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가슴 설렐 때 떠나라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목록을 가리키는 말로 '버킷리스트'란 용어가 보편화되어 쓰이고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10곳',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 50가지',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영화 100편', 이런 제목의 책이 서점 한가운데 버젓이 자리함도 그 여파이리라.

당연히 나도 직장을 그만둘 때쯤 여행 갈 곳을 정했다. 북유럽, 호주, 미국 등도 목록에 들어왔으나 이곳들은 패키지로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수 있는 곳. 거기보다 나를 더 잡아당기는 곳이 세 군데였다. 중남미, 아프리카, 인도... 헌데 이 나라(지역)를 여행하려면 최소 한 달쯤 잡아야 한다. 그리고 돈도 있어야 하고,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처음엔 아주 수월하게 생각했다. 남는 건 시간뿐인 데다 건강도 막일하기엔 무리지만 놀러 다니기엔 지장 없고, 돈은 퇴직금을 쪼개 쓰면 될 터... 헌데 그게 오산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퇴직금으로 들어왔던 돈이 이런저런 일로 빠져나가면서 얼마 차 있지 않던 곳간이 비는 덴 아주 잠깐이었다.

그때부터 초조해졌다. 마음속으로야 형편 나아지면 곧 실행에 옮겨야지 했지만, 정말 이대로 가다간 가슴속에서 익어 상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꿈을 꾸면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사자에게 쫓기기도 하고, 페루 ‘마추픽추’에선 태양의 신전 위로 올랐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인도에선 ‘갠지스강’에 둥둥 떠다니는 시체를 치우는 일을 하는 등...


이러다간 큰일 날 듯싶었다. 병에 걸릴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이를 그리다가 상사병에 걸린다더니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그리고 그 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러다 상사병은 그리던 이를 만나 사랑을 나누면 치료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다면 나의 상사병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더 곪아 터지기 전에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어느 날 쪽파를 다듬는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첫 대답은 튕겨 나왔다. "돈이 어디 있다고...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소." 맞는 말이다. 돈 없는 까닭을 설명하자면 구질구질해진다. 연금이 나오니 먹고사는 일은 해결되지만 목돈 없음은 현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서면 상사병은 어찌 치료하란 말인가?


(이과수 폭포)


그때 아내가 쪽파 다듬으면서 유튜브를 듣고 있었다. 아내는 언제나 집안일 할 때 유튜브로 '황창현 신부님'의 얘기를 듣는다. 그 신부님은 신부님 답지(?) 않다. 얘기를 그토록 맛깔스럽게 하는 신부님을 본 적 없으니까. 비신자들에게도 인기 있다고 한다. 아내 말대로 하자면 불교의 법륜스님과 비견된다나.

그때 신부님의 명언이 흘러나왔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지 말고 가슴 떨릴 때 가라.”

참 좋은 말이지만 아직 아내를 흔들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잠시 후,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 말고, 살아 있을 때 즐기며 다 쓰고 가라.”


그리고 뒤에 결정적인 한 방이 이어졌다.

"집도 물려줄 생각 말고 담보 잡히고 여행 떠나라."

주택을 담보로 맡기면 평생 동안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역모기지론'이라 한단다. 어찌 무릎을 치지 않을 쏜가.

"방금 당신이 가장 존경한다는 황창현 신부님 말씀 들었지?"

뭐라 대꾸를 했지만 처음보다야 많이 누그러진 상태로 아내가 말을 얼버무렸다.

"형편이 나아지면..."

이때 고삐를 늦추면 만사휴의(萬事休矣). 더욱 몰아쳤다.


"형편 나아지려면 이라니... 우리가 지금보다 형편이 더 나아질 수 있어? 떼돈이 들어올 때가 있어? 지금보다 몸은 더 좋아질까? 또 시간은 마냥 우릴 기다려줄까?"

“그래도... 당장 돈이 없는걸.”

그래 당장 돈이 없다 해도 이즈음에서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안 될 일.

“내년까지 안 가 우리 둘 중 누가 하늘로 갈 수도 있고, 딸 아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집 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 줬으니 우리 집은 우리 맘대로 하면 될 터. 담보 잡히고서라도 가자!”


(모레노 빙하)


내가 한 번 꽂히면 흔들림 없다는 걸 아는 아내가 결국 두 손 들었다. 그리고 반년 전에 계획을 세운 결과 오랜 벗들과 오늘(2019. 10. 29) 떠난다. 무려 5년이나 미뤄왔던 그 여행...

내가 사는 시골, 아니 산골에선 늦은 봄에서 이른 가을까진 엄두를 못 낸다. 일주일만 비워둬도 잔디밭과 텃밭은 풀밭이 되고, 건물 곳곳에 거미줄과 말벌집... 마침 중남미는 11월에서 2월까지가 여행의 절정기란다. 그러니 우리 집과 중남미가 딱 궁합에 맞는 셈이다.


‘형편이 나아지면’이란 말과 ‘다음에 가지’란 말에 매였더라면 이번 여행은 꿈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나 뛰쳐나오니 길이 보였다. 그리고 황창연 신부님의 도움도 거기 포함돼 있다. (다음에 만나면 꼭 인사드리고 밥 한 번 대접해야지.)

이번 시도하는 한 달 가까운(24일) 중남미 여행이 너무 멋있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진짜 집 담보 잡히고 떠나자는 말을 또 꺼낼지 모르니까. 다시 갈까 말까 적당히 망설이는 수준이 좋을 듯싶다. 이런저런 갈등 끝에 선택한 결정은 또 다른 매력을 남기므로.


#. 재작년 10월 29에서 11월 22일까지 중남미를 25일 간 여행한 기록입니다.

커버 사진은 마추픽추 모습이며, 뒤에 보이는 높은 산은 '와이나픽추'입니다.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