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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8)

제48편 : 이삼례 시인의 '냉이 싸움'

@. 오늘은 이삼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냉이 싸움
                               이삼례

  청계산 뒤에서 혜숙 언니랑 냉이를 캔다
  참새똥만큼 나물을 캤을 때
  젊은 스님이 밭에서 나오라 소리친다
  냉이만 캐고 나갈 거라 해도
  나오라 손을 까닥거린다
  쫓아와 검은 비닐봉투 안을 헤집어 놓는다
  그런다고 냉이들이 도망가는 것 보았냐
  그럼 너도 이 밭 저 밭
  빛도 쬐지 말아라
  까치들이 시금치를 쪼러 내려앉고 등산객들도 귀를 세운다
  몇 푼 안 되는 냉이 캐다가
  삼천 원어치는 더 싸우고 내려가는데
  젊은 스님 두 분 절 마당 햇살 속에서 공을 차고 있다
  봄빛이 공짜라면 냉이도 공짜다
  - [손을 쥐었다 놓으면](2020년)

  #. 이삼례 시인 : 전남 신안 출신, 2019년 [시인]을 통해 등단. ‘집도, 남편도, 스승도 없다(독학)’ 하여 ‘3無시인’이란 별명이 붙음. 현재 남한산성 아래 철거민 지역에 살며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철거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함.

  시인은 시집 첫머리에서 “나는 어부이고 농부이고 영세 상인인 이들과 함께 사는 방법밖에 모른다. 도망갈래야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부고와 부채를 전하고 싶다”라고 함




  <함께 나누기>


  지금은 가톨릭 신자지만 한때 불교신자였으므로 가끔 불교 관련 서적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법구경]이나 [금강경] 같은 불교 경전보다는 한때 선사들의 선시에 관심이 많아 거기에 빠져든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불교와 승려를 다르게 봅니다. 마찬가지로 개신교와 목사를 그렇게 보고, 가톨릭과 신부도 다르다 여깁니다. 아무리 종교가 선(善)을 지향하더라도 그걸 전도하는 사람들 모두가 선을 지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으니까요.

  시 속의 내용은 아주 일부 승려의 이야기일 겁니다. 그럼에도 거기 나온 내용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옴은 갈수록 종교인의 타락이 많아서인지. 냉이, 밭에 아주 흔하게 돋아나는 나물입니다. 게다가 냉이를 일부러 키우는 밭은 없습니다. 즉 주인과 관계없이 절로 난다는 말이지요.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판매 목적으로 키우기도 함)

  "젊은 스님이 밭에서 나오라 소리친다 / 냉이만 캐고 나갈 거라 해도 / 나오라 손을 까닥거린다"
  이 구절 보면서 저도 조금 찔립니다. 봄이면 달내마을 뒷산에도 나물 뜯으러 오는 사람이 제법 됩니다. 나물은 괜찮은데 두릅을 따가는 사람 볼 때는 화가 납니다. 왜냐면 산에서 나오는 두릅 양이 많지 않고 딱 마을 열댓 가구쯤 먹을 양만 나옵니다.
  울산 사람들과 자연 경쟁이 붙게 되고 그럼 채 크기도 전에 아주 어린 순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투덜투덜 뒤에서 욕하지요. 저도 욕합니다. 다만 제 욕은 산에 근심 없이 자라는 두릅이 아니라 밭 가에 일부러 심어놓은 걸 따가는 사람들을 향합니다만.

  "그럼 너도 이 밭 저 밭 / 빛도 쬐지 말아라"
  화자가 밭에 자연스레 자라는 (절대 일부러 심은 게 아님) 냉이를 못 뜯게 하는 승려를 향해 받아치면서 하는 말입니다. 즉 당신 대머리에 내리쬐는 봄날의 햇볕을 공짜로 받으면서도 값을 지불하지 않는데, 자연스레 돋아난 냉이의 값을 받으려냐는 반발.
 
  "봄빛이 공짜라면 냉이도 공짜다"
  '공짜로 얻은 건 공짜로 돌려줘야 한다' 이게 화자가 아는 삶의 이치입니다. 더욱 세속에 달관해 사는 중이 그걸 계산적으로 밝히다니... 있는 놈이 더 무섭고, 배운 놈이 더 악랄하다는 세상이라는 말이 스쳐 지나갑니다. 밭에 그냥 자라는 냉이도 주인이 있다는 발상.

  이젠 승려도 신부도 목사도 존경받는 종교인보다는 하나의 직업인으로 인식하게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비 내려주고, 땅이 포근히 감싸 작물을 길러내지만 아무도 하늘에게 땅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없어진 세상입니다.
  따지지 않아도 되는 자연물조차 네 것 내 것을 철두철미 따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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