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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0)

제50편 : 김규성 '무화과나무 옆에서'

@. 오늘은 김규성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무화과나무 옆에서
                                    김규성

  빗속의 무화과나무 앞에 서 있을 때였다.

  하필 그 곁을 지나가던 바람이
왜 세상에서 제일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바람에게 잘못 봤다고 했다.

  그때 나는 물끄러미 어떤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나뿐인 형은, 사흘 전 18층 아파트 옥상에서
  생활고에 지쳐 투신했다
  - [현대시학](2005년 1월호)

  #. 김규성 시인 : 전남 영광 출신으로 200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현재 담양에 살면서 작가들이 맘껏 집필에만 전념하도록 사재를 털어 마련한 집필실 ‘글을 낳은 집(혹은 혀를 씻는 집이라 하여 <洗舌園>)을 운영

  동명이인으로 충북 보은군 출신으로 대전에서 우편취급국을 운영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무화과나무, ‘無花果’ 그러니까 꽃이 없는 과일나무란 뜻입니다. 물론 우린 이미 알지요. 꽃이 없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꽃이 피나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그리 붙였다는 사실을.
  조금 더 설명을 붙이자면 무화과는 꽃이 없는(無) 게 아니라 꽃이 열매 안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부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피어날 뿐 분명히 피어납니다. 그래서 숨을 ‘은’을 붙여 무화과가 아닌 ‘은화과(隱花果)’라 부르기도 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빗속의 무화과나무 앞에 서 있을 때였다"
  여기서 무화과에 주목해 봅니다. 왜 하필 무화과나무 앞일까요? 아 물론 시인이 빗속을 걷다가 잠시 비를 피하려고 무화과나무 앞에 서 있다고 여겨도 됩니다. 허나 이 무화과나무의 생태를 알고 읽으면 다른 면이 보입니다. '형'과 '무화과'. 이 둘의 관계로 보면 형이 무화과로 비유돼 있음이 드러납니다.

  "하필 그 곁을 지나가던 바람이 왜 세상에서 제일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빗속을 걷다가 잠시 비를 피하려고 무화과나무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바람이 내게 묻습니다. 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느냐고. 나(화자)는 바람에게 잘못 봤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냥 무심코 서 있을 뿐 특별히 슬픈 얼굴을 드러내려 한 건 아니니까요.

  "그때 나는 물끄러미 어떤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가장 슬픈 얼굴을 했다고 했을 때 하필 어떤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나의 형입니다. 화자의 '하나뿐인 형은, 사흘 전 18층 아파트 옥상에서 생활고에 지쳐 투신했다'라고. (이 에피소드는 사실이라고 함)

  자 이제 형님을 무화과에 비유한 까닭을 잡아볼까요. (일반적으로) 무화과는 평생 동안 꽃을 못 피우는데, 형도 생전에 꽃을 피운 적 없습니다. 비록 詩대로 한다면 형은 죽어서야 안식을 찾았지만 형은 생활고에 지쳐 투신자살했습니다. 꽃은커녕 씨조차 남기지 못한 채.
  해서 역설적인 장면이 이어집니다. 나는 형의 죽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데 '입관실에서 본 형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얼굴이었으므로. 아픔과 괴로움 다 떨쳐버리게 돼서 가장 평온한 얼굴이 되었을까요. 이제 찌든 형은 없습니다. 허나 아픔은 죽 남아 있을 듯.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법성포 -

  소 돼지가 도축장을 먹여 살리듯이
  줄줄이 엮인 굴비가
  저 포구를 오늘까지 이끌어 왔다
  역사는
  목숨을 담보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먹여 살리며
  그 이름까지 길이 빛내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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