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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2. 2021

제20화 : 꽃도 아닌 꽃, 물봉선화


  아파트에서만 줄곧 살다가 산골마을로 옮긴 뒤 맞이한 첫 해 가을 어느 날, 마을 이곳저곳을 살피려 다녔다. 우리 마을에는 어떤 분들이 사는지, 산에는 어떤 짐승들이 사는지,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새가 우는지 … 모든 게 궁금하였다.

  나들이 나섰다가 가장 먼저 만난 이가 가음댁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우리 집 땅의 원주인이기도 하다. 말 붙일 거리를 찾으려고 눈을 돌리는데 마침 꽃 한 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당연한 일, 원래 풀꽃 이름 아는 게 거의 없었으니 …


  “할머니 저 꽃 이름 뭐예요?”

  그러자 낯선(?) 이의 물음에 선뜻 대답해주셨다.

  “저건 꽃도 아니지예. 저리 못 생긴 꽃을 꽃이라고 할까예.”

  할머니의 말이 재미있어 그걸로 화제 삼아 얘기를 계속 나눌 수 있었다. 그 뒤 할머니는 마을에서 우리 부부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었다.


  요즘 아침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꽃이 바로 물봉선화다. 할머니가 '꽃도 아니라고 한' 그 꽃이 활짝 피어 있다. 그때 왜 할머니는 물봉선화를 못 생겼다고 했을까? 가만 보면 그보다 더 못한 꽃도 보이건만... 또 솜솜 뜯어보면 예쁜데...



  이해는 간다. 풀꽃 중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리에서 물봉선화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봉선화에 ‘물’이 붙은 그대로 그늘 진 산기슭 물 흐르는 곳 같은 후미진 곳에 피니 시선을 끄는 관심의 대상이 못 된다.

  해도 나는 이맘때의 꽃 중에 물봉선화를 최고로 친다. 아니 물봉선화만 눈에 들어온다. 그 처연(悽然)한 아름다움! 가능한 토박이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한자어로 표현한다. 구슬프고 애달픈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 바로 물봉선화다.


  초록빛 지천인 산기슭 조금 습한 응달진 곳에, 붉은빛인 듯 자줏빛인 듯 무리 지어 피어 있다면 그 꽃은 물봉선화다. 이와 비슷한 빛깔의 꽃나무로는 자목련이 있고, 풀꽃으로는 엉겅퀴가 있다. 그런 꽃들과 비교하면 물봉선화는 확실히 촌티가 난다.

  가음댁 할머니가 ‘꽃도 아닌 꽃’이라고 평가한 까닭이 바로 이 ‘촌티’에 있음이다. 즉 시골스러움. 우선 화사함이 없다. 사진으로는 제법 때깔 고운 꽃이건만 워낙 찍는 이들이 잘 찍어서 그렇지 꺾어 실제론 꽃병에 꽂아 두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밝은 곳보다 조금 어두운 곳에 피기에 '드러냄의 꽃'이 아닌 ‘감춤의 꽃’이다. 사람으로 치면 내로라하는 이들을 피해 따돌림받은 듯 한 구석에 버려진 이방인 이미지의 꽃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꽃이다.

  빛깔도 채로 곱게 걸러냈다기보단 대충 물감통에 담갔다가 툭 끄집어낸 듯한 느낌이라 길가에 피어 있더라도 건드릴 사람 별로 없을 듯하다. 대신에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인데, 손대면 톡 하고 터져버리는 열매의 성질을 따서 붙였으리라.


  물봉선화에 끌림은 일반 봉선화와 비교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봉선화는 이미 개량되어 갖가지 빛깔로 사람을 유혹한다. 따서 손톱에 물들이고 싶도록. 아니면 마당에 심어 두고 보고 싶을 만큼.

  허나 물봉선화는 그렇지 않다. 보는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사람을 일부로 끌어당기지 않는다. 가까이하려는 사람에게만 살짝 제 속살을 내밀뿐. 기교도 치장도 없이 이곳저곳 '처진 자줏빛'으로 핀다. 그래서 나는 물봉선화를 좋아한다.


  나는 물봉선화를 좋아한다. 

  산골짜기에 숨어 살아 좋아한다.

  거들떠보는 사람 적어서 좋아한다.

  수줍어하는 그 모습이 예뻐 좋아한다.

  굳이 자랑하고자 애쓰지 않아 좋아한다.

  여름 끝나고 가을 시작됨을 알려줘 좋아한다.

  봉선화는 외래종, 물봉선화는 토종이어서 좋아한다.

  저의 본모습 찾고자 하는 이에게만 속살 보여줘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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