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과 희망퇴직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103)

* 명왕성과 희망퇴직 *



<에피소드 1>



오래전 우리 집에 한 벗이 들러 마당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을 보낸 적 있습니다. 평소에 이곳저곳 캠핑장 찾아다니며 지내는 벗이었습니다. 사실 남는 방이 있으니 굳이 밖에서 잘 필요가 없건만 워낙 캠핑을 즐기는 벗이라 그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벗만 그렇게 자게 둘 수 없어 저도 함께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그러니 말이 ‘텐트 잠’이지 실은 하얗게 밤을 지새운 셈입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밀어를 속삭이며 지새우는 밤도 멋있겠지만, 마음 통하는 벗과 밤새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지내는 시간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둘이 술 마시며 떠들며 옛 추억을 꺼내 얘기하던 중 문득 벗이 말했습니다.

“야, 우째 이런 산골에서도 별이 보이지 않노? 주변이 너무 밝아 그렇나?”

그러고 보니 산골이지만 집에서 별 본 적 오래된 것 같아 하늘 보다가 눈을 돌려 집 입구 무지개문 쪽을 보니 가로등이 너무 훤했습니다.


주변이 밝으니 상대적으로 별이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스위치를 끄자 하늘에 별이 총총하게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북두칠성이 눈에 들어오고, 카시오페이아, 백조자리, 거문고자리 등도 보입니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두 별자리는 워낙 뚜렷하고 밝아서 이 둘을 찾으면 다른 별자리 찾기가 쉽지요. 백조자리, 거문고자리를 찾아가다 보니 문득 초등학교 다닐 때 별자리를 배운 뒤 집에 와 동네 꼬마들과 밤에 모여 하늘 뒤져 찾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벗이 입을 열었습니다.

“야 저기 은하수 아니야?”

그랬습니다. 은하수가 정말 은빛 냇물처럼 고요히 흐르고 있습니다. 과장 잘하는 중국 문인의 표현대로라면 배를 띄워도 될 만큼 맑고 흰 냇물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어 벗이 물었습니다.

“너 태양계에 행성이 몇 개인 줄 아니?”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학창 시절 기억의 서랍을 뒤적였습니다.

“오래돼서 다 기억할는지 모르겠는데... 한 번 읊어볼까. 태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더 이상 없는 것 같으니 모두 아홉 개네.”

“그렇게 답할 줄 알았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모두 아홉 개라 배웠지. 헌데 이젠 아홉 개가 아니라 여덟 개네. 아까 자네가 늘어놓은 별 가운데 명왕성은 국제천문학연합에서 2006년 행성에서 탈락시켰다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행성도 자격 미달로 탈락될 수 있음을. 그리고 벗의 말이 사실임을. 사실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밤하늘에 떠도는 별들을 모아 사람들이 행성이니 뭐니 이름을 붙였다가 자격 미달이면 퇴출시킨다니.




<에피소드 2>



십여 전 한 모임에서 만나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열다섯 살의 나이 차이로 저랑 형 아우 하며 지내는 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늘 그가 먼저 걸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두어 달 넘게 전화 오지 않은 것 같아 뭔 일이 있나 하여...

잠시 뒤 전화 안부 주고받은 뒤 그냥 인사로 물었습니다. 정말 별 뜻 없이.

“회사 잘 돌아가?”

“머...”

대답이 이상했습니다. 늘 받으면 쾌활하게 답했는데... 혹시나 하여 물었습니다.

“회사에 무슨 일 있어?”

“... ...”


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중견기업 다니다가 4년 전쯤 구조조정의 칼날에 잘려 제법 오랜 기간 놀다가 퇴직금이 다 떨어질 즈음 중소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침묵했다는 말은 그 중소기업에 다니지 못한다는 말이고, 자기가 나오고 싶어 나온 게 아니라 강제로 나왔다는 얘깁니다.




나랑 열다섯 살 차이 나니 올해 쉰 초반입니다. 좀 늦게 결혼해 딸 아들 둘인데 첫째는 고등학교 1학년, 둘째는 중학교 1학년. 다시 말하면 한창 돈 들어갈 때고 대학까지 보낸다면 최소한 앞으로 십 년 가까이 더 벌어야 할 몸입니다.

그가 중견기업에서 쫓겨 나올 때의 명목은 ‘희망퇴직’. 그러니까 퇴직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때 제가 물었습니다. ‘희망퇴직이니 희망하지 않으면 퇴직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그의 답입니다.


“당장은 짤리지 않겠지만 어차피 회사 사정이 어려워 규모 축소가 불가피하니 몇 달 못 버티고 나갈 수밖에 없어요. 지금 나가면 그나마 특별퇴직금이란 명목으로 돈이 좀 주어지지만, 강제로 나가게 되면 그것조차 없거나 팍 줄어드니까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난 다음날 술 한 잔 하자고 해 나갔다가 이런저런 얘기 나눈 일이 코로나 직전인 불과 4년 전인데... 이어진 코로나로 하여 취업이 어려울 때 중소기업이지만 알찬 회사 뚫었다 하여 기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에피소드 3>



저처럼 직장에서 일하다가 정년이 돼 은퇴하는 사람들이야 수(壽)를 누렸으니 할 말 없겠습니다만, 회사에 다니는 분들은 경영 실적 악화로 문을 닫게 되거나 경영자가 임의로 자르면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한둘 아닙니다.

예전엔 60 넘으면 당연히 회사 그만둬도 몇 년 더 살다 하늘로 가면 되었는데 행인지 불행인지 이젠 ‘의(醫)느님’들 때문에 빨리 죽지도 못합니다. 모아놓은 돈 없거나 쓸 만큼 연금 나오지 못하는데 애들까지 어리면 대략 난감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거기에 본인이나 가족 가운데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설상가상인지 그의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도 왼쪽어깨 인대가 파열된 걸 모르고 무리하게 일하다 병원 신세를 두 달 이상 졌고...

앞으로 어떻게든 직장을 또 가지겠지요. 허나 전보다 힘은 더 들고 수입은 더 적은 곳이 분명할 겁니다. 그러자 문득 그의 얼굴에 명왕성이 겹쳐졌습니다.


명왕성은 태양계 아홉 개의 행성으로 살다가 어느 날 거기서 자기 뜻과 관계없이 퇴출되었습니다. 물론 거기서 퇴출되었다고 하여 다른 별들이 괄시하거나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에게 왕따 당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는 동생은 평생을 한 기업에 다니며 열심히 일하며 살려고 했는데 그것마저 기회를 잃었습니다. 또 다른 무리 속에 들어가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명왕성보다 훨씬 못합니다. 둘 다 퇴출이란 이름을 달았지만.




아는 동생의 말입니다.

“형, 먼젓번 회사 짤리고 나서 가장 힘든 게 뭔 줄 아요?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거요.”

명왕성을 보려면 비 오지 않아도 천문대급 망원경이라야 볼 수 있는데, 이제 NASA에서도 관찰 대상에서 멀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 명왕성이 겹쳐졌을까요?

오늘 시간 내 힘들어하는 아우에게 전화해 저녁 식사 한 끼 사줘야겠습니다.


*. 본문에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으며,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칡넝쿨과 호불탄율(虎不呑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