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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Oct 29. 2023

목우씨의 긁적긁적(62)

제62화 : 손글의 힘


          * ‘손글’의 힘 *


  오 년 전쯤 어느 이른 봄날의 일이다.

  밖에 나갔다 돌아와 현관문을 열려는데 데크 바닥에 종이가 보이고 그 위에 작은 돌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택배 기사가 남긴 쪽지로 여겼다. 전에도 한 번 그런 적 있으니까. 다만 그때는 바닥 아닌 현관 손잡이에 스티커를 붙여놓았는데...

  뭔가 하여 집었더니, 세상에! 누군가 우리 집 방문했다가 내가 없자 쪽지에 써 남긴 글이다.
  그 날 마침 봄비가 내려 어디 나가지 않았으리라 일부러 방문한 듯. 헌데 내가 나갔으니...


  목련꽃 봉오리 솜털 적시도록
  봄비가 내립니다.
  동백꽃 몽오리는
  여적지
  겨울꿈을 꾸는가 봅니다.

  님이 오실 때는
  동백도, 목련도 다투어
  붉은 꽃, 젖빛 꽃을 피워
  올리겠지요.

  님이 오시면 때맞춰 피어날
  내 마음도 이 봄비를 오늘은
  한껏 머금을께요.
 







  서명도 없고 다른 언급도 없어 누군가 궁금했지만 궁금함으로 끝내야 했다. 다만 글 쓰는 사람이란 추측은 가능한 상태.
  그날 저녁 의문이 풀렸다. 글 남긴 이가 전화했으니. 예전 ‘교사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후배다. 글 좀 쓰는 사람이란 애초의 추리가 맞은 셈이다.

  그런데 내용보다 그 글씨가 얼마나 반갑든지. 십 년만에,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계산해도 처음 받은 ‘손글’이었으니.
  이제 우리는 손글을 잊고 산다. 나도 그렇다. 모든 글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길 뿐. 그마저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밀려났지만.


  며칠 전 일이다. 나무를 재단할 일 있어 ‘자질(자로 재는 일)’을 하려고 연필이나 사인펜을 찾으니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실톱으로 그어야 했다.
  찾아보면 어딘가 한두 개쯤 연필은 몰라도 볼펜은 있으리라. 그럼에도 퍼뜩 눈에 안 들어온 건 아무래도 쓰지 않아, 쓸 일이 없어서일 터.

  다른 분들도 비슷하겠지만 손편지를 쓰거나 받아본 적 오래 되리라. 나도 그렇다.
  우체국이 편지만 취급하는 곳이라면 아마 벌써 문 닫았으리라. e-mail, 문자, 카톡이 훨씬 빠르고 수월한데 뭣 때문에 일부로 손편지를 쓸까.

  다행히 사무적인 편지가 아닌 정이 담긴 편지는 거의 다 버리지 않고 간직해 놓았다. 대부분 제자들이 보내준 편지다.
  그 가운데 '첫사랑의 추억'이란 이름을 붙인 40년 전 제자들이 보내준 편지에는 더욱 애착이 간다.

  첫 학교(현재 ㅇㅇ여고)와 둘째 학교(부산 ㅇㅇ여중)에서 근무할 때 받은 편지니까 이름을 그리 붙였다.
  그 편지를 지금도 가끔 꺼내 읽는데 참 기분 좋다. 절로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니까 말이다.

  오래 전에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으니 언제든지 클릭해 읽을 수 있지만 직접 쓴 손글을 읽는 맛에 비할 수 없다.
  혹 그때의 제자와 얘기를 주고받다 내가 답으로 보내준 편지를 기억하는 제자를 만날 때면 더없이 기쁘다.


  손글에 담긴 몇 가지 맛을 주절거려 본다.

  첫째, 손글은 글자마다 다 다르다, 크기와 모양도. 심지어 같은 글자라도 첫마디에 들어 있을 때와 둘째 셋째 마디에 들어 있을 때가 다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글자를 썼지만 다르다는 점에서 ‘그름’과 ‘다름’의 차이를 읽는다.

  둘째, 글씨 쓰인 줄이 삐뚤삐뚤하다. 일부로 줄을 긋거나 줄 그은 편지지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글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지 않다.
  하기야 어디 우리네 삶에 어디 고속도로만 있는가. 아니 고속도로는 극히 드물고 구절양장(九折羊腸 : 아홉 번이나 구부러진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더 많지 않은가.

  셋째, 손글에는 그 사람이 들어 있다. 컴퓨터에 저장된 글을 읽어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손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성품까지 떠오른다.
  바로 곁에서 그가 내게 나직이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참 정겹다. 그래서 손글을 다시 보게 만든다.





  (시 필사의 예 - 구글 이미지에서)


  성당이나 교회에선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성경 필사’를 권하는 분이 많다고 한다. 성경을 손글로 쓰다 보면 그 내용이 오래 기억에 남으니까.
  시를 즐기는 사람들 역시 시 필사가 도움 된다. 시를 직접 손글로 써보면 시 속에 담긴 내용이 더 깊이 다가오니까.

  갑자기 전자우편으로 쪽지를 보내다가 손글로 편지 써 보내기가 쉽지 않으리라. 왠지 쑥스럽고 어색하다.
  그럴 때 시 한 편(시가 아니더라도 읽은 수필 가운데 마음에 드는 구절) 필사하는 습관을 붙임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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