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2편 : 김선굉 시인의 '담배 피우는 남자'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김선굉 시인 편 ♡
- 담배 피우는 남자 -
그의 오른손은 이따금씩 왼쪽 가슴 부위를 더듬어
희고 갸름한 마음을 끄집어내어
그 끝에 불을 붙인다
마음이여, 여위었으나 원래 뜨거웠구나!
두 손가락 사이에서 고요히 타오르며
마음은 이윽고 몸의 일부가 된다
푸른 연기로 세계와 이어지는
인화성이 강한 목탄(木炭)의 몸이 타고 있다
- [밖을 내다보는 남자(男者)]
<함께 나누기>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작품 쓰려면 담배 피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피웠습니다만. 나중에 알고 보니 폐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소위 ‘뻐끔담배’였던 모양입니다. 그냥 입속에서만 머금었다가 내뱉는.
그러다가 글 쓰지 않게 되자 별 의미 없어 끊었는데 금방 금연이 되더군요. 뻐끔담배는 쉬 끊을 수 있다는 항간의 말 그대로.
다시 제대로 피우고 싶은 욕망이 불붙은 때가 왔으니 당시 서부극을 보면 주인공 (예를 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악당들을 총으로 싸 지옥으로 보낸 뒤 궐련을 입에 물고 말을 천천히 모는 장면을 보고 반했습니다.
‘아 일반 담배는 시시하니 궐련을 피워봐야 하겠구나.’
헌데 그때는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였고. 그래서 결국 담배 피울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요즘 아파트에 지내면 아침저녁으로 공지사항이 울립니다. 담배를 절대로 건물 안에서 피워선 안 된다고. 뿐이랴, 밖에 흡연 가능지역이라도 사람이 지나가면 눈치를 봐야 합니다, 특히 어린이가 지나가면. 그만큼 애연가는 죄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오늘 시는 그런 가여운(?) 애연가를 위로하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 시 읽고 애연가가 힘을 얻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그의 오른손은 이따금씩 왼쪽 가슴 부위를 더듬어 / 희고 갸름한 마음을 끄집어내어 / 그 끝에 불을 붙인다”
첫 시행에서 바로 가슴에 와닿는 시구가 나옵니다. ‘희고 갸름한 마음을 꺼내어’에서 담배를 '마음'에 비유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태웁니다. 섭섭하고 불편한 심정도 태우지만 열정과 그리움 같은 마음을 활활 타오르게도 합니다.
“마음이여, 여위었으나 원래 뜨거웠구나! / 두 손가락 사이에서 고요히 타오르며 / 마음은 이윽고 몸의 일부가 된다”
이 부분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화자에게 담배 피우는 행위는 단순히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일이 아닙니다. 희고 갸름한 마음으로 심장에다 불을 지피며 경건한 제의를 치르듯 비장함이 엿보입니다.
연기는 다시 입을 통해 밖으로 내뱉지만 그 담배의 맛은 마음이 되고 몸의 일부가 되어 오래도록 남습니다. 제 몸이 타들어가면서도 다시 그 ‘마음’에 불을 붙이는 걸 보면 '금연이 정의인 시대’를 살아가는 화자에게 어떤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푸른 연기로 세계와 이어지는 / 인화성이 강한 목탄(木炭)의 몸이 타고 있다”
우리나라 문인 가운데 대표적이 애연가로 오상순 시인을 듭니다. 그분의 호가 공초(空超)인데 그 뜻은 '빌 공(空)'에 '뛰어넘을 초(超)'라 세속을 초월한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허나 호 공초가 꽁초 또는 골초에서 왔다는 주장을 들을 정도로 대단한 애연가였던 모양입니다.
골초 예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담배는 예술 창작에 큰 힘이 된다' 그분들에게 담배는 "푸른 연기로 세계와 이어주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비록 내 몸이 타 없어지더라도 담배 물고 연기 내뿜으며 살겠다는 고집, 그런 고집도 비흡연자들이 조금은 고려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합니다.
방송에서 모자이크 처리한 내과의사 말이 떠오릅니다.
"담배 피워 얻는 건강 해침보다 피워야 하나 마나 하며 얻는 갈등의 스트레스가 더 크다면 그냥 피워라."
저는 담배 연기를 무척 싫어합니다. 길 가는데 누군가 담배 피우고 있다면 비켜가고, 피워선 안 될 장소에서 피우면 한마디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궐련을 입에 물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초등동기가 선물해 준 한 개비 3만 원짜리가 서랍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기에.
#. 김선굉 시인(1952년생) : 경북 영양 출신으로 1982년 [심상]을 통해 등단. 구미 인동고 교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열심히 시를 쓰고 있는데, 특히 지인을 시에 잘 등장시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를 많이 씀. 2022년 대구에 갤러리 [청라]를 오픈했고, 인문학·미학 플랫폼 '계산드림'도 창립했으니 노익장이라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