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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9.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59)

제159화 : 틈 만들기, 가지치기, 솎아내기

  * 틈 만들기, 가지치기, 솎아내기 *



  (1) 틈 만들기


  오래전 뜻을 같이 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한용운 문학기행'이란 이름으로 홍성(충남)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을 충북 단양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왕 온 김에 단양의 명소 들렀다 가자는 여론이 일어서다. 도담삼봉을 보고 내려올 즈음 점심때가 돼 식사할 곳을 찾았다.
  그때 '무지개송어 양식장'이 띄었다. 회 좋아하는 사람은 회를 먹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매운탕을 먹으면 될 터. 입구에 이르렀는데 마치 싸우는 듯 제법 큰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니 예순쯤 되는 중늙은이가 서른쯤 되는 젊은이를 야단치던 중.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은 부자 사이. 그러니까 싸운 게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나무랄 때 우리가 들어섰고. 마침 아들은 일행이 주문한 송어 다듬으러 가고, 회나 매운탕 나오기를 기다리다 주인에게 슬며시 물었다.
  "아까 왜 아드님을 그렇게 소리 내 꾸짖었어요? 무슨 큰 잘못이라도..."
  "아 글쎄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했잖아유."
  하고서 이어지는 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 자란 송어를 반 이상 빼놓아라 했는데 안 지켰다. 그러면서 아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이었다. 다 자란 송어는 빨리 양식장에 빈 틈을 마련해줘야 한다. 마릿수가 많아지면 저희들끼리 부딪쳐 상처가 나고, 한 마리라도 상처 나면 금방 전염되니까 꼭 비워줘야 한다.
  "그럼 아들이 그걸 몰랐습니까?"
  "알지유, 당연히. 몇 년 가르쳤으니... 다만 늘 사가던 도매상이 경기 안 좋다고 좀 더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나유. 내가 도매상과 관계없이 무조건 빼라 했는데..."
  "아들의 말도 일리 있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오래 남겨 두려는 알뜰한 마음에서 한 행동인데."
  "그러면 뭘 해유. 양식장이 빽빽해 한 마리라도 병이 나면 다 옮고, 그러면 전체를 못 쓸 판인데..."


(무지개송어 양식장 - 외국)


  (2) 가지치기


  지난 사흘간 소나무 가지치기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 소나무는 참 특별하다. 원래 분재용 소나무였는데 그걸 땅에 옮겨 심는 바람에 일반 소나무처럼 자라는 셈이니.

  소나무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같은 학교 근무하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분재에 취미가 붙어 나무 몇 그루를 샀다 한다. 당연히 집에 갖고 가 키워야 했는데 하도 취미 관련 물품을 사다 놓는 바람에 사모님에게 야단 들을까 봐 학교 뒤편 온실 쪽에 두고 키웠다.
  그러다 다른 취미가 생겼고, 학교도 이동하게 되면서 가져가느냐 마느냐 갈등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마침 시골에 집을 지었으나 마당이 너무 헐빈하던 차. 소나무, 소사나무, 노간주나무, 향나무가 그렇게 자리 잡았다.


(가지치기 전의 소나무)


  처음에는 신이 났다. 분재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하루에 한 번씩 물만 주면 된다 하니 그대로 따라 하면 될 터. 허나 워낙 게으른 성격이라 처음 몇 개월은 그냥저냥 버텼는데, 가끔 잊어버리고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주다 보니 소나무가 병들었는지 시들시들.
  어떡할까 하다 생각해 낸 꾀가 땅에 옮겨 심는 방법. 옮겨 심은 뒤 그리도 편할 수 없었다. 물 주기 걱정에서 벗어났으니까. 그 뒤로 물뿌리개의 물 대신 비를 맞고, 화분의 옭아맴에서 벗어나선지 정말 소나무는 씩씩하게 자라주었다.

  내가 읽고 가장 크게 감동받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까진 아니더라도 또 다른 ‘무소유’를 실천한다는 마음도 들어 얼마나 뿌듯했던가. 그 뒤로 분재 소나무는 근심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2년이 지나자 누가 봐도 분재 소나무가 아니라 산에서 그냥 캐다 심은 나무처럼.


