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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5. 2021

제16화 : 산국을 꺾다 벌들에게 들키다


  몇 년 전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 녀석이 수업시간마다 고개를 숙이기에 일으켜 세웠다.

  “야 이 녀석아, 너는 왜 수업 때마다 졸아?”

  “머리가 아파서요.”

  늘 이런 식이었다. 거짓말임이 뻔히 드러나 보임에도 머리 아프다고 하는 덴 의사가 아닌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지나치듯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던졌다.

  “혹 머리 아플 때 낫게 하는 나만의 비법이 있는 사람?”

  솔직히 별 기대를 안 했다. 그런데 한 녀석이 벌떡 일어서더니,

  “선생님, 그럴 때는 머리를 칠판에 쾅쾅 박으면 됩니다.” 하는 게 아닌가.

  당장 늘 조는 녀석을 불러내 앞에 세웠다.

  “네 친구의 처방대로 해야겠다. 자, 내가 박아줄까, 아니면 네가 박을래?”

  급우들은 책상을 치며 깔깔 웃는 대신 녀석은 기겁을 했고, 그 덕인지 한 일주일쯤 졸지 않더니 그 뒤로 또 졸았다.



  꾀병이 아닌 진짜 머리 아플 때 나을 수 있는 약(?)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달내마을에 한창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산국(山菊)의 꽃과 가지를 함께 말려 베갯속에 넣으면 머릿속이 맑아진다고 나온다. 그런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산국은 아침이면 노오란 빛깔을 머금고 햇살을 받으며 곱게 얼굴을 편다. 꽃은 한낮에 활짝 피었을 때를 최고로 치는 이가 대부분이지만, 꽃의 참 아름다움은 아침에 돼야 더 잘 보인다. 산국 역시 짙은 노랑이 주는 강렬함을 희석시키면서 이슬 머금은 청초함을 보여주는 아침이 더 이쁘다.


  솔직히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도 산국을 많이 보았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냥 산에 피는 노란 꽃 정도로만. 그런데 몇 년 전 가을, 처음 마을 뒷산을 노랗게 뒤덮은 꽃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 꽃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생겼다. 그 화려한 빛깔과 그 진한 향기 때문에.



  며칠 전 치과 갔다가 돌아와 돌계단을 오르자 마루에 노란 꽃이 잔뜩 보였다. 산국이었다. 아침에 아내가, “오늘 산국 좀 뜯어와야겠어요.” 하기에 작년처럼 말려서 차를 만들려나 했는데, 갈무리하고 있는 걸 보니 꽃만이 아니라 가지까지 함께 전지가위로 자르지 않은가. 의문을 확인하기 전에 아내가 먼저 말했다.

  “당신이 걸핏하면 두통에 시달리잖아요. 그저께 텔레비전에 보니 산국의 꽃과 가지를 함께 말려 베갯속에 넣으면 머릿속이 맑아진다고 해서 …”

  은근한 배려가 고마웠다.

  “그런데 좀 적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 하고 흐리는 말에,

  “알았어. 내 곧 옷 갈아입고 따오지.”


  작년에는 산국을 따러 산에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올해는 산보다 집 주변에 더 많이 피었다. 우리 집의 위치가 앞만 제외하고 양쪽 옆과 뒤가 산이니 한 걸음만 나가면 산국이 지천이다. 가뿐한 마음으로 낫을 들고 갔다.

  그리고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에 낫을 들이대었다. 그런데… 갑자기 윙윙 하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벌이었다. 해도 녀석들을 쫓아버리고 다시 낫을 들이대는데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몰려들었다.


  잠깐 동안 위기의식을 느꼈다. 비록 말벌이나 땡삐에 못 미치지만 쏘이면 아프기에. 그러나 아내에게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그냥 물러날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대나무가 보였다.

  들고 꽃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녀석들을 겨냥하여 휘두르자 물러난다. 그런 뒤 낫을 대려는데 물러났던 벌들이 다시 몰려든다. 아무래도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싶어 작정하고 휘두르는데 한 의문이 들었다. 이들이 왜 이렇게 결사적으로 달려들까 하는.


  답은 쉽게 나왔다. 저들의 양식을 위해서라는. 이런 인식 뒤에 또 다른 인식이 따랐다. 이 산국은 사람에게는 그냥 꽃이지만 벌들에게는 먹이가 아닌가. 이제 벌들은 곧 닥쳐올 겨울에 대비해야 한다. 즉 월동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러면 가능한 많은 꿀을 모아야 하고.

  그래서 가을 느지막이 피어 있는 산국에 매달려 있음이다. 그런데 내가 산국을 꺾어간다면? 벌은 꿀을 모으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나의 이기심이 꽃을 꺾으려 든 것이다. 산국차를 만들어 마시고 베갯속에 넣어 두통을 없애겠다는 얄팍한 이기심이 꽃을 꺾으려 든 것이다.


  만약 윙윙 거리는 벌을 보지 못했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낫으로 베어 햇볕에 널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맛볼 산국차 맛을 음미하며 혼자 입맛을 다실 지도 모르고, 산국베개를 벨 기쁨에 흐뭇한 미소를 흘렸을지 모른다.



  빈손으로 갔더니 아내가 의아한 눈길로 본다.

  “벌들 때문에 ….”

  더욱 의아한 눈길이다.

  “산국을 꺾으려는데 벌들이 마구 잉잉거리잖아. 그래서 못 꺾었어.”

  아내가 잠시 어이없어하더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시골에선 하나도 취할 게 없지 않으냐고. 도토리나 밤은 다람쥐 먹이니 주워선 안 되고, 칡이나 야생의 돼지감자는 멧돼지의 먹이니 그냥 놔둬야 되냐고.


  그러면서 아내가 “그럼 이것도 다 갖다 버릴까요?” 했다. 놀리는 말인 줄 아는 터라 ‘갖다 버려라.’고 하려다,

  “이왕 꺾어놓은 건 어쩔 수 없지.” 했다.

  아 나의 이기심! 언제쯤 고쳐질까?


  *. 꽃 사진 가운데 산국 아닌 게 섞였습니다. 들국화라 통칭하는데, 저로선 구별할 능력이 없어 그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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