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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7. 2021

제14화 : 새들도 겨울 된바람을 피하고 싶다


  시골의 가을은 거둬들이는 계절이면서 또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농투사니가 못 된 체 그냥 시골에 살 뿐인 우리 부부도 가을이면 이것저것 거둔다.


  우선 고구마를 다 캐 한 사흘 말렸다가 창고에 저장했다. 누런 호박도 따다 놓았지만 배추와 무는 아직 좀 멀었다. 그리고 마늘과 양파 심을 밭에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거름 붓고 비닐로 덮어두었다. 이제 다음 주쯤 씨마늘과 양파 모종을 구해 심고, 겨울초 씨 뿌리면 일단 겨울을 지날 작물 준비는 대충 끝난다.

  그러고 나서 뭘 해야 할지를 찾아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감나무 곁을 지나자 박새 한 마리가 뛰쳐나온다. 겨울을 지낼 녀석의 집은 백 년 된 감나무 속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무둥치에 뚫린 구멍이다.


  감나무가 오래돼 고목이 되면서 군데군데 구멍이 생겼다. 가장 큰 구멍은 뿌리 쪽인데, 거기엔 큰 들통 들어갈 정도로 나 있다. 둥치도 썩은 데가 많아 손보았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다. 그곳으로 박새나 곤줄박이 같은 작은 새가 드나드는데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멍이 이곳저곳 나 있어 맞바람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면 새집을 만들어 달아 준다. 한 번 만들면 몇 년을 버틸 수 있으나 몇 년 전부터는 어림도 없다. 워낙 태풍의 강도가 세져 아무리 튼튼하게 달아놓아도 한 번 오면 다 떨어져 날아간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에 새집을 만든다.


  아침에 아내랑 마을 한 바퀴 돌다 길가에 버려진 합판 조각이 눈에 들어와 내려다보자, 눈치 달인인 아내가 또 한 마디 한다.

  “또 쓰레기가 보이지요. 어지간히 갖다 놓아요. 이제 둘 곳도 없는데.” 하는 말에 그냥 지나치려다 아내의 흘겨보는 눈을 무시하고 집었다. 물론 입으로는 이리 말하면서.

  "그냥 두면 환경오염되잖아. 이렇게라도 치워 없애야지."

  이 집에서 겨울을 보내고 나면 녀석들은 봄에 새끼를 낳을 게고, 새끼가 자라는 집이 될 터.



  박새집이라?

  작년 봄에 우리 부부는 박새와 전쟁을 치렀다. 박새와 전쟁이라니? 죽이고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녀석이 아무 곳에나 둥지를 만드는 통에 우리는 막고 녀석은 지으려는 그런 전쟁이었다.

  웬만한 자리면 그냥 둬도 좋으련만 하필이면 녀석이 둥지를 튼 곳이 창고 뒤 장작 쌓아놓은 곳 아니면 우체통 속이었다. 집 뒤 장작 쌓아놓은 곳은 별일 없으면 그냥 그대로 두려 했으나 땔감 나르다 들르면 부리나케 뛰쳐나온다.


  그런데 그곳보다 우체통이 더 문제였다. 녀석은 꼭 그곳에다 집을 지었다. 제법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즈음 날이면 날마다 우체통 속에 잔가지나 나뭇잎을 갖다 놓았다. 한 번은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을 넣다가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무심코 편지를 넣는데 안에서 갑자기 박새가 튀어나왔으니... 사실 놀라기로 하면 박새가 더 놀랐겠지만. 그 뒤로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우체통 속 청소를 해야 했다. 그러면 녀석은 다시 그 속을 채워놓고…


  그래서 최근 몇 년 간 새집을 만듦은 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람을 위해서다. 우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물론 여기엔 이것저것 손대는 걸 좋아하는 내 취미가 한몫했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베니어판을 갖고 오자마자 즉시 실행에 옮겼다. 어릴 때부터 뭐든 만드는 걸 좋아한 취미가 이럴 때는 썩 도움이 된다. 유일한 구경꾼 까치 한 마리도 신기한지 뽕나무 위에서 내려다본다.



  처음 생각에는 두 개쯤 만들려고 하다가 우리 집 감나무가 워낙 커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몇 개나 필요할까? 나무를 다 채우려면 수십 개가 있어야 하지만 쉬엄쉬엄 만들어 달기로 하였다. 오늘 우선 네 개 달고 짬날 때마다 만들면 달 곳이야 좀 많은가.

  이렇게 가만 생각하다 보니 정말 그동안 나는 자연을 훼손만 했지 도움을 준 적이 거의 없다는데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심은 때보다 자른 적이 더 많았고, 날짐승이나 들짐승을 보호한 때보다 피해를 입힌 적이 더 많았으니까.


  새가 날아든다는 말은 자기들이 살 만한 공간이 된다는 말이다. 거꾸로 새들이 찾아오지 않는 곳이라면 그들이 머물 만한 곳이 아니란 말이다.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놀릴 만큼 판단력이 떨어지는 새들도 자기들을 반겨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안다.

  [흥부전]에서 보듯이 제비가 흥부네 집에 둥지를 틂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흥부네 가족의 인간됨을 새들이 알아서다. 거꾸로 놀부네 집에 제비는 절대 집을 짓지 않는다. 그러니 다리 부러진 제비를 자기 집에선 찾을 수 없어 온 동네를 다 뒤져 돌아다녀야 했고...


  새들은 희한하게도 외로이 사는 이들의 집이나 마음씨 착한 이들의 집을 찾아가 둥지를 튼다. 우리 집에 찾아오는 박새들은 주인장이 착해서가 아니라 주인장이 더없이 외로운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아는 이들도 쉬 찾아오기 힘든 산골짝에 들어와 사니 그들 눈에도 얼마나 외로워 보였을까? 아, 어쩌면 아내는 나보다 착하니 아내 보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내게 부족한 게 사랑과 따뜻함인 걸 녀석들이 알고 찾아오는데 어찌 새집 만들기를 미룰 것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집을 만든다. 비록 없는 솜씨지만.


  *. 우체통이 붉어선지 박새가 들어오고, 박새집엔 들어오지 않아 나중엔 붉게 칠했더니 그제사 들어왔습니다. 전문가는 시간이 좀 지나 들어왔을 뿐 둥지 빛깔과는 관계없다고 하나, 저는 그 빛깔 때문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커버 사진은 박새 같은 작은 새들이 야생에서 지은 집이고, 글 속의 두 사진은 작년에 만들었던 새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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