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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16. 2021

제17화 : 밭이냐, 씨냐


  웬만한 부부라면 자식을 두고 싸움을 벌인 적이 한두 번일까. 특히 자식이 공부를 못하거나 어느 한 면이 부족할 때는, “저놈의 자식,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하면서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 얼굴을 꼬나봤으리라.

  물론 이 ‘꼬나봄’에는 아내는 저 녀석 틀림없이 제 애비 닮았다고 여기는 눈길로, 남편은 제 에미 닮았다고 여기는 눈길이 담겼을 터. 그래서 싸우면 이런 말이 꼭 오간다. “아무래도 밭이 나쁘니까 애들이 저렇지.” 하면 저쪽에서 “아이고 씨는 얼마나 좋길래 저 모양 저 꼴일까?” 하고.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아들딸이 고교시절 성적표 받아올 때마다 나는 아내를 보며,

  “저것 봐라, 저것! 어쩜 저리 못할꼬. 난 학교 다닐 때 3등 이하로 떨어진 적 없어.”

  그러면 아내는 나더러,

  “아이고 사돈 남 말하고 있네. 누군 고교 때 2등 아래 떨어진 적 있는 줄 알아. 이거, 왜 이래...”


  이 싸움은 도시 아파트 살 때까진 팽팽했는데, 시골 들어와 밭에다 이런저런 남새(채소)를 심게 되면서 일방적으로 무릎 꿇어야 했다. 씨를 뿌리면 어떤 땐 밭 가득히 발아가 잘 돼 걱정 없이 자라는데, 어떤 땐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하나도 안 트거나 몇 군데 듬성듬성 틔우니 말이다.

  주변 어르신께 물어보면 답이 바로 나온다. “씨가 안 좋은가베.” 또는 “오래된 씨 뿌리면 말짱 황이다 안 카요.” 하고. 씨와 밭 싸움은 증인들(?)의 열띤 참여로 언제나 씨 때문이라는 식으로 결론 난다. 결국 아들딸의 못남도 나 닮았다는 말로 끝맺는다.



  지난주(4월 12일) 고구마를 심었다. 장사치는 호박고구마라고 하나 우린 이제 믿지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말대로 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은 고구마가 참 다양하게 나온다.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꿀고구마, 자색고구마...

  그런데 나 어릴 때는 오직 '물고구마' 아니면 '타박고구마'뿐이었다. 물고구마는 말 그대로 먹으면 물기 많은 고구마, 타박고구마는 바삭바삭한 식감의 고구마. 그때는 타박고구마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물고구마도 좋아한다. 물론 둘 다 단맛이 없으면 싫어하지만.



  이왕 '물고구마'란 말을 썼으니 중씰한 나이에 든 분들을 위해 오래된 농담 하나 꺼내본다.


  오래 전 차인태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장학퀴즈」에서 정답이 ‘고구마’인 문제가 출제되었을 때의 일이다.

  다섯 명의 참가자 가운데 경상도 모 고등학교 학생이 힘차게 벨을 눌렀다. 순간 방청객에선 침묵이 흘렀다. 이 문제가 마지막 문제고 이 문제만 맞히면 그 학생은 역전하여 연말 장원전에 출전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나운서가 “자 정답은!” 하자 그 학생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매!” 하고 답했다. 그 순간 다시 침묵. 다행히 아나운서는 고구마의 경상도 사투리가 ‘고매’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한 번 더 기회를 줄 생각으로, “두 음절 아닌 세 음절!”

  이 순간 학생은 조금 망설이다가 큰 소리로 “물고매”라고 했다. 잠시 어이없어하던 아나운서는 “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답이 아니었습니다.”라고 선언. 이 에피소드를 두고 그 학생이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다', 또 '현재 유명 정치인 누구다’는 식으로 여러 말이 오르내렸으나 다 설로 그친 바 있다.



  그런데 아 고구마! 이 고구마가 나의 기를 살릴 줄이야. 이 신비(?)의 식물이 몇 년째 묵사발당하던 나를 살려주었다.

  몇 년 전 고구마를 처음 심었을 때 일이다. 그때 이웃 할머니랑 고구마 다섯 단을 사서 우리가 두 단 심고 할머니네가 석 단 나눠 심었다. 같은 모종을 사 와 나눠 심었기에 같은 고구마가 나와야 함이 당연하다. 그건 누가 봐도 상식 아닌가.

  그리고 가을에 거둬들였다. 우리보다 일찍 수확한 할머니가 갖다 준 고구마를 이미 먹어보았기에 우리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삶아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그런데 할머니가 가져다준 고구마랑 맛이 다르지 않은가.


  분명 할머니네 고구마는 꿀이 줄줄 흐르는 아주 단맛의 물고구마였건만 우리 고구마는 퍼석퍼석한 느낌의, 꼭 닭가슴살 먹는 맛의 타박고구마였다. 그럴 리 없었다. 아니 그럴 리 없어야 했다. 분명히 같은 고구마 모종으로 심었으니 같은 고구마가 나와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할머니 댁을 찾아가 확인까지 했다. 혹시 부족해 다른 모종을 더 심지 않았나 하고. 그러나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같이 사다 심었다.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여전히 우리 고구마는 퍼석퍼석했고 할머니 고구마는 꿀이 좔좔 흘렀으니 말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고구마는 씨가 문제가 아니라 밭이 문제임을 깨달았다. 즉 같은 모종이라도 밭의 흙 성분에 따라 맛이 달라짐을.

  이 싸움에서 내가 이겼다. 허나 승자의 쾌감이 없는 승리다. 씨가 문젠들 밭이 문젠들 이미 내 자식 아닌가. 고구마에게 밭이 중요하다는 말은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주변 환경이 생육을 가름한다는 뜻.


  모종이 타박고구마든 물고구마든 심는 땅에 따라서 달라진다. 우리 땅도 그동안 애써 변화시켜 이제는 이웃집 할머니와 비슷한 고구마가 나온다. 예전에는 '종두득두(種豆得豆)'라 하여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온다'고 했다. 즉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허나 이제는 달라졌다. 거기에 어떤 정성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 아니다.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을 베푸는 만큼 작물은, 사람은 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야 바람직한 모습 아닐까.


  아내에게 아래와 같은 말로 복수를 할까 하다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당신, 씨보다 밭에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여태 몰랐어?’


  *. 커버 사진은 고구마꽃입니다. 100년만에 한 번 피는 꽃으로 알려졌지만 뿌리에 영양이 제대로 안 갈 때 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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