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3편 : 유승도 시인의 '비웃음을 사다'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유승도 시인 편 ♡
- 비웃음을 사다 -
이 수선화는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픽—
작업자의 이빨 사이로 빠져나오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공사를 하다 보면 그런 거야 묻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는 거 아닙니까 정 그렇다면 지금 옮겨 심으시죠
면사무소에서 길 포장 작업을 따내어 공사를 하는 남자의 말을 들으니 꽃에게 미안하다 길가에서 이른 봄마다 내 마음을 노랗게 물들여 주었는데, 조금 편하자고 집 앞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면서 너를 우스운 존재로 만들었으니
- 웹진 [님](2023년 11호)
<함께 나누기>
이십여 년 전 처음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일단 재미있고 신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읽어주고 댓글도 많이 달아주었으니까요. 그렇게 신나게 글 올리던 어느 가을, 문득 글감이 떠올라 새벽같이 서둘러 아내랑 논에 가 벼메뚜기 잡았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했던 그대로 메뚜기 등을 강아지풀로 꿰어 한 줄로 엮었습니다. 그렇게 한 뒤 집에 갖고 와 프라이팬에 올려 구워 먹었습니다. 그렇게 [산골일기] 연재하던 곳에 올렸습니다. 아주 흐뭇했지요. 도시 사람들에겐 신선한 얘깃거리가 될 거라고 여겨.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메뚜기를 구워 먹다니 징그럽다.' 더 나아가 '살아있는 메뚜기 등에 강아지풀을 꿰다니 너무 잔인하다.' 그런 반응이 오리라곤 생각지 못했지요. ‘도시 촌놈들! 너희는 이런 추억 없지?’ 하며 다들 신기해 하리라는 생각만 했을 뿐. (사진 참조)
이제사 압니다. 메뚜기를 구워 먹는 것보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등에 강아지풀을 꿴 게 보는 이에게 혐오감 불러일으킴을.
오늘 시도 그렇습니다. 화자에게 수선화는 애지중지 아끼며 키우는 반려식물이나 마찬가집니다. 길 포장 공사하는 작업자의 눈에 수선화는 별 게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리 말했겠지요.
“공사를 하다 보면 그런 거야 묻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는 거 아닙니까”
그까짓거 공사하는데 걸거치면 그냥 밟고 가도 되고, 흙에 묻혀도 되고, 공사 도구에 부러져도 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만약 반려견이나 반려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맨 먼저 ‘저게 다치면 물어줘야 하는데, 돈이 팍 깨지는데’ 하는 점부터 생각했겠지요.
화자의 자연을 아끼는 선한 마음을 시골 환경미화 공사 인부조차 비웃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서 농사지으며 자연과 벗하며 사는 이에게 길가에 피는 수선화는 그냥 짓밟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꽃에게 미안하다 길가에서 이른 봄마다 내 마음을 노랗게 물들여 주었는데, 조금 편하자고 집 앞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면서 너를 우스운 존재로 만들었으니”
나 살기 편하자고 조금씩 자연을 훼손해 온 우리의 모습을 넌지시 비판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저 풀 하나가 우주와 맞먹다고 여기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 그깟 수선화 몇 뿌리 상한다고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외려 화자의 마음씀이 더 요란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저도 시골로 들어오기 전에는 풀이든 나무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내 앞길 막으면 그냥 밟고 지나갔지요. 길 가다 차에 받혀 죽은 고라니 사쳬를 보고 먼저 든 생각은 녀석의 죽음이 아니라 '아, 저 박은 차 많이 망가졌겠는데' 였으니까요.
지금 우리 집 소나무 아래 수선화가 얼굴 내밀기 직전입니다. 이삼일이면 고 이쁜 노란 꽃을 곧 볼 것 같은데, 그럼 우리 집은 진짜 봄인데... 아내가 참 좋아하는 꽃이라, 그래서 혹 소나무 가지치기하다 밟으면 혼이 납니다. 한 번 밟혀선 죽지 않는 꽃이지만.
*. 유승도 시인(1960년생) :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95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1998년부터 지금까지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 버려진 오두막집을 손보아 염소 몇 마리, 고추, 두릅,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음.
완전히 자연인처럼 살아 진짜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가족 자연인'으로 나온 적 있음
*. 첫째 사진을 참고를 위해 올렸는데 혹 혐오감을 준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당시 글 재료 얻을 욕심으로 새벽같이 빈손으로 논에 나갔습니다. 몇 마리 잡히지 않겠지 하고 갔는데 버글버글 했습니다. 담아갈 봉지는 없고 하여 어릴 때 추억 떠올리며 저렇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