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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8. 2023

목우씨의 긁적긁적(61)

제61화 : 김빱쓰 김빱쓰 둘둘 말아 김빱쓰

   * 김빱쓰 김빱쓰 둘둘 말아 김빱쓰 *


  생활글(수필) 연재할 날이 다가오면 뭘 쓸까 고민하게 된다. 시골, 특히 산골에 사니까 글 쓸 거리가 도시보다 많이 생김은 사실이다. 걷다 보면 쓸 게 절로 걸려들 때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하여 연재할 글감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어쩌다가 운 좋게 아침 마을 한 바퀴 길에 얻어걸리면 운 좋은 날일 뿐.
  이번 주도 뭘 쓸까 고민하다 수요일 그림 배우려 나가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나라 한 중소기업에서 만든 ‘냉동김밥’이 미국에 수출하여 미국인들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품절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

  이번에 수출해 인기를 끈 비결의 핵심은 김밥을 상온유통이 아닌 '냉동유통' 방식에 기반을 둔 인식의 전환이었다나. 즉 ‘품절김밥’은 고기 대신 우엉과 유부를 넣어 영하 50도의 냉동고에서 순식간에 꽁꽁 얼렸기에 레인지에 돌리면 원상태의 맛으로 복원된단다.


(미국 유튜버들이 올린 냉동김밥 - 중앙일보 2023년 8월 22일)



  <1> 세끼 김밥도 가능한 체질

  밥 말고 아침마다 혹은 점심때마다 주어도 뿌리치지 않고 먹는 음식이 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밥이다. 며칠 전 집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토함산 바람의언덕’에 가려고 김밥을 준비했다.
  아침에 아내가 김밥 마는 옆에 붙어 먹고, 싸간 김밥은 ‘바람의언덕’에서 먹고, 그래도 김밥이 조금 남아 저녁에도 먹었다. 그러니 온종일 김밥으로 세끼 배를 채웠다고 할까. 아무리 좋아해도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세끼 김밥 가능 체질이 된 지 오래다.

  <2> 상남자 되려다 하남자가 된 날

  달내마을로 이사 온 첫 해 겨울, 아내랑 마을 돌아보려 나갔는데 저만치 가던 아내가 갑자기 논둑 아래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도 다급한 마음에 도달해 보니 아내는 아랫논에 엎드려 있었고. 나는 저도 모르게 뛰어내렸다. 고작 2미터 남짓이라 별일 있겠냐 하며.
  헌데 그때는 한겨울이었고, 그 논은 겨우내 음지였고, 며칠 전에 눈비가 대려 꽁꽁 얼어 있었으니. 바닥에 닿는 순간 발에 와닿는 엄청난 충격. 나중에 병원에 갔더니 무릎뼈 한 군데와 발바닥뼈 여러 군데가 부러지는 중상.


  다행히 아내는 윗 논에서 미끄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도르르 굴러 별 이상 없었으나 앞뒤 재보지 않고 뛰어내린 나만 중상. 그 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치료를 다했지만 겨울방학 끝나고 새 학년 개학할 날짜가 다가와도 겨우 목발로 짚고 다닐 수 있을 뿐.

  신학년 학급 배정 끝나고 담임도 맡았는데... 고민하다가 목발을 짚은 채 학교로 갔다. 출퇴근길엔 아내가 차를 몰았고. 다행히 수업하는 학급은 같은 층에 있어 오르내려야 할 불편함이 없었으나 점심때가 문제였다. 왜냐면 식당이 다른 건물에 있기에.


(구글 이미지에서)



  억지로 걸어가면 갈 수 있었으나 식판을 받아야 할 때나 갖다 놓아야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싫어 택한 방법이 바로 김밥 사 오기. 출근길에 학교 근처 ‘다모아김밥’에 들러 일 인분 사서 가면 식당으로 이동할 필요도, 식판 들고 왔다갔다 할 필요도 없으니 딱 안성맞춤.
  그날부터 한 달여 동안 매일 점심을 김밥으로 때웠다. 선생님들이 식당에 가면 도와줄 테니 함께 가자 했지만 이런 말로 거절했다.
  “저는 김밥 좋아합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이리 말했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어떻게 날마다 김밥 먹을 수 있습니까?”

  그때 속으로는 점심뿐 아니고 아침도 김밥으로 때울 수 있다고 할까 하다가 참았다. 김밥으로 단련된 체질을 들먹이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테니까.


