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33)
요즘 우리 집을 가장 밝히는 꽃은 능소화다. 그냥 이쁘다는 한 마디로 끝내기엔 부족한, 볼 때마다 기품이 꽉 찬 꽃이다. 피어 있을 때 가장 이쁜 꽃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르리라. 나만 해도 계절마다 좋아하는 꽃이 각각이니까.
헌데 떨어진 모습조차 아름다운 꽃을 들먹인다면 거의 하나로 모아지리라. 바로 능소화로. 그 까닭은 다른 꽃들은 시들다가 떨어진다면 능소화는 싱싱하고 아름다울 때 통꽃 상태로 그 생을 마감하니까.
그래선가 한창 아름답게 피어났을 때 처연히 떨어지고 마는 능소화의 기개가 곱고도 한편 애틋하다. 어느 문인은 능소화를 두 번 핀다고 했다. 나무에 달려 피었을 때와 떨어져 바닥에서 다시 피었을 때.
능소화가 돌담 위에 피면 화사한 돌꽃이 되고, 감나무를 타고 오르면 때 이른 감꽃이 된다. 그러다 잔디밭 위에 떨어지면 바알간 빛깔의 소담스러운 꽃이 피고, 맥문동밭 위에 떨어지면 보랏빛 꽃 대신 연분홍 꽃이 피어난다.
나는 능소화 질 때마다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온 '오드리 헵번'을 떠올린다. 당연히 능소화만큼 아름다운 배우란 의미에서 쓴 표현이지만 사실 떨어져 갈 무렵 말년이 더 아름다운 배우이기 때문이다.
오드리 헵번이 유니세프 홍보대사를 하면서 죽을 때까지 봉사활동을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무리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니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니 해도 나이 들면 그 모습을 잃어버린다. 오드리 헵번도 마찬가지.
허나 내게는 그녀가 한창 아름다울 때 나온 영화 속의 얼굴보다 화장기 없이 주름살 감추지 않은 채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 어린이를 안은 모습이 더 아름답다. 특히 말년에 대장암에 걸렸는데도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는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에 도움의 손길을 펼쳤으니...
능소화는 떨어져도 아름답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본모습 잃게 되지만 죽는 날까지 고운 모습 잃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능소화처럼 늙어가기를 원하리라. 물론 외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함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말년에 이름 더럽히고 끝내는 사람은 아쉽다.
토마스 에디슨의 이름을 어릴 때 접한 뒤 다들 발명왕으로 존경하고 우러러봤으리라.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언젠가 니콜라 테슬라(현재 인기 있는 전기자동차 이름을 이 인물 이름에서 따옴) 전기를 읽으면서 달라졌다.
말년에 자기보다 9살 어린 조수인 테슬라와 직류ㆍ교류 두고 경쟁하는 처지가 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일했으니 당연히 선의의 경쟁? 아니었다. 늘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며 살아온 에디슨 앞에 자기를 뛰어넘을지도 모를 인물이 나왔음을 알았을 때 그의 눈은 뒤집혔다.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전기를 모함하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말이나 코끼리를 직류전기를 사용해서 죽이고는 교류전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였고, 로비를 통해서 사형수를 위한 전기의자에 교류전기를 채택하게 만드는 등 온갖 비열한 짓을 다한다.
발명왕이란 타이틀만으론 만족하지 못했을까, 에디슨은 노탐에 의한 저열(低劣)한 아집의 결과로 명예를 실추시키는 우환을 낳고 말았다.
이제 우리 집 감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가 피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그걸 보면서 능소화처럼 아름답게 살다가기를 원하나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천하기 힘든지 알기에 그런 욕심은 버린다. 다만 욕 들어먹지 않게 살다가 갔으면 한다.
이렇게 이쁜 능소화를 시인들이 그냥 두었을 리 만무. 능소화를 글감으로 한 시가 제법 되는데, 내 눈에는 김도연 시인의 작품이 가장 깊게 들어온다.
- 능소화 -
김도연
그대 담벼락에
의지 삼아
꽃 피울 수 있다면
더는 소원 없습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