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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2.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9)

제49편 : 노혜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 오늘은 노혜경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껍데기는 가라

                                 노혜경



  쪽파를 까면서 나는 울었네

  남의 껍데기를 벗기는데 비전문가인 나는

  어디서부터가 속살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네

  수북이 수북이 쌓아 놓았네 파릇파릇한 껍데기의 무덤


  껍데기는 가라? 그래, 껍데기는 가야지……


  나도 마음속에 파밭을 키웠네

  향그런 꽃가슴 같은 파밭

  내 눈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파밭

  (그래 봤자 단에 오백 원인 파밭)


  누군가 내 껍데기를 벗기다 못해 아직

  풋풋한 내 망설임이나 자랑이나 희망까지도

  미련 없이 내다 버릴 것이


  두려워서 나는 울었네 쪽파를 까다 말고.

  -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1995년)


  #. 노혜경 시인(1958년생) : 부산 출신으로 1991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 세상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다 보니 매스컴에 가끔 오르내림.

  시인으로서의 명성보다 한때 '노사모' 대표로서의 이름이 더 알려짐



  <함께 나누기>


  처음 제목만 읽었을 땐,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로 시작하는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떠올라 혹 시인의 이름이 잘못됐나 했습니다. 헌데 시를 읽어보니 전혀 다른 사람의 시더군요.

  그리고 그냥 읽어보았을 때는 ‘쪽파를 까며 느낀 점을 노래한 여인의 섬세함이 잘 드러난 시이구나.’ 했다가, 이 시인의 이력을 인터넷에서 알고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이렇게 시와 시인을 결부시켜 해석함도 시 공부의 한 방법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남의 껍데기를 벗기는데 비전문가인 나는 / 어디서부터가 속살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네”

  쪽파를, 아니 파 종류를 한 번이라도 벗겨 본 이라면 껍데기와 속살을 구분 짓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 겁니다. 그리고 ‘(남의) 껍데기를 벗기다’는 말에서 단순히 쪽파의 껍데기를 벗기다는 뜻이 아님을 눈치챘을 테고...


  “껍데기는 가라? 그래, 껍데기는 가야지……”

  이 시에서 껍데기는 속살과 대립하는 시어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시에서는 속살 대신 알맹이로 나옵니다. 여기서 껍데기의 정체가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가야 할', 달리는 '버려져야 할 모든 존재'가 껍데기에 속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서민들은 대부분 껍데기입니다. 껍데기는 속살로 행세하는 무리들이 볼 때는 제거 대상일 뿐입니다.


  “내 눈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파밭”

  잘 나가는 이들(속살) 눈에 차지 않는 파밭은 껍데기나 마찬가집니다. 그들에겐 버려져야 할, 즉 버림받아야 할 것들이니까요. 헌데 '그것들'은 나에게는 아닙니다. 함부로 다뤄져도 좋을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깨를 겯고 걸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풋풋한 내 망설임이나 자랑이나 희망까지도 / 미련 없이 내다 버릴 것이 // 두려워서 나는 울었네”

  세상은 껍데기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내게 있어선 자랑거리인지 몰라도 잘 나가는 이들에겐 아주 하찮은 존재들이니까요. 그렇게 버림받아야 할 일이 두려워서 나는 웁니다. 내게 남은 조그만 희망까지 짓밟는 그들이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두려워서 나는 울었네 쪽파를 까다 말고”

  쪽파를 까다 보니 버려야 할 게 무척 많이 나옵니다. 버려지는 껍데기를 보니 그게 마치 나의 모습인양 다가오고요. 따지고 보면 속살과 잘 구분되지도 않건만, 그걸 차별하려는 이들 눈에는 환히 보이는 건가요? 아니면 '너는 껍데기!'라는 낙인이 찍혀 있을까요?


  다 읽고 나니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와 이 시의 다름을 아시겠지요. 앞의 시에서 껍데기가 ‘거짓, 허위, 가식, 외세 및 반민족 세력’이란 뜻으로 부정적 의미였다면, 이 시에서는 껍데기는 핍박받는 존재로 쓰였으니까요. 그래서 비록 제목은 빌려 썼지만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전혀 다른 또 한 편의 창의적인 시라는 점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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