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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1)

제51편 : 최정란 시인의 '강물재판'

@. 오늘은 최정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강물재판
                        최정란

  아프리카 어떤 부족은
  살인사건이 있고 일 년이 지나면
  범인을 강물에 들어가게 한다

  슬픔의 시간을 보낸
  피해자 가족은
  그를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깊이 밀어 넣을 수도 있고
  그를 용서하고 물 밖으로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그를 죽게 내버려두면 평생을 슬픔 속에 살게 되고
  그를 용서하면 행복이 온다

  낮꿈에도 가위눌려
  허우적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나는
  누구를 용서하지 않은 것일까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사소한 일상의 재판으로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가두는 판결을 내렸던가
   - [여우장갑](2007년)
 
  

#. 최정란 시인(1961년생) : 경북 상주 출신으로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부산에 살면서 네 권의 시집을 펴내는 등 열심히 시를 쓰고 있음.

  (*. 참고로 충북 영동 출신인 최정란 시조시인은 동명이인임)



  <함께 나누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인 [함무라비법전]을 보면 '강물 재판' 관련 내용이 처음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자(피의자)를 고발하면 그 피의자를 강에 투신하게 해서 강이 그를 죽게 할 경우에는 고발한 사람이 피의자의 집을 차지한다. 반대로 강이 피의자를 살려줄 경우에는 고발한 사람을 죽이고 피의자가 고발한 사람의 집을 차지한다.”

  이와 같은 강물 재판이 곳곳에 있었나 봅니다. 다음은 바이칼 호수 주변에 살았던 부족들 사이에 있던 내용입니다.
  "바이칼 호수는 한 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금방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데 죄를 지은 자가 있으면 이 물에 던진다고 한다. 죄인이 바이칼 속에서 만 하루가 지나서도 살아남으면 죄를 묻지 않고 살려주는 재판이다."

  오늘 시에 나오는 아프리카 부족의 재판은 아주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만약 자기 가족을 죽인 죄인을 바로 즉시 재판한다면 다들 죽이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일 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재판을 하면 조금 달라질지 모릅니다. 증오의 감정이 시간이 흐르면 옅어진다 하니까요.
  그러니 아프리카 부족의 강물재판은 가두는 목적의 재판이 아닌 풀어주는 목적의 재판입니다.  세계 어떤 곳에도 죄인