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살이에서 가장 고약한 식물은 무엇일까? 아마 한 번이라도 산골에 산 경험이 있는 이라면 즉시 떠올릴 식물이 칡넝쿨이리라. 이 녀석은 정말 고약하다. 절대로 저 홀로 있지를 않고 다른 나무에 달라붙는다. 아니 달라붙는 걸로 끝나지 않고 칭칭 감아 목을 조른다.
뽕나무, 감나무 같은 유실수는 물론 밭에까지 침범하여 농작물까지 감아 목을 조르는데, 그 목조르기 기술은 예전 프로레슬링에서 보던 ‘코프라 트위스트’를 연상케 한다. 한 번 칡에 감긴 나무는 당연히 생장에 지장을 받아 그 해 열매 맺기를 포기해야 하며, 감긴 자리엔 굵게 패인 상처를 안게 된다.
문제는 이 녀석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뿌리를 찾아 없애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뿌리가 워낙 깊숙이 박혀 완전히 빼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한 자(30cm) 정도만 옆으로 나아가도 그 자리에 다시 뿌리를 내리니 원뿌리를 없앴다고 하여 절대 죽지 않는다.
우리 집 위치가 옆에도 산, 뒤에도 산, 앞에는 언덕이라 봄이면 작년 칡덩굴이 내렸던 곳을 찾아 어린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이러면 아무래도 새로 힘 받아 다른 곳으로 뻗으려면 시간이 걸리니 현재로선 그 방법이 유일하다. (최근에 칡이 뿌리내렸던 자리에 소금을 뿌린 뒤 흙을 덮으면 죽는다는 기사가 뜸)
달내마을로 온 지 십오 년이 넘었으니 녀석과 15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늘 진 쪽은 나였고. 이렇게 전쟁을 치르다 보니 적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녀석이 꼭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는 걸. 지면서 터득한 진리(?)랄까?
퇴직하기 한 해 전의 봄이었다. 집 뒤에 찔레 몇 가지 솟아나기에 가시에 찔릴까 그냥 뒀더니 이내 무리를 이뤄 밭을 형성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바로 아래 어린칡의 순이 이제 막 나오고, 십여 미터나 되는 곳에 어른칡이 손을 뻗고 있었다.
처음에는 칡을 제거하려다 군데군데 솟은 찔레에 찔릴까 봐 그만두었다.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떠올라서라기보다, 사람도 아프면 제 놈들도 아프지 않겠나 하며. 어디선가 식물도 아픔을 느낀다는 기사를 읽었기에.
얼마 뒤 어린칡은 여전히 찔레 주위로만 돌 뿐 선뜻 가지에 넝쿨을 올려놓지 않는 모습이 마치 겁을 내는 듯이 보였다. 그 사이 어른칡은 제법 가까이 다가왔고. 다시 며칠 더 지나자 어린칡은 그대로인데 어른칡이 찔레 위에 넝쿨을 걸쳤으나 한동안 쉽게 나가지 못했다. 그걸 보며 역시 ‘식물도 아픔을 느낀다는 그 학설이 맞구나.’ 했다.
사흘 뒤 어른칡이 두어 줄 넝쿨로 찔레를 덮자 묘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어른칡이 덮은 바로 그 위에 어린칡이 그걸 발판 삼아 나아가는. 처음에는 내가 예민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분명 찔레 위에 어린 덩굴이 바로 덮는 경우는 없었고, 넓은 덩굴이 덮은 그 위에 겹쳐짐을 확인했다.
별것 아닌,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을 위해 희생이 되어주는 사실이. 그러나 고작 식물이 아닌가. 식물이… 동물의 세계에서는 자기 종족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말이다. 동물보다 훨씬 하등생물인 칡이 그런 고급(?) 행동을 하다니 …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청소 담당구역이 교문 앞이라 아이들이 나오면 각자 맡은 구역으로 가 제대로 청소하는지만 살펴보면 되었다. 그래서 각기 자기들이 빗질할 자리를 지정해주었다. 갑돌이는 교문에서 첫째 은행나무까지, 을순이는 첫째 은행나무에서 셋째 은행나무까지 하는 식으로.
하루는 아이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독감으로 결석했다고 했다. 그러니 그 자리는 청소할 아이가 없다는 뜻이다. 마침 그 옆 아이가 빨리 끝냈기에 좀 도와 달라고 하니 대뜸 하는 말이, “왜 제가 해야 하는데요? 저는 제 구역 다했어요.”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네 친구가 오지 않았으니 네가 좀 희생하면 안 되겠니?” 했더니, “전 희생하기 싫어요.” 하고 딱 잘라버렸다. 한 대 쥐어박으려 하다가 그래도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그럼 선생님과 함께 해보자.” 하며 내가 빗자루를 쥐고 나섰으나 녀석은 쌩 하니 가버렸다.
화장장, 쓰레기 소각장, 치매노인 치료시설 등 소위 혐오시설이 꼭 필요함에도, 그 시설물이 내 사는 곳 근처에 세워진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 건립 결사반대”란 띠부터 머리에 두른다.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안 된다.’는 소위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거나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뿐인가, 어떤 땐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열정 페이(熱情 Pay)’, 참 낱말 자체는 누가 만들었는지 잘 만들었다. ‘열정을 가지고 일한 만큼 돈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줬다는 구실로 청년들에게 보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주로 대기업 인턴이나 방송, 예·체능계에서 많이 나타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경험되니 적은 월급을 받아도 불만 가지지 마라, 그러니 너는 희생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희생(犧牲)은 ‘제사 때 쓰이는 살아있는 제물을 바침’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림’으로 뜻이 확장되었다. 인간들은 그 뜻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일까, 힘을 가진 이들은 힘 약한 이를 희생 제물로 삼으려 들고, 또 다들 정작 희생이 필요할 때는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마을에 눈이 와 길이 막힌다면 새벽에 일어나 혼자 눈 치울 정도의 희생은 하겠지만, 우리 마을 뒷산에 화장장이 들어온다면 머리띠를 매고 나설 테니까. 그러니 앞으로 칡넝쿨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작 경멸하여 마지않는 그 하찮은 칡넝쿨에게 말이다.
어린칡을 위해 어른칡이 희생하는 그 모습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 구석에 숨어 있다. 그래야 내가 조금은 덜 부끄러울 듯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