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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6. 2021

제15화 : 석류나무의 외침

 

  나는 석류나무입니다. 사는 곳은 경주시 산골마을 정 아무개 씨네 텃밭입니다.

  오늘은 마음먹고 하소연하렵니다. 잠시 짬 내 제 하소연을 한 번 들어봐 주세요. 특히 나중에 혹 전원생활 꿈꾸시는 분이라면 필히.


  15년 전 4월 5일, 저는 울산 한 묘목점에서 현재의 주인에게 5천 원에 팔려 이곳에 왔습니다. 보리수, 산수유, 모과와 함께. 정씨네 텃밭에서도 제가 위치한 곳을 말하자면 잔디밭이 끝나는 지점에 고구마밭이 있고, 조금 더 가면 돼지감자밭이 있는데, 고구마밭과 돼지감자밭 사이의 언덕 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주인은 나름대로 저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물도 자주 주고, 거름도 듬뿍 주어 자라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주었습니다. 혼자 말하는 걸 들으면 꽤나 정성을 기울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책을 읽으니 이 녀석은 거름이 너무 많아도 안 된다고 하니 올해는 거름을 적게 줘 보자.”

  “인터넷을 보니 은행나무처럼 암수 두 그루가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하니 한 그루 더 갖다 심어볼까?”

  “진드기 등의 벌레가 끓으면 말짱 도루묵이라 하던데 짬짬이 약도 쳐야겠네.” 

  그래서 어느 해는 거름을 듬뿍 받아 배불리 먹었다가 다음 해엔 적당히, 그다음 해엔 쫄쫄 굶기도 했습니다. 또 어느 핸가 한 그루 더 사와 심어 짝이 생겨 심심함도 덜어주었습니다.

  또 다른 해엔 어디서 구해왔는지 시커먼 약을 부어주었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혼잣말하는 걸 들으니 목초액이라는데, 그 냄새는 무척 고약했습니다. 물론 농약 냄새보다야 덜하지만. 


  허나 주인이 놓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제가 고구마밭과 돼지감자밭 사이에 있다고 했지요? 그곳은 두더지가 아주 활동하기 좋은 곳입니다. 두더지에게 뿌리식물은 다 녀석의 먹이입니다.

  그러니 두더지가 돼지감자와 고구마를 왔다 갔다 하며 먹기 좋도록 땅속에 굴을 뚫어놓았습니다. 즉, 제 뿌리 아래로 구멍이 뻥 뚫려 있다는 말이지요. 아무리 거름을 많이 준들, 또 아무리 짝을 챙겨 준들, 벌레 오지 말라고 목초액을 뿌린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저는 늘 뿌리가 들린 채로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주인아저씨에게 그 고통을 전하려 애를 썼습니다. 한 해는 가을이 채 되기도 전에 잎사귀를 누렇게 만들었고, 다른 한 해는 꽃만 잠깐 피었다가 이내 져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또 한 해는 나뭇가지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인은 참 바보였습니다. ‘거름이 제대로 안 삭았나?’, ‘사온 나무도 먼저 것과 똑같은 암놈, 아니면 수놈인가?’, ‘목초액이 너무 독했나?’ 이렇게 혼잣말하는 걸 들어보면 참 머리가 안 돌아가는 양반이었습니다. 


  아, 저라고 제 새끼를 만들고 싶은 마음, 즉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게 우리들이 사는 목적 아닙니까? 그러나 종족 번식보다 우선 급한 일은 저부터 살아야만 했습니다.

  비가 와도 그대로 새 버리니 늘 갈증이 났습니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잎을 많이 다는 겁니다. 이슬이 자주 많이 내리는 곳인지라 잎사귀에 수분을 많이 저장하면 할수록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열매는 포기해야 했습니다. 가장 영양가가 많이 공급되는 곳이 거긴데 다 뿌리를 통해 올라가야 하건만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열매를 달지 않았습니다. 헌데 주인아저씨는 제 옆에 서기만 하면 아래와 같은 말부터 내뱉었습니다.

  “이 녀석, 올해도 안 열리기만 해 봐라. 잘라버릴 테니.”

  물론 못마땅하기야 하겠지요. 열매가 안 달리는 저 같은 과실수는 존재 의미가 하등 없으니까요.


  저는 주인아저씨가 옆에 서기만 하면 으름장부터 놓는 바람에 늘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우리 주인은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저번에도 매실이 시원찮게 열린다고 바로 잘라버렸으니까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식물은 감정이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동물만 슬픔과 기쁨과 노함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헌데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똑똑한 사람들은 양파를 통하여 얻은 실험 결과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즉 같은 양파 종자 200개를 각각 100개씩 두 방으로 나눠 한 곳에서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한 곳에서는 시끄러운 고함과 욕설을 틀어주었답니다. 그 결과 조용한 음악을 튼 곳에서는 100개 가운데 98개가 제대로 자랐고, 다른 곳에서는 절반도 채 자라지 못했답니다. 

  주인은 당신의 으름장이 저를 더욱 힘들게 한다는 걸 모르는가 봅니다. 뿌리 쪽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두더지 지나간 흔적이 남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말할 수도 없습니다. 눈만 좀 크게 뜨면 보이는 걸 보지 못하고 으름장만 놓으니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고구마나 돼지감자를 해마다 캐면서 두더지가 뜯어먹은 흔적을 보았음에도 뿌리 쪽에 흙 없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있으니 정말 답ㆍ답ㆍ합ㆍ니ㆍ다. 잘 모르면 이웃 어르신들께 물어보면 되련만...

  우리 주인처럼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책 읽고 인터넷 보면 다 아는 듯이 여기는 '헛똑똑이'이기 때문입니다 올 가을 저는 잘려나갈 겁니다. 뿌리에 구멍이 난 걸 모르는 주인은 저를 잘라버릴 겁니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주인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잘려나가도 다른 나무에게는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만 눈 뜨면 보이는 사실이거든요. 보지 못했다고 해서 책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차를 몰고 가다가 사람을 쳐놓고는 가장 흔히 하는 변명이 ‘보지 못했다’는 말이라면서요. 그럼 죄과가 좀 덜어지나요? 한 달 구류 살 걸 보름이면 풀려나나요? 어림도 없는 말이겠지요.  


  시골에 살려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답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그만큼 논에 자주 나가야 된다는 말이겠지요.

  혹 이런 말도 들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농투사니의 눈은 과학자의 눈을 닮아야 한다.’

  대충 보지 말고 항시 예리하게 주변의 정황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인아저씨가 이제부터라도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농사는 책으로, 인터넷으로, 말로 짓는 게 아니거든요. 발품 팔며, 막걸리 댓 통 사들고 어르신들 찾아다니며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헛똑똑이, 참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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