(가지치기 한 소나무 1)


  헌데 이 녀석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적당히 커 주기를 바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커도 너무 엉망으로 커버렸다. 특히 잎사귀가 워낙 무성해 옆에서 보면 어느 숲에서나 볼 수 있는 그냥 소나무였다. 그래도 관계없었다.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터니.
  그러다 퇴직 후 삼 년 되던 해 이웃 골프장에 반송(盤松 : 둥글고 넓게 퍼진 소나무) 가지치기 보조원 구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다. 처음엔 특별히 할 일도 없던 차에 심심함을 떨치고, 돈도 벌 겸, 텃밭에 널린 여러 과실수 가지치기하는 기술 배운다는 일석삼조의 심정으로.

  허나 가지치기는 한 달 만에 끝났고 다음은 일반 노동현장으로 투입됐고. 워낙 약골이라 일주일 했을까 결국 포기. 다만 20년 차 가지치기 고수님을 알게 된 건 큰 수확. 알바 끝내는 날 그분을 모시고 우리 집에 와 과실수 가지 칠 곳을 봐달라고 했다.


(가지치기 한 소나무 2)


  모과나무를 끝으로 다 둘러본 뒤 차 마시러 방으로 들어가려다 테라스 아래 자연스럽게(?) 자라는 소나무를 보더니 그분이 “어!”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아이구 이 좋은 나무를 완전히 버려놓았네요. 잘 가꾸었으면 백만 원 넘는 나무가 되는 건 일도 아닌데...”
  그때 내 귀엔 다른 어떤 말보다 ‘백만 원’이란 말이 쏙 들어왔다. 설명을 부탁하자 한눈에 소나무 분재를 땅에 옮겨 심은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저대로 두면 진짜 그냥 일반 소나무가 된다고. 그날 그분에게 가지치기를 배웠다. 허나 두 시간 정도 배운 터라 명함 내밀 계제는 못 된다.

  소나무든 과실수든 가지치기를 하는 까닭은 모양 잡기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건강하게 자라도록 함이다.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빼곡히 들어차 있으면 햇빛이 차단돼 나무의 자람을 방해하고, 또 뿌리 쪽이 썩을 위험도 높아진다. 그러니 반드시 해야 한다.
  

(가지치기 미완성 소나무 3)


  (3) 솎아내기

  텃밭에 남새(채소의 우리말) 심을 때 모종 대신 씨를 뿌리면 물 주는 일 말고 따로 할 일이 따른다. 바로 솎아내기. 상추ㆍ 배추ㆍ 시금치ㆍ 들깨ㆍ무는 씨를 뿌린 뒤 보름쯤 지나면 빽빽이 싹이 솟아오른다. (요즘 이 남새들도 모종이 나오니 사서 심기도 함)
  그냥 놔두면 저희들끼리 치이고 그러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니 반드시 솎아줘야 한다.  솎아내기도 시기를 놓치면 웃자라 솎아낸들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 유심히 살펴보다 적당한 시점이라 싶으면 바로 솎아낸다.

  솎아낸 어린 남새는 그 하나하나가 나물이 되어 무쳐 먹어도 비벼 먹어도 맛있는 밥반찬이 된다. 일부러 새싹나물도 심어 팔기도 하니 이렇게 버리지 않고 활용하니 얼마나 좋은가.


(솎아내기 전의 배추밭)


  (4) 머릿속도 가끔 비우자


  양식장에서 고기가 다 자라면 빨리 빈 틈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들끼리 부딪치고 결국 병이 들어 다른 고기들도 팔지 못하게 된다.
  소나무 같은 관상수도 사과나무 같은 과실수도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하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수확량이 적어지므로.
  상추ㆍ 배추ㆍ 무도 마찬가지다. 싹이 올라올 때 그대로 두면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솎아줘야 한다.

  틈 만들기, 가지치기, 솎아내기의 뿌리는 모두 '빈 곳 만들기'다. 빈 곳 없이 꽉 채우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우리 머릿속도 마찬가지 아닐까. 늘 잡다한 생각으로 꽉 차 있으니 머리가 아프고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명상, 힐링, 멍 때리기, 마음 수련, 심리 안정... 이런 용어가 각광받음도 우리들 머릿속이 너무 차있기 때문이리라. 선조들이 동양화 그릴 때 여백의 미를 중시함도 혹 머릿속에도 여백을 남겨두라는 뜻을 담았을지도. 너무 채우려하지 말고 좀 비워두라고.
  그럼에도 나는 오늘 또 머릿속을 꽉꽉 채우러 나간다.
  아! 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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