가 삽질하여 일궈도, 물 주고 풀 뽑고 수확하는 일은 주로 아내 담당이었는데 졸지에 내 일로 바뀌었다. 거기다 첨가된 한 가지가 더 있으니 세탁한 빨래를 널어 말리는 일도 내 담당이 되었다.


처음엔 널어두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날이 갑자기 흐려지면 비 내릴 걸 대비하여 거두었다가 다시 널다가 또 거두는 일들이 귀찮았으나 한 번씩 생각거리를 주면서 재미도 생겨났다.

특히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우리네 삶과 같다는 인식에서 더욱 그랬다. 산들바람 불면 빨래도 살랑살랑, 건들바람 불면 빨래도 건들건들. 흔들바람 불면 흔들흔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센 풍파에 힘들게 하다가 이내 가라앉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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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와 빨랫줄, 빨래집게, 그리고 바지랑대.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솜솜 뜯어보면 이 넷은 참 묘한 관계다.

나 어릴 때는 빨랫줄과 빨랫줄을 받치는 장대인 '바지랑대'는 있었는데 빨래집게는 없었다. 아니 좀 사는 집엔 그런 도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우리 집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집에서도 못 본 것 같다.


또래들과 마당에 놀고 있을 때 울엄마는 빨래 널면서 꼭 말했다. “빨래 안 날라가도록 잘 보거래이.” 대답이야 찰떡 같이 했다. 허나 아이들이지 않은가. 놀이에 빠지면 빨래가 널렸다는 사실조차 금세 잊었다.

갑자기 바람 세게 불면 빨래는 저만치 날아갔다. 그나마 풀숲에 떨어지거나 더럽혀지지 않을 곳에 떨어지면 다행이나 땅바닥에 떨어지면 큰일. 최악은 도랑(매우 좁고 작은 개울)에 처박히는 것. 그러면 다시 빨래해야 하지만 악취까지 배어들어 난리도 그런 난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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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집게는 여인네들에겐 기적의 선물이 되었다. 한 번 집힘으로써 빨랫줄이 끊어지지 않는 한 떨어지지 않는다. 그 작은 집게의 힘. 그 뒤로 울엄마는 내게 빨래 날아갈까 살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간수 잘 못해 빨래 날아가 혼나는 일도 없었고.

다만 가끔 빨래집게가 미울 때도 생겼다. 너무 세찬 바람이 불 때는 차라리 바람에 날려가 어디 한 구석에 처박혔으면 했다. 한 번은 중학교 하복 윗도리가 빨래집게 때문에 버티다가 찢어졌다. 그때 울엄마는 애꿎은 날더러 야단을 쳤다. 빨리 거둬들이지 안 했느냐고.


조금 더 나이 들면서 빨래가 빨래집게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집게에 발이 묶인 채 있으니 말이다. 다른 한편으론 집게에 집혀 있으니까 바람이 불면 빨래의 자유로운 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전위예술가 무세중이 추는 것 같은 춤을.

빨래가 빨래집게 때문에 안정을 취한다면, 빨랫줄은 바지랑대 때문에 춤을 덜 춘다. 빨래, 빨래집게, 빨랫줄, 바지랑대. 이 넷이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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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 -


뽕나무 가지에 까치 앉아 까악 까악 울 때 그에 맞춰, 빨래 너는 춤을 춘다.

집게에 집힌 아픔을 참으면서 빨래 너는 까치 우는 소리에 맞춰 손님맞이하듯 춤을 춘다.

바람의 세레나데에 맞춰 빨랫줄도 신이 나고 둔한 몸뚱이 바지랑대도 함께 춤을 춘다.


그래 세상은 이런 맛에 사는 게지. 슬퍼도 외로워도 아파도 춤추며 다 떨쳐버리는 게지.

나의 친구는 햇살과 바람과 훔쳐보는 까치. 아 그리고 참 나뭇잎은 앙상블로 함께 춤을 추지.

오늘은 우리의 날, 마음껏 춤을 추자. 먹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춤을 추자. 그래 막춤을 추자.


세상 어렵게 살지 말자. 슬픔도 걱정도 아픔도 다 흔들흔들 흩어버리자.

삶의 얼룩이야 하이타이로 씻어냈으니 그저 바람과 친구 되기만 하면 되잖아.

너의 젖은 마음도 나의 처진 마음도 햇살이 다 말려주니 툴툴 털어버리고 빨랫줄에 매달리자.


때론 너무 세게 흔드는 바람이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깨끗이 말려주는 친구잖아.

날아오르고픈 마음 다잡아주는 집게도 밉살스럽지만 그 덕에 하얀 슬픔을 포근히 감쌀 수 있잖아.

그래도 집게야, 한 번쯤은 나를 놓아다오. 훨훨 날아 소나무 우거진 숲에 가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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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래, 자유로운 영혼이다.

오늘도 춤을 춘다.

살랑살랑 춤을 춘다.

흔들흔들 춤을 춘다.

덩실덩실 춤을 춘다.

건들건들 춤을 춘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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