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4편 :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김승희 시인 편 ♡
-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 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2007년)
<함께 나누기>
끝에 시인 소개에 언급되었습니다만 이 시인은 언어유희에 아주 능합니다. 오늘 시만 해도 단지 그래도란 시어 하나로 한 편의 시를 만들었습니다. 원래 그래도는 접속부사로 절망 속에 잠겼을 때 위안이나 희망을 북돋우는 말에 주로 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사고로 가장을 잃고 어린 자식을 돌봐야 할 처지에 놓인 여인에게, "슬프지만 어쩌겠노. 그래도 아이들이 착하고 영리하니 거기 희망 걸고 살아야지."
그런데 이 시에선 '그래도'의 '도'를 이곳저곳에서 섬(島) 뜻을 지니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접속부사로 다른 곳에선 섬으로. 그리하여 시인이 원래 노리고자 한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즉 ‘그래도’는 희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가장 낮은 곳에 /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라는 섬의 위치가 나옵니다. 여기서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은 어떤 곳일까요? 삶의 최하층, 극한의 절망,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생존의 위기 상황을 상징합니다. 그런 절망 속에서 '그래도 사랑하자', '그래도 살아가자'며 스스로 위로하고 삶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희망과 긍정의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 어떤 일이 있더라도 /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이 시구만 보면 해석이 쉽습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목숨을 끊지 말라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그런데 뒤에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이 붙음으로써 애매해집니다. 두 분처럼 천사 같은 착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구원이 온다고. 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두 분은 늘 웃으며 천사처럼 살았기에 그렇게 살면 끝내는 행복을 찾았노라고?
"그래도라는 섬에서 / 그래도 부둥켜안고 /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절망 속에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손을 맞잡는다면 희망은 아침 이슬처럼 내릴 겁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설 것이고,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곳에서 만날 수 있겠지요.
실패와 절망 속에서 어쩌면 그보다 더 낮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래도 살아야지 그래도 버텨야지 하며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힘들고 고단한 삶에 ‘그래도’라는 ‘섬’이 짜잔 하고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보렵니다.
오늘 시를 읽다 보면 '그래도'라는 말이 반복되어 머릿속에 콕 박힐 겁니다. 즉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어의 힘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라는 섬은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이요 ‘그래서 더 신비한 섬’이며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입니다.
그 섬에 가 살고 싶습니다.
*. 김승희 시인(1952년생) : 광주 출신으로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불의 여인’, ‘언어의 테러리스트’, ‘초현실주의 무당’이란 말을 들으며, [소월시문학상] 수상자이며,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 언어유희를 잘 활용하여 시대와 현실을 풍자하는 시를 잘 쓴다는 평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