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은 청년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44)

*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은 청년들 *



지난 토요일, 우리 마을 청년(?)들이 모여 마을 대청소를 하였다. 공동 상수도 물탱크 청소와 큰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섶 잡초 제거. 해마다 몇 번씩 해오던 일이나 작년부터 마을일을 주도하여 이끌어 오시던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몸에 탈이 나면서 청년들이 나서게 되었다.
제대로 된 모임이 결성되기 전 어느 날, 중씰한 나이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술 한 잔 나누곤 했다. 술 마시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모임을 만들며 이름을 정했다. ‘OO마을 청년회’

'청년회'란 말 그대로 청년들이 모임 가진다는 의미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 예순 살 이상의 나이였으니. 처음 청년회란 이름 붙이려 할 때 조금 망설여지긴 했다. 청년이란 용어가 어울릴까. 그렇다고 중년회란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웃 마을에도, 조금 떨어진 다른 마을에도 청년회란 모임이 있는데 다들 쉰에서 일흔 이하로 이루어진 모양이다. 하기야 경로당에 가려 해도 일흔 가까이는 명함을 못 내민다. 여든 이상만 꽉 들이찬 곳에 예순 후반이 어디 엉덩이를 내민단 말인가.


144-1.png (마을길 풀베기 작업)



청년, 청춘, 그리고 젊음. 이런 말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연령대도 변화했다. 최초의 청춘은 아시다시피 이팔청춘. ‘2 × 8 = 16’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16세를 청년으로 보았고 그 나이에 결혼이 가능하였다. 하기야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을 속삭일 때가 그때였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얼마 전 정부에서는 통계를 근거로 종합적으로 수렴해 봤을 때, 광의적인 '젊음'의 기준을 15~49세로 봤는데, 전남 곡성과 장흥에서 2019년 만들어진 '청년 발전 기본조례'에서도 청년 나이를 49살까지로 정했다고 한다.
헌데 15세에서 49세까지라 하면 너무 광범위하다. 이 말은 아직까지 법적으로 청년의 나이를 뚜렷하게 구분 짓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노년은 확립돼 있다. 만 65세로. 허나 이 나이도 지자체에 따라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70세로 상향 조정하겠다 하면서 흔들린다.

문제는 청년과 노년 사이에 ‘중년’이 들어가나 법적으로든 사회 통념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니 청년 다음 바로 노년으로 이어져 시골마을에선 중년에 이른 이들이 모임을 가지면 청년회가 될 수밖에 없다.


144-2.png (마을 공동수도 주변 청소)



단톡방을 통해 6시 30분 모이기로 하자 그 시간에 맞춰 청년회 회원 대부분이 나왔고, 회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분도 나와 모이니 모두 열 분. 그래서 나누어 일하기로 했다. 상수원이 있는 곳의 물탱크 청소하는 팀, 중간 물탱크 주변 잡초 제거하는 팀, 그리고 마을길 잡초 제거 팀.

원래는 마을길에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야 했으나 사이사이에 자기 집 앞 길가 잡초를 제거한 덕에 일거리가 많이 줄었다. 마을 청년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가 삽이나 괭이로, 또는 예초기로 신나게 일을 했다. 그렇지 않은가, 함께 모여 일하면 신날 수밖에.


젊음의 기준은 나이에 있지 않고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한다. 즉 내가 아직 젊다고 생각하면 젊었고, 나이는 어려도 늙었다 여기면 늙었다고. 또 ‘도전적, 진취적, 활기, 저돌적’ 이런 말보다 ‘현실 안주, 포기, 미루기’ 이런 말을 자주 쓰면 늙은이가 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젊지 않고 늙었다. 군데군데 병이 나고 마음도 몸도 다 해체돼 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청년회란 이름으로 마을일에 나서 함께 하니 잠시 동안이나마 늙었다는 생각이 숨어든다.


144-3.png (중간 물탱크 주변 풍경)



문득 학창 시절 배운 민태원 님의 「청춘예찬」 앞부분이 떠오른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 글만 읽고도 가슴이 들끓어 오른다면 아직 청춘이다. 또 심장의 고동소리가 물방아 돌아가듯 힘차게 돌아간다면 청춘이다. 그래, 예전에야 ‘人生七十 古來稀(고래희)’라 하여 일흔이 넘게 산 사람은 아주 드물다 했지만 지금이야 적어도 일흔까지는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144-4.png (예초기 돌린 뒤 빗질로 깨끗해진 마을길)



새로 뜨는 명언에 “청년은 미래를 말하고, 중년은 현재를 말하고, 노년은 왕년을 말한다.”가 있다. 모여 얘기 나눌 때도 ‘내가 왕년에 어떤 일을 한 사람인데...’ 하고 뻐긴다면 노년이지만, ‘내일은 무슨 일을 할까?’ 한다면 청년이다.
언제나 처음은 어렵지만 이렇게 모여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은 일만으로도 대단하지 않은가. 첫발만 내디디면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쉽다. OO마을 청년회가 꾸려갈 앞날이 어떠할 것인가. 기대해도 좋으리라.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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