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혜경 시인(1958년생) : 부산 출신으로 1991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 세상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다 보니 매스컴에 가끔 오르내림.
시인으로서의 명성보다 한때 '노사모' 대표로서의 이름이 더 알려짐
<함께 나누기>
처음 제목만 읽었을 땐,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로 시작하는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떠올라 혹 시인의 이름이 잘못됐나 했습니다. 헌데 시를 읽어보니 전혀 다른 사람의 시더군요.
그리고 그냥 읽어보았을 때는 ‘쪽파를 까며 느낀 점을 노래한 여인의 섬세함이 잘 드러난 시이구나.’ 했다가, 이 시인의 이력을 인터넷에서 알고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이렇게 시와 시인을 결부시켜 해석함도 시 공부의 한 방법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남의 껍데기를 벗기는데 비전문가인 나는 / 어디서부터가 속살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네”
쪽파를, 아니 파 종류를 한 번이라도 벗겨 본 이라면 껍데기와 속살을 구분 짓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 겁니다. 그리고 ‘(남의) 껍데기를 벗기다’는 말에서 단순히 쪽파의 껍데기를 벗기다는 뜻이 아님을 눈치챘을 테고...
“껍데기는 가라? 그래, 껍데기는 가야지……”
이 시에서 껍데기는 속살과 대립하는 시어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시에서는 속살 대신 알맹이로 나옵니다. 여기서 껍데기의 정체가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가야 할', 달리는 '버려져야 할 모든 존재'가 껍데기에 속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서민들은 대부분 껍데기입니다. 껍데기는 속살로 행세하는 무리들이 볼 때는 제거 대상일 뿐입니다.
“내 눈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파밭”
잘 나가는 이들(속살) 눈에 차지 않는 파밭은 껍데기나 마찬가집니다. 그들에겐 버려져야 할, 즉 버림받아야 할 것들이니까요. 헌데 '그것들'은 나에게는 아닙니다. 함부로 다뤄져도 좋을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깨를 겯고 걸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풋풋한 내 망설임이나 자랑이나 희망까지도 / 미련 없이 내다 버릴 것이 // 두려워서 나는 울었네”
세상은 껍데기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내게 있어선 자랑거리인지 몰라도 잘 나가는 이들에겐 아주 하찮은 존재들이니까요. 그렇게 버림받아야 할 일이 두려워서 나는 웁니다. 내게 남은 조그만 희망까지 짓밟는 그들이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두려워서 나는 울었네 쪽파를 까다 말고”
쪽파를 까다 보니 버려야 할 게 무척 많이 나옵니다. 버려지는 껍데기를 보니 그게 마치 나의 모습인양 다가오고요. 따지고 보면 속살과 잘 구분되지도 않건만, 그걸 차별하려는 이들 눈에는 환히 보이는 건가요? 아니면 '너는 껍데기!'라는 낙인이 찍혀 있을까요?
다 읽고 나니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와 이 시의 다름을 아시겠지요. 앞의 시에서 껍데기가 ‘거짓, 허위, 가식, 외세 및 반민족 세력’이란 뜻으로 부정적 의미였다면, 이 시에서는 껍데기는 핍박받는 존재로 쓰였으니까요. 그래서 비록 제목은 빌려 썼지만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전혀 다른 또 한 편의 창의적인 시라는 점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