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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08. 2021

제13화 : 삽질하기


  고구마 캐고 난 밭에 양파 심을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관리기라도 있으면 금방 해치우겠지만 조그만 텃밭 때문에 살 수는 없고... 결국 모든 작업을 삽으로 했으니 그럴 만도 한 일.

  문득 이런 생각이 일었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시골일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호미로 잡초 뽑기도, 예초기를 계속 돌리기도, 밭에 돌 골라내기도, 채소 씨앗 뿌리고 물 주고 거두기도 힘들다. 그 가운데서 나는 삽질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포실포실한 땅에서야 삽이 쑥쑥 잘 들어가니 별 힘 안 드나, 우리 땅은 비 오면 뻘땅이요 안 오면 콘크리트라. 그래도 그동안 거름 넣은 지 십 년이 넘어선지 처음보다 힘이 덜 들지만 삽질하고 나면 아직도 발이 뻐근하다.

  고구마 캘 때는 호미로 해야 덜 상하지만 나는 삽으로 캔다. 이왕 캐면서 땅을 확 뒤집어엎어야 하니까. 그래야 양파를 심을 때 힘이 덜 든다. 삽질할 땐 삽을 땅 속 깊이 박아야 하는데 한 번에 잘 안 들어가면 두 번씩 발로 콱 밀어 넣어야 한다. 그런 뒤 흙을 뒤집어엎고.



  이렇게 몇 번 삽질하는데 지렁이가 잘려 나왔다. 밭에 지렁이가 많음은 좋은 현상이나 삽에 두 동강 났을 때는 좀 그렇다. 그래도 삽으로 밭 일구는 사람이 지렁이 잘렸다고 해서 일을 중단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일이 하도 잦으니까.

  또 지렁이는 잘렸다고 해도 머리가 안 잘리면 뒤 몸뚱이 부분은 다시 만들어진다고 하니까 관계치 않고 다시 삽질을 계속했다. 그런데... 삽질하는데 이상한 기분에 아래로 눈을 주니 세상에! 개구리가 보이는 게 아닌가. 제 딴엔 거기서 겨울잠을 자려 함인 듯한데...


  문제는 개구리 오른쪽 앞다리가 반이 잘린 채였다. 지렁이가 잘릴 때완 기분이 영 달랐다. 삽에 개구리 다리 잘린 걸 처음 보았으니. “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언짢음을 뒤로하고 보니 위기를 느낀 개구리가 저쪽으로 껑충 뛰는데 그대로 넘어졌다. 한쪽 다리가 절단됐으니 중심을 잡기 힘들었을 터. 할 수 없이 삽으로 떠 저쪽으로 옮겨주었다.

  다리 잘렸다고 하여 죽지는 않을 터나 이제 저 개구리는 거기서 자리를 잡아 다시 잠들까, 아니면 세상을 비관하며 살까? 삽질 조심스럽게 하지 않아 개구리 다리를 잘랐으니 그 개구리는 지렁이처럼 다리를 재생시키지 못하고 평생 한쪽 다리로 살 수밖에 없다.


(다리 잘린 개구리는 차마 찍지 못하고 다른 사진으로 대체)


  ‘삽질하다’라는 낱말의 뜻엔 진짜 삽으로 흙이나 모래 등을 퍼 나르는 행위 말고 다른 두 가지 뜻이 더 있다. 하나는 관용어로 “쓸모없는 일을 하다”는 뜻을 지닌다. 예전 군대에서 상급자가 부하에게 ‘군기’를 세우려는 의도로 쓸모없는 일, 예를 들어 삽으로 땅을 판 후 그걸 다시 메꾸는 작업을 시킨 데서 유래한 말이다.

  다른 하나는 남의 글이나 자료를 그대로 퍼 옮기는 일이다. 진짜 삽질이 흙을 퍼 옮기는 일이니 자료를 퍼 옮긴다는 점이 같아 만들어졌다. 요즘 이 삽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자료를 다른 곳에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 꽤 된다.


  곤경에 빠진 어려운 사람을 도운 따뜻한 얘기나, 삶의 경륜이 담긴 노대가들의 공감 가는 인생담이나, 함께 알아야 할 생활에 꼭 필요한 유익한 자료나, 건전한 재테크 등에 필요한 정보를 담은 자료라면 얼마나 좋으랴.

  불행히도 이러한 자료도 보이지만 편파적인 이념에 몰입한 정치적인 자료, 아니면 누구를 비방하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도 수두룩하다. 한쪽만의 이념이 담긴 SNS 자료에 몰두하다 보면 거기에 세뇌돼 '이쪽은 언제나 옳다'는 식으로 바른 판단을 못하게 된다.

  또 남을 비방하는 자료는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게 된다. 이미 여러 사람이 거기에 담긴 내용으로 충격을 받아 목숨 끊었지 않은가. 이러한 자료를 만든 사람은 흔히 '클릭수'를 늘이기 위해서 자극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 진실과 허구 이런 것은 뒤로 돌리고.



  내가 양파 이랑 만들기 위해 삽질하다가 개구리를 평생 불구로 만들 듯, 이런 근거 없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들은 사람을 또 다른 불구자로 만든다. 즉 그 삽질에 끌려 들어가면 그 내용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여겨진다. 한 걸음 물러서 보면 허점투성이건만.

  우리가 삽에다 발을 힘껏 밟는 삽질은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 결과를 보면 뿌듯하다. 그러나 신중하지 못한 자료 퍼 옮기기는 그 자신을 병들게 할 뿐이다. 이제 밭에 삽질할 때도 좀 더 조심해야겠다. 의도하지 않게 작은 동물들을 죽음으로 내몰거나 불구로 만들지 않도록.


  어제 삽질로 한쪽 다리가 잘라진 개구리가 쉬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개구리가 말할 줄 알면 이렇게 소리칠지 모르겠다.

  “제발 우리한테 삽질하지 말고 당신이나 제대로 삽질하시오. 죄 없는 우릴 해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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