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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7)

제47편 : 김연성 시인의 '독한 것들'

@. 오늘은 김연성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독한 것들
                              김연성

  세상엔 독한 것들 참 많다

  저 검푸른 심연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태풍을 독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태풍이 지나간 자리,
  일제히 북쪽으로 쓰러져 있는 풀들을 보고 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살아보겠노라
  서울 한복판, 뙤약볕에 쭈그리고 앉아 노점을 하는 늙은 할머니를 누가 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로)

  살다 보면 독한 것들 너무 많아
  아무 죄 없이 그것들만 보면 차라리 눈 돌리고만 싶었는데
  힘이 없기도 하거니와 모질지 못해 눈 감고 싶었는데
  그 누가 독한 것들을 탓할 수 있을까

  세상의 독한 것들은 모두 보호해야 한다
  천막을 치고 촛불을 켜고 확성기를 틀고
  모두 광장으로
  광장으로

  이 세상엔 독한 것들 너무 많다
  - [발령났다](2011년)

  #. 김연성 시인(1961년생) :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2005년 [시작]을 통해 등단. 현재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매뉴얼대로 살아가는 감정노동자의 심리를 잘 파헤쳤다는 평을 들음

  동명이인으로 [슬픈 하이에나]란 시집을 펴낸 김연성 시인(1948년)이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우리말 가운데 일상생활에 쓰이는 뜻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는 말이 꽤 됩니다. 한 예로 '개성이 강하다'란 표현을 볼까요.
  '개성'은 그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품격을 뜻하니,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우유부단한 성격과 비교하면 긍정적인 뜻을 가집니다. 허나 '저 사람 너무 개성이 강해서 조직생활 제대로 하겠어?'라 할 땐 부정적 의미가 더 강합니다.
  
  시에 쓰인 '독하다'도 그렇습니다.
  엄마가 당신 말 듣지 않고 제 맘대로 행동하려는 딸을 두고, "저 독한 년 봐라. 오냐, 이년아! 에미 말 안 듣고 니 맘대로 하면 참 좋을 끼라.", 남들이 다 힘들다고 포기했을 때 홀로 나아가 끝내 임무 완수한 사람 보고, "참 독하다. 저러니 어떤 일이든 해내지."

  둘의 어감은 정반대가 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시인은 독한 것들의 예로 태풍(2연), 쓰러진 풀(3연) 노점상할머니(4연)를 듭니다. 언뜻 보면 독한 순서대로 나열한 것 같은데 읽어보면 아닙니다. 오히려 역순이 아닌가요. 즉 태풍에 대해선 정말 독한 것의 범주에 넣어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담겼다면, 풀과 노점상 할머니를 거치면서 '독한'의 의미가 제대로 들어갔습니다.

  "아무 죄 없이 그것들만 보면 차라리 눈 돌리고만 싶었는데"
  살다 보면 독한 것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게 어쩌면 솔직한 마음 아닐까요. 텔레비전 보면 도와달라는 구호단체 광고가 얼마나 많은지. '초록우산', '국경없는 의사회', '굿네이버스', '세이브 더칠드런', '월드비전' ...

  "그 누가 독한 것들을 탓할 수 있을까"
  힘이 없어도 끝까지 살고자 하는 욕망을 당연히 탓할 수가 없지요. 오히려 모질지 못해 눈 감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할 뿐. 그래서 시인은 외칩니다. 세상의 독한 것들을 모두 보호해야 한다고. 보호하기 위해 천막을 치고, 촛불을 켜고, 확성기를 틀고 광장으로 모여야 한다고.
  
  오늘도 우리가 발 디디는 세상에는 독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태풍의 강력한 독함보다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의 독함보다 가장 독한 것은 사람의 살려는 의지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독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독한 눈물 흘리지 않도록 손수건 들고 닦아주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 시인은 외치고 있습니다.

  *. 사진은 [대구신문](2011년 4월 25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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