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5편 : 김광규 시인의 '생각의 사이'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김광규 시인 편 ♡
- 생각의 사이 -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년)
<함께 나누기>
오늘 시는 근 50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 사회에도 적용 가능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미국의 형패를 여기에 대입하면. 트럼프는 장사꾼으론 탁월합니다만 모든 걸 경제(돈)로만 풀려 하다 보니 세상은 참 힘들어졌습니다. ‘경제 = 힘 = 정의’ 이 등식에만 매몰돼 정작 중요한 '사람'이 빠졌으니까요.
축구 후진국(?) 출신 손흥민 선수가 빼어난 선수가 될 수 있었음을 전문가마다 해석이 다릅니다만 공통점 하나는 ‘양발 이용’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만 나중에 결과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한 발만 뛰어난 사람에겐 그 발만 막으면 되는데, 양발이 다 뛰어나면 어느 쪽을 막아야 할지 몰라 당한다는 점.
예전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었는데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답니다. 즉 공학도가 아닌 인문학도였다는 말. 그런 그가 애플사를 설립했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IT 기술 정점의 제품 출시하는 일을 진두지휘했는데 대학 때 배운 철학이 큰 힘이 되었다나요.
또 IT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역시 하버드대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그가 고백한 바에 따르면 만약 컴퓨터 공학만 배우고 심리학을 배우지 않았으면 지금의 페이스북은 없었을 것이라 하였답니다.
지식 기반 사회에서 한 분야의 특별한 능력이 중요시되긴 하지만 지나치게 전문성에만 빠지면 다른 분야에 대한 포용력을 가로막아 균형 감각이 허물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다른 분야를 밀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죄악시하여 단죄하려 든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 휴지와 / 권력과 / 돈과 / 착취와 / 형무소와 / 폐허와 / 공해와 / 농약과 / 억압과 / 통계가 / 남을 뿐이다”
‘생각의 균형 감각’이 무너지면 어떤 폐해가 오는가를, ‘생각의 사이’를 외면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를 적나라하게 봅니다. ‘권력, 착취, 형무소, 폐허, 공해, 억압’ 모두 무시무시한 용어들입니다. 이 용어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인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일을 깊이 알지 못해도 세상일을 두루 알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순신 장군은 무과 출신이지만 여러 편의 한시(漢詩)와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시조와, 여느 문인 못지않게 쓴 수준 높은 [난중일기]를 남겼습니다.
오늘 시가 지적하는 지점은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는 사람, 여러 분야보다 한 분야에만 파고들어 통합적 사고가 안 되는 사람,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 남의 의견을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두 동강 난 우리 사회 현실도 여기에 딱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의 사이를 넓혀야 합니다.
*. 김광규 시인(1941년생) : 서울특별시 통인동에서 출신으로 1975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 한양대학교 교수로 봉직하다가 퇴직했으며, 현재는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아내인 정혜영 교수도 같은 대학교에 근무하다가 같은 해 퇴직.
시인의 시는 생각에 비뚤음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는 평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