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29)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때 이야깁니다.
제갈량이 평소 중용했던 부하인 ‘마속’이 명을 어기고 전쟁에 임해 위나라에 대패한 사실을 알고선 울며 참형에 처했다는 고사에서 만들어진 한자성어가 바로 읍참마속입니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그러니까 ‘泣’이 ‘울 읍’이요, ‘斬’이 ‘칼로 벨 참’이니, 말 그대로 마속이란 사람을 울면서 칼로 베었다는 뜻입니다. 이 성어는 규율을 지키기 위해선 아무리 아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반자는 엄격하게 처분해야 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요즘 읍참마속이 정치권에 많이 쓰이더군요. 상대 당의 국회의원을 비리로 몰아치려 할 그때 자기 당 국회의원의 비리가 발각돼 뉴스에 나오면, 자기 당 의원부터 잘라야 상대 당을 매섭게 몰아칠 수 있기에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우리 당 ㅇㅇㅇ의원을 제명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어제 아침에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무지개문 아래 길가에 심어놓은 자주달개비가 도로를 침범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소리 듣겠어요."
"뭐 자주달개비가? 얼마나 침범했을라고. 괜찮아. 상관없어."
아내는 계속 아니라고 했지만 저는 한 귀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러다 오전 중 아래로 내려갈 일 있어 보니, 아 아내의 말이 맞았습니다. 분명 보름 전에 볼 때만 해도 길 안쪽에 자라기에 신경 안 썼는데 다시 보니 그 사이 꽃을 피우려고 꽃대를 만들면서 굵어졌습니다.
문제는 그대로 곧게 자라기만 했어도 놔두련만 윗부분이 굵어지다 보니 그 무게로 하여 고개를 숙였고 그것이 길을 침범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한창 자줏빛 꽃이 아름다운데 길 쪽으로 나와 있으니 참 난감합니다. 평소 차 몰다 남의 집 나뭇가지가 찻길을 방해하면 욕하던 처지였으니...
자주달개비는 참 꽃이 이쁩니다. 저는 자주달개비뿐 아니라 자줏빛이거나 자줏빛에 가까운 꽃들을 유난히 이뻐합니다. 우리 집에 작정하고 심은 꽃만 두고 봐도 도라지꽃, 매발톱, 백리향, 꽃창포, 물망초, 라벤더가 있고, 저절로 텃밭이나 언덕 주변에 잡초처럼 나는 꽃으로 봄까치꽃, 나팔꽃, 제비꽃, 쑥부쟁이, 벌개미취가 있습니다.
이왕 자줏빛 꽃 얘기를 꺼냈으니 우리나라에서 중학교만 나와도 다 머릿속에 박힌 황순원 님의 소설 「소나기」 한 구절을 보시죠.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이 소설을 통해서 자줏빛(또는 보랏빛)이 죽음을 암시한다는 말을 듣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특히 자주달개비는 그냥 한 곳에 피어 있을 때보다 석축 조경석 사이 영산홍 터잡은 곳에 피어날 때가 아름답습니다.
늦은 봄까지 영산홍이 바알갛게 조경석을 물들이다가 사라질 즈음, 자주달개비가 이내 고개를 내밉니다. 이때부터 피면 거의 한 달쯤 피어 있는데 그 모양이 참 곱습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고움, 싫증 나지 않고 끌어당기는 아름다움.
그런데 자주달개비의 결점, 사실 결점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번식력이 너무 좋습니다. 한 곳에 심은 뒤 중간중간에 솎아내기를 하지 않는다면 사방으로 퍼지는데 일 년이면 다 끝납니다.
몇 년 전 아는 이가 우리 집에 들렀다가 자주달개비를 보고 하도 예쁘다고 감탄을 터뜨리기에 뽑아줬더니 심었던가 봅니다. 다음 해, “와 이 녀석 참 대단해요, 금방 꽃밭을 다 채웠어요.” 하더니, 그다음 해엔, “안 되겠어요, 좀 잘라내야겠어요.” 하더군요.
사실 식물 가운데 꼭 잘라내 버려야 할 녀석이 있으련만 통상하는 말로 칡덩굴, 환삼덩굴, 등나무, 찔레나무는 뿌리째 없애야 한답니다. 다음으로 번식력이 좋지만 잘라내기도 그대로 두기도 애매한 식물로 산딸기, 으름덩굴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에 비하면 자주달개비도 번식력이 하도 좋아 심어본 적 있는 분들은 학을 떼기도 하지만 저는 꽃이 아름다워 일부러 키웁니다. 그런데 이번 상황과 같은 일이 벌어질 때는 참 난감합니다. 그대로 두면 도로를 침범하여 차 몰고 오가는 분들이 분명 신경 써야 할 테고.
그래서 읍참마속이란 한자성어가 떠올랐습니다. 이와 그리 된 김에 마속을 보는 제갈량 심정이 돼 보기로 하고. 어제 오후 낫과 호미를 들고 가 도로에 붙어 핀 자주달개비를 일단 자른 뒤 이어서 아예 뿌리를 뽑아버렸습니다.
한동안 그곳에는 자줏빛 꽃을 볼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제 눈길이 머무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아직 다른 곳에 자주달개비가 군데군데 피어있습니다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잘려나간 곳이 아른아른합니다.
살다보면 자신이 아끼는 걸 버려야 할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피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지키겨 할 걸 지키지 못하는 아픔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 만약 자주달개비를 전원주택에 심는다면 조경석(또는 자연석) 영산홍 자라는 사이사이에 심는 걸 권합니다. 영산홍에 이어 자주달개비가 핀다면 두 달 가까이 그곳이 참 아름다울 겁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