(즐겨 사먹는 경주 성동시장 우엉김밥)



  <3> 김빱쓰 김빱쓰 둘둘 말아 김빱쓰

  대학 다닐 때 과별 축구대회가 있었다. 우리 과는 남학생이 품귀라 4개 학년 남학생 다 합쳐야 40명밖에 안 된다. 워낙 운동엔 젬병인지라 그래도 과별이면 선수로 안 뛰도 되었지만 학년별 시합 있으면 나도 선수가 되었다. 남학생이 모두 열한 명뿐이니까.
  선수로 뛰지 않을 때 부른 요상한(?) 응원가가 생각난다.
  "김빱쓰 / 김빱쓰 / 둘둘 말아 / 김빱쓰"

  이 네 마디만 무한 반복해 불렀는데, 다른 과에선 부르는 걸 못 봤으니 우리 과 응원가라 솔직히 그때 좀 이상하다 여겼을 뿐 신나게 따라 불렀다. 지금 검색해 보니 「돌돌 말아 김밥」이란 제목의 동요가 있는데, 그 당시 응원가를 동요에서 차용했다기보단 구전돼 내려오던 노래를 뒤에 동요작곡가가 그때의 노래를 조금 변형시켜 만든 게 아닌가 한다.



  <4> 김밥에 담긴 서늘한 추억

  초등학교 때 ‘소풍’ 하면 두 가지가 생각날 게다. 워낙 유명해서 개그프로에도 쓰이고 나이 든 사람들 추억 얘기하라면 다 나오니까. ‘김밥’과 ‘칠성사이다’  맞다, 내게도 김밥과 칠성사이다에 얽힌 추억이 없으랴. 아니 남보다 더 진하게 남았고 그래서 김밥귀신이 되었다.
  몇 학년 땐 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생애 최초로 울엄마가 김밥을 싸주던 날이 떠오른다. 워낙 양이 적어 만들 때 꼬다리 하나 먹지 못하고 담아준 김밥, 그래도 얼마나 행복했던가.

  보물찾기, 술래놀이, 다망구, 수건 돌리기 같은 놀이에도 다 관심 없었고 오직 김밥 먹을 순간만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의 식사 알리는 소리와 동시에 아이들은 친한 또래들끼리 적당한 자리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이웃에 사는 명찬이와 용범이랑 같이 가려다 오늘 내가 사 온 김밥 양을 생각했다. 둘은 싸 오지 않음이 분명한데 혼자 먹을 양만 있고. 비겁하지만 혼자 몰래 먹기로 했다. 그래서 구석을 찾아찾아 들었다. 드디어 마땅한 곳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와서야 보자기를 풀었다.


(60년대 초등학교 소풍 가는 길 - 고흥문화원 홈에서)



  김밥, 아 그러나 엄마도 생애 최초로 싸 선지 엉망이었다. 옆구리 안 터진 것보다 터진 게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밥을 감싼 ‘김’이 있는 ‘김밥’ 아닌가. 그래서 하나를 집어 터질까 봐 양손으로 들고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쳐다봤더니 다람쥐였다. “에이!” 하며 고개를 돌리다 자세가 흩뜨려져 무릎 위에 놓인 김밥 도시락이 엎어졌다.  순간 “안 돼!” 외쳤지만 이미 비탈길로 도르르 도르르 굴러갔고. 생애 가장 빠르게 행동했으나 굴러버린 김밥에 묻은 흙을 지울 순 없었고...

  흙을 떼고 먹으려 했으나 워낙 많이 묻어 먹을 수 없었다. 흙과 모래와 밥이 골고루 섞인 김밥 하나 먹다가 결국 뱉어내야 했으니. 그때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내가 크면 김밥으로 내 배를 다 채우겠다고. 그리고 그 결심은 그 뒤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 동요 「돌돌 말아 김밥」을 덧붙입니다. (곡은 당시 불렀던 응원가와 똑같음)

https://youtube.com/watch?v=Xk5eqGpt4lA&feature=shared


동요 | 꼬모팝 | 돌돌 말아 김밥

동요 | 꼬모 율동동요 꼬모팝~꼬모와 함께 신나게 춤추며 따라 불러봐요~ 김밥! 김밥! 돌돌 말아 김밥~!*매주 목요일 마다 만나는 꼬모 율동동요 [꼬모팝] 더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V96YAiw4jzE&list=PLIID56-e-J1S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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