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46)
(1) 기회는 기다릴 때 오지 않고, 기다리지 않을 때 온다
아는 이의 집에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아들이 2014년부터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는데, 꼭 합격점 바로 아래에 떨어져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 지나 조금씩 불어나던 모집 정원이 2019년에 이르러선 전년도보다 숫자가 줄어들자 완전히 포기하고 기업 입사 준비에 매달렸다 합니다.
문제는 포기한 지 딱 1년 지난 '20년 입학정원이 무려 전년도보다 2100명 늘어나자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그날 저녁, 저랑 술 마시면서 아는 이가 내뱉은 말입니다.
“빌어먹을 새끼들! 왜 우리 아들 공부할 때는 늘어나지 않고 그만둘 때 늘어나는 거야!”
(2) 필요할 땐 없다가, 필요 없을 땐 넘친다
오래전 우리 집 마당에 잔디 깔 일이 있어 아는 이에게 연락했는데 가까운 이들은 다들 약속 있어 못 온다고 해 조금 멀리 사는 이들을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겨우 세 명 찾았습니다. 비록 세 분이 잔디를 심어본 적 없다지만 나까지 합치면 넷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잔디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미 잔디를 두 번이나 심어본 터라 100평쯤 되건만 겁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도우미 셋은 처음인데도 부지런히 몸을 놀려 오후 세 시쯤엔 끝나리라 싶었습니다. 그리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히 일해 줘 고마운 마음에 점심식사로 아내더러 ‘정자 회센터’로 가서 네 명 먹을 만큼 회를 사오게 했습니다.
문제는 점심때가 되어 상에다 회와 매운탕을 펼쳐놓으려는데 갑자기 먼저 부탁한 가까운 곳에 사는 셋이 들이닥쳤습니다. 자기네들 일 다 마무리하고 도와주려 왔다면서. 오전에 부지런히 했기에 점심 먹고 난 뒤 한 시간쯤 더하면 다 끝납니다. 그러니 일곱 명이 할 일도 아니니 굳이 세 명 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하필 점심때, 4인분 생선회를 7인분으로 늘리는 비상작전(?) 끝에 겨우 식사를 마쳤습니다. 남은 일은 적어 삼십 분만에 끝내고 다들 돌아가고 난 뒤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아니 필요할 때는 못 온다 하고선, 필요하지 않을 때 와 사람 난처하게 만들지...”
(3) 그만 와도 되는데 비가, 비가 또 내립니다
요즘 우리나라 기후를 ‘가을장마’라 합니다. '가을장마'란 말을 예전에도 썼다고 하는데 제게는 익숙지 않은 말입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비가 내립니다. 아시다시피 시골엔 지금 비가 올 때가 아니고 와서도 안 됩니다.
벼와 밀 같은 곡식은 마지막 성장의 햇살이 필요하고, 고추와 깨처럼 이미 거둬들인 작물은 햇볕에 바짝 말려야 합니다. 그런데 비라뇨? 마을길 걷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 대신 쓴웃음과 함께 고개부터 젓기 시작합니다. 하필 오늘도 내일도 기상예보에 비가 잔뜩 그려져 있구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 한 구절 인용해 봅니다.
"마지막 열매들을 영글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어,
열매들이 온전히 무르익게 하시고
진한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해 주소서."
비가 올 때가 아니건만, 아니 와선 안 되건만 무심한 비는 농투사니의 애간장을 태우려 작정한 듯 자꾸만 쏟아붓습니다.
(4)부를 땐 오지 않고 안 부를 때 온다
대학 졸업을 앞둔 한 달 전, 제가 다니던 과 학과장님이 부르셨습니다.
"OO야, 이번에 대학원 진학 안 할래? 네가 고전시가(古典詩歌) 쪽 파겠다고 하면 내가 적극 밀어줄께."
허나 대학원 진학보다 당장 아버지, 어머니, 동생의 생계를 짊어져야 할 입장이라 부득이 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야간부가 있는 학교까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지만 당시 야간은 채용 관계가 좀 위험(?)했습니다.
지금은 교수되기가 별 따기보다 더 어렵지만 그때는 박사 아닌 석사 학위만 받으면 최소한 전문대학은 갈 수 있었습니다. 중고 교사되기는 더욱 쉬웠고요. '하다 하다 안 되면 교사라도 하지.' 해서 붙은 이름이 ‘라도교사’. 그래서 저도 '라도교사' 출신입니다.
3년 뒤 동기 세 명이 4년제 대학교 전임으로 갔다는 소식에 집 안의 형편이 조금 나아진 걸 핑계로 교수님을 찾아갔더니 반응이 전혀 달랐습니다.
대뜸 하시는 말씀,
“이제 자리도 없고, 대학원도 정원 넘쳐 시험도 쳐야 하고...”
그러니까 학위 받아도 석사들이 이미 쏟아져 나와 대학교 전임으로 갈 자리가 없단 말씀과, 전에는 교수 추천으로 시험 면제를 받고 진학할 수 있었는데 이젠 대학원 입학시험도 쳐야 한다는 말씀.
탈래탈래 교수연구실 나오다 문을 닫으려는데 교수님의 혼잣말이 슬쩍 들려왔습니다.
“그러게 부를 때 안 오고...”
<마무리>
살다 보면 정작 필요할 때는 없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넘칩니다. 올해 봄 밭작물 심을 때 비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른 곳이 한두 곳이던가요? 잔뜩 준비를 하고 있다가 포기하고 돌아서면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미 다 끝난 경우도 한두 번이던가요?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지만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 그렇군요, 제 부모님도 못난 불효자식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