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30)
<하나>
아파트에 오면 운동 삼아 남천(南川) 내를 한 바퀴 휘 돈다.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냇가를 곁에 두고 걸으면 아직 봄이 온 게 아니라서 그런지 볼 게 적다. 그래도 이맘때의 누런 갈대를 보면 짙푸른 빛깔일 때와 또 다른 맛이 난다. 갈대뿐이랴, 풀이 없는 길가도 흙이 제 나름의 빛깔을 드러내고...
볼 게 그리 없는 가운데서도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요즘 유난히 눈에 띄는 녀석들이 바로 개울에 띄엄띄엄 자리 잡은 새들이다. 쇠백로, 왜가리, 갈까마기 등은 덩치가 커 눈에 쉬 들어오지만 내 눈은 그 녀석들을 향하지 않고 작은 새로 향한다.
‘원앙, 물닭, 청둥오리, 알락오리,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그밖에 이름을 몰라 적지 못하나 더러 작은 새로운 종도 보인다. 이 작은 새는 큰 새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 쇠백로나 왜가리 같이 덩치 큰 새는 여러 마리가 죽 붙어 있는 경우보다 한 마리씩 자리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작은 새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만 보면 한 종류만 모여 있지 않고 여러 종류가 섞여 있다. 청둥오리만 왕창 모이지도 않고 물닭과 원앙이 골고루 섞여 있다. 이곳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곳도 그렇다고 한다. 그 까닭이 뭘까?
일단 상위 포식자가 침략했을 때 빠르게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한두 마리의 눈과 귀보다 십여 마리의 눈과 귀가 더 빨리 포착하니까. 다음 우리들도 유난히 눈 밝은 사람, 귀 밝은 사람이 있듯 새들도 그렇다고 한다. 눈이 좀 더 밝거나 귀가 좀 더 밝거나.
이런 특징을 가진 여러 개체가 모이면 확실히 위기를 빨리 인식하게 된다. 1초라도 빨리 포식자 감지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확률도 높을 터. 또 한두 마리가 있을 때보다 여러 마리가 섞여 있으면 포식자가 한 마리를 특정해 공격하기 어려워 생존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이밖에도 여러 종류가 섞이면 얻는 장점이 더 많으나 그만 줄인다.
<둘>
우리 사회에도 위와 비슷한 경우를 흔히 본다. 작은(힘이 약한, 가난한) 사람들은 작은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듯이. 학교에서는 키 순서로 앉다 보니 작은 애들은 앞에 큰 애들은 뒤에 자리한다. 이런 지리적(?) 여건인지 몰라도 작은 애들 친구는 대체로 작다.
또 가난한 사람끼리 모여 산중턱에 달동네를 이루며 산다. 거기가 집값이 싸기 때문이지만 사회학자들은 다른 이유도 든다. 비슷한 계층끼리 살아야 상대적 박탈감이 덜하기에. 나만 어렵게 살지 않고 주변도 다 어렵다면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종류의 물품을 파는 작은 점포가 하나씩 흩어져 있는 경우보다 한곳에 함께 모여 자리한 경우를 많이 봤으리라. 이렇게 어물이면 어물, 공구면 공구 등 같은 종류를 파는 작은 동종업종이 한곳에 모이는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집합 경제 효과’라 한다나.
<셋>
지난주 남천 내를 한 바퀴 도는데 묘한 걸 보았다. 물닭 청둥오리 같은 작은 새가 모여 있는 곳에 쇠백로 한 마리가 곁에 날아와 앉는 게 아닌가. 설마 저 녀석이 어린 새를 해치려고 오진 않았을 터. 왜냐면 쇠백로는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를 먹긴 하지만 아무리 작아도 같은 조류는 먹지 않는다니까.
뭘 하는가 지켜봤더니 그냥 서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히 그냥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왜 왔을까? 절로 궁금증이 일 수밖에. 친구가 없어서? 하기야 쇠백로의 개체 수는 물닭이나 청둥오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동족이 적으니까 함께 어울리려고?
그런데 쇠백로가 앉은 위치가 참 묘하다. 친구라면, 어울리려면 그 속에 파묻혀야 하는데 한쪽에 조금 떨어져 있다. 무리 속인지 무리 밖인지 참 애매하게. 바로 이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에겐 밖인지 모르나 남들 보기엔 안이나 마찬가지니까.
만약 작은 새를 노리는 포식자가 본다면? 쇠백로가 눈엣가시처럼 얄미우리라. 내가 공격하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하고. 머리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다 포기하고 떠나지 않을까. 결국 쇠백로의 자리가 침략자에게서 작은 새를 보호해 주는 셈이다.
울산에 와 처음 ㅇㅇ공고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때는 키 순서대로 앉혔는데 작은 애들은 작은 애들끼리 큰 애들은 큰 애들끼리 어울려 지내는 게 눈에 확 띄었다. 그러고 잘 지내면 되는데 문제는 키 큰 녀석들이 키 작은 애를 괴롭혔다는 사실. 꼭 한쪽에서 먼저 시비 걸었다. 당연히 키(덩치) 큰 녀석들이.
작은 애들이 사흘드리 얻어맞더니 내게 찾아왔다. 그러면 교실에 가 호통 한번 치고. 잠시 조용해지나 싶으면 이내 또 그런 일이 벌어지고.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그런 일이 쑥 들어가버렸다. 싸워 작은 애들이 코피 터지는 일도 더 일어나지 않았고 얻어 맞았다고 찾아오는 애도 없었다.
참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갑자기 바뀐 상황이 이상해서 반장에게 물어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그러니까 어느 날 우리 반에서 가장 덩치 크고 합기도 3단의 어마무시한 녀석이 찾아와 눈이 나빠 칠판 글씨가 안 보이니 앞에 좀 앉혀 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자리를 바꿔주지 않는 게 통상이었는데(그걸 핑계로 마음대로 자리 바꿔서), 나는 눈이 나쁜 사람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라 바꿔주었다. 소위 우리 반 ‘대빵’이 앞자리로 이동하였고 키 작은 애와 친해지면서 저절로 갈등이 해소되었다나.
요즘 남천 내를 돌 적마다 물닭과 청둥오리 같은 작은 새들 무리에 눈을 준다. 그러다 쇠백로나 왜가리가 그 옆에 앉아 있으면 설핏 웃는다. 처음엔 작은 녀석은 작은 녀석끼리, 큰 녀석은 큰 녀석끼리 노는 모습이 좋더니 이제 다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미남 미녀만 나오면 흥행에 실패한단다. 미남 미녀는 얼굴만 뛰어난 게 아니라 행동이나 머리도 뛰어난 역을 맡는다. 거기에 툭 끼어드는 인물이 어딘가 좀 모자란 듯한, 물론 외모도 그렇고. 그런 캐릭터가 함께해야 훨씬 연기도 스토리도 살아난다나.
이제 남천 내를 돌 때마다 작은 새와 큰 새의 어울림을 보는 재미가 하나 더 늘어났다. 짜리몽땅하면서도 까만 물닭과 미끈하게 쭉 뻗은 팔등신 다리가 예쁜 하얀 쇠백로의 어울림이 참 곱다. 참 멋진 화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