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넝쿨과 호불탄율(虎不呑栗)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32)

* 칡넝쿨과 호불탄율(虎不呑栗) *



얼마 전 뉴스를 보는데 ‘식당 먹튀’가 나왔습니다. 한 횟집에서 남녀 몇이 25만 원어치 식사비를 내지 않고 튀었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반쯤 화장실 가는 척하다가 슬쩍 빠져나간 남은 사람들도 주인이 한 눈 파는 틈을 타 빠져나갔다나.

나중에 CCTV를 돌려보았더니 어렴풋이 찍힌 타고 온 승용차가 고급외제 승용차였답니다. 물가가 올라 손님이 푹 줄어든 횟집에 모처럼 회 먹으러 온 손님을 보았을 때 주인 내외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날따라 남다른 정성으로 싱싱한 회를 대접했다고 하는데, 돌아온 건 25만 원의 먹튀. 이들은 아마 5성급 호텔 뷔페에서 식사했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으리으리한 호텔에선 제 돈 주고 먹으면서 조금 후진 곳에 자리한 횟집에서 먹튀 한 쩨쩨한 연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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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짬날 때마다 예초기를 돌립니다. 풀들은 특히 장마철에 워낙 잘 자랍니다. 물이 풍부하게 공급되는 데다 햇살도 짬짬이 공급되니까요. 거짓말 좀 보태면 어제 잘랐다 싶은데 오늘 보면 잘라야 할 정도랄까요. 그게 과장이라면 열흘에 한 번씩 돌림은 진실입니다.

우리 집 텃밭엔 고랑마다 잡초방지매트를 깔아 예초기가 필요 없지만 텃밭 위 언덕에 무성합니다. 거기를 방치하면 이내 숲이 돼 발을 못 디딥니다. 특히 그곳에는 칡넝쿨이 뒷산에서부터 마구마구 내려오기에 순식간에 호박은 덮어버리고 다른 유실수도 감아버립니다.


언덕 위에 예초기를 돌리려다 잠시 당황하였습니다. 언덕을 타고 내려온 칡넝쿨이 작년에 심은 시누대(학명은 '신우대')를 감고 있어서입니다. 시누대는 가늘고 곧으면서 절(마디와 마디를 이어주는 부분)이 튀어나오지 않아 화살의 재료로 쓰이는 대나무를 일컫습니다.

언덕에 시누대를 심은 까닭은 토사가 밀려 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주된 목적입니다. 즉 (작은) 산사태를 방지하려고. 아직 2년밖에 안 되어선지 굵지 않고 가느다랗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잘 자라지만 가장 천적이 칡넝쿨입니다. 채 활착 하기 전에 감아 목 조르면 큰일이니까요.


역시 대부분의 시누대를 칡넝쿨이 한창 감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예초기 대신 낫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묘한 걸 보았습니다. 시누대는 작년에 옮겨 심었다 했으니 아직 어려 가늡니다.

그 시누대를 감고 올라가는 칡넝쿨은 다 가늡니다. 혹 칡넝쿨이 다 가는가 하여 보았더니 굵은 줄기가 더 많습니다. 대신 굵은 줄기는 그 옆을 지나쳐 아래로 계속 내려가 모과나무를 감았습니다. 다른 시누대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결같이 가느다란 칡넝쿨이 감고 있습니다.


132-3.png (칡꽃)



어쩜 너무나 당연한 일. 굵은 칡넝쿨이 감으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시누대가 부러지고 마니까요. 가는 넝쿨이라야 견딜 수 있습니다. 이는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굵은 대나무엔 굵은 넝쿨이, 가는 대나무엔 가는 넝쿨이.

그러니까 우리가 아주 우습게 보는 풀인 칡넝쿨도 다 안다는 말입니다. 자기 덩치에 맞는 나무를 찾아 기어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앞에 예로 든 식당 먹튀처럼 돈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한두 번 아닙니다. 덩치가 큰(권력이나 경제력을 쥔) 이들이 그보다 못한 이를 괴롭히다 못해 궁지로 몰아넣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가 어제오늘 아니지만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덩치 큰 어른이 아이들 놀이에 끼어든 꼴입니다. 이미 구멍가게는 대형마트 산하 브랜드 이름으로 진출한 기업형 슈퍼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뿐이랴 한식뷔페, 수제맥주, 커피, 베이커리 전문점까지 대기업이 진출하여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IT기업의 골목상권 진출도 예사롭지 않은데, 모 대기업에서 스마트폰으로 미용실을 미리 예약하고 결재까지 끝마치는 앱을 출시됐다가 갑질 논란으로 철수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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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지역에서 카센터 운영하는 한 제자와 만났을 때 주고받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내가 ‘이 기술 갖고 있으면 정년 없이 먹고살 수 있어 좋겠다.’ 하자,

“카센터가 워낙 많이 생겨 전보다 이익은 줄어들었는데 그나마 그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기술과 성실, 친절 이 셋이면 버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앞으로 대기업에서 카센터 업종까지 진출하지 않을까 그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에이, 뭐...’ 하고 반박하려다 정말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범은 어디까지 한계가 있지 않으니까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제목인 호불탄율(범 ‘虎’, 아니 ‘不’, 삼킬 ‘呑’, 밤 ‘栗’)을 해석하면 ‘호랑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밤을 삼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혹 굶어 죽기보단 밤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까요, 정말 그럴까요?


132-5.jpg (칡)



오늘 아침 다시 언덕에 올라 시누대를 감고 올라간 가느다란 칡넝쿨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저게 더 굵어질지 모릅니다. 굵어지면 대나무가 위험해지지만 시누대 역시 굵어지지 않는가요. 아직 칡넝쿨 때문에 부러진 대나무를 보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래 칡넝쿨도 다 아는데 왜 사람들만 모를까요? 경쟁하더라도 같은 체급끼리 부딪쳐야 함을. 그리도 미워 볼 때마다 잘라버리던 칡넝쿨이 오늘은 참 이뻐 보입니다. 나중에라도 크면 더 굵은 넝쿨이 감으러 오겠지만.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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