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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6)

제46편 : 심인자 시인의 '나는 꿈치예요'

@. 오늘은 심인자 시조 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나는 꿈치예요
                                  심인자

  야금야금 기억을 도난당하고 있어요
  몰래 들어와 지금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요
  분분히 나를 잊어요
  또 너를 외면해요

  주변이 무너져요. 곁사람이 더 아파요
  나도 모르게 웃고 울며 주변 사람을 할퀴어요
  대뇌를 손상당하니
  싸맬 힘이 없어요

  아름다운 병이래요. 꿈꾸는 병이라고요
  꿈꿈 꿈이길요 피붙이도 잊어버리고
  문 앞을 도돌이하며
  하릴없이 배회해요

  일몰의 불안감은 *쑤시뭉티로 들러붙고
  갈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 끊긴 뇌 속
  인생의 운전대를 놓쳤어요
  누가 나를 지켜주세요
  - [대신이라는 말](2021년)

  *. 쑤시뭉티 : '수세미처럼 엉키다'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

  #. 심인자 시조시인(1960년생) : 경남 진주 출신으로 [오누이시조 신인상(2012년)]을 통해 등단. 현재 대구 소재 실버타운에서 요양보호사로 열심히 일하며 짬짬이 시조를 쓴다고 함.




  <함께 나누기>


  오늘 작품이 시조인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까? 요즘은 시조와 현대시의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이 시조는 4연으로 된 연시조인데 제1연만 3장 형태로 고쳐보겠습니다. 글벗님들도 이 흐름에 따라 읽으면 운율감을 조금 더 느낄 겁니다.

  "야금야금 / 기억을 / 도난당하고 / 있어요
  몰래 들어와 / 지금 나를 / 송두리째 / 흔들어요
  분분히 / 나를 잊어요 / 또 너를 / 외면해요"

  우선 제목인 꿈치를 알아볼까요? '꿈치'란 시인이 창조한 말인데 '음치, 길치, 몸치' 할 때처럼 쓰는 치(痴)랑 같습니다. 헌데 이들 낱말과 차이는 치매와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한 사회학자는 치매의 가장 큰 문제로 다시는 꿈을 가질 수도 이룰 수도 없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꿈치'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런 시어를 만든 능력은 요양보호사란 시인의 직업과 연결될지도.

  제1연으로 들어갑니다.

  야금야금 기억을 도난당하게 만들고 몰래 들어와 나를 송두리째 흔드는 꿈치란 병은 나를 잊고 너도 잊게 만듭니다. 치매가 그래서 무섭습니다. 나의 본성을 잊게 만들고 급기야 가장 사랑하는 사람조차 잊게 만드니까요.

  제2연으로 갑니다.

  꿈을 잊은 병은 나 혼자만의 몰락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의 대인관계도 무너뜨립니다. 그러면 당사자보다 그걸 보는 곁사람이 더 아픕니다. 나도 모르게 웃고 울며 주변 사람을 할큅니다. 갈수록 대뇌는 손상당하나 꿰맬 방법조차 없습니다.
  
  제3연으로 갑니다.

  치매를 착한 치매, 나쁜 치매로 나누는데 단순한 꿈치는 착한 치매가 되니 아름다운 병이라 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겠지요. 어지러운 세상을 생각 없이 지내도 되니까요. 피붙이가 주는 아픔도 잊어버리고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닫힌 문 안에서 도돌이하며 살면 되니까요.

  제4연으로 갑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일몰)에 만나는 불안감은 수세미처럼 마구 엉켜 떨어지지 않고, 이미 뇌는 갈 길을 안내해 줄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시인은 단순히 치매환자만 꿈치가 아니라 꿈을 잊고 사는 모든 이를 가리키는 말로 이 시어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꿈치인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꿈치인 내가 무얼 하며 살아야 합니까?
  꿈치인 내가 오늘은 또 무얼 하며 시간 보낼까요?
  
  *. 시인이 작품에 쓴 '쑤시뭉티'를 사투리라 하지 않고 '탯말'이라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며 탯줄을 묻은 땅에서 쓰던 말'이란 뜻입니다. 좋은 말인 것 같아 소개합니다.
  그리고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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