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34)

*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 *



흔히 말한다.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정말 그런가?

아들과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여름휴가차. 딸의 두 딸과 아들의 한 아들, 그러니 손주는 모두 세 명. 앞으로 열흘쯤 머물 게다. 더운 여름날 찾아오는 손님은 호환(虎患 : 호랑이) 마마(媽媽 : 천연두)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이제 벗이나 옛 동료를 만나면 다들 손주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다닐 때쯤이라 걔들이 주된 화제가 된다. 이구동성 하는 말이, ‘자식들보다 손주들이 더 이쁘다.’고 하는데 이 말은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자식 키울 때는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리는 입장이라 아무래도 자식에게 향하는 사랑이 떨어진다. 즉 자식 키울 땐 먹고사는 게 힘들고 여유가 없어 예쁜 줄도 모르고 키웠는데 손주는 그게 아니라서 예쁘다나.
그렇지 않은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받고 집 살 때 얻은 빚(대출) 때문에 쪼들리다 보니 아이들에게 사랑이 덜 간다는 점. 헌데 손주 볼 때쯤이면 은퇴하거나 직장에서도 고참이라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게 되니 손주가 제대로 보인다.




둘째, 자식을 어긋난 길로 가게 해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애정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엄하게 키우다 보니 덜 이뻤는데, 손주들의 훈육은 제 아빠 엄마에게 맡기고 할아버지 할머니로선 오직 사랑만 주면 되니까 모든 행동이 다 이뻐 보인다나.
셋째, 직접 키우는 게 아니라서 매일 보지 않고 가끔 가다 한 번씩 보게 되니 예쁘다는 점. 나이 들면 날마다 얼굴 보며 함께 사는 부부보다 주말부부가 더 사랑 깊어진다는 이치와 같을까.


그런데 이런 감성적인 접근보다 과학적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가 나왔다. 거기 등장한 학설이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이다. 여인의 몸이 직접 자녀를 낳기보단 손자들의 양육에 도움을 줘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번성시키는 방향으로 몸이 진화했다는 이론.
이를 연구한 미국의 '제임스 릴링' 교수는,
“성인 자녀의 모습을 볼 땐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의 이유를 이해하려 하지만, 손주를 볼 땐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려 한다는 것”이라며, 성인이 된 자녀는 더 이상 아이 같은 ‘귀여운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동일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론했다.




이런 감성적이거나 학술적인 여러 이론을 다 놔두고 나는 그저 손주들이 오면 반갑다. 시골에서도 산골이라 아이들 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된 마을을 ‘까르르’ ‘까르르’ 청량하게 울리는 맑은 웃음들. 절로 어른들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지 않는가. 꼭 우리 손주들만 반가운 게 아니라 이웃에 놀러 온 손주들도 반갑다. 사람 사는 마을에는 새소리, 곤충 소리, 동물 울음소리도 필요하지만 아이들 웃음소리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유튜브를 볼 때 아이들이 나오는 유튜브를 찾는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인 남성과 헝가리 여성이 결혼해 생활하는 [ㅇㅇㅇ 부부]다. 거기에 나오는 이제 20개월 된 ‘ㅇㅇ’의 애교가 사람을 녹인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나오는데 넉넉지 않은 삶 속에서도 피어나는 웃음꽃에 ‘좋아요’를 내내 누를 수밖에.


아이들이 온다는 연락 오면 갖춰야 할 물품이 있다. 물론 과자와 과일도 준비해야 하지만 가장 필요한 건 풀장. ‘당근’을 뒤적여 무려 8만 원 주고 구입했다. ‘무려’ 8만 원을 들였지만 그 돈 몇 배를 뽑아낼 수 있었으니 요즘 말로 가성비 짱이라 해야 할까.

손녀 둘과 손자가 너무 좋아한다. 수영장보다 물이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고, 마음대로 놀 수 있어 좋다나. 헤엄치기엔 좁지만 물에서 퐁당퐁당 놀기엔 적당한가 보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연거푸 들어가 산다.



아침 일찍 마을 한 바퀴 도는 일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꽃들이 걔들에겐 다 훌륭한 장난감이다. 봉선화, 달개비, 호박꽃, 강아지풀... 만져도 보고 뽑아 머리에 꽂아도 보고. 그러다 풍뎅이나 개구리 보면 화들짝 놀라는 모습도 그저 귀엽다.

오후 다섯 시쯤이면 가까운 양남 바닷가로 나간다. 양남 해수온천 앞은 바다 풍광이 멋진데 놀러 온 사람은 적다. 집에서 미리 가져온 음식이나 주변 식당에서 시켜 먹으면 집에서 먹을 때완 또 다른 맛이 난다.

게다가 경주는 우리나라 유수의 관광지 아닌가. 아무리 더워도 냉방 시설 잘된 유익한 곳을 잘 찾아보면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립 경주박물관이다. 초등학생인 손녀 둘에겐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아한다.




이 글을 읽으면 아내는 동의할지 모르겠다. 손주들 오면 나는 그냥 놀아주면 그만이지만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 먹을 음식부터 장만해야 하니까. 뿐인가, 밭작물 관리하고 거두면서 쏟아지는 빨래와 방 청소와 네댓 시간 일하려 가는데 내색하지 않아도 힘들 터.
열흘 남짓 놀다가 헤어지는 날, 가기 싫다고 눈물 보일 때면 누가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 만들었는지 참 원망스럽다. 나도 그 애들 못지않게 보내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들딸만 보내고 손주들과 함께 더 놀았으면 하련만...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목우씨의 詩詩한 소통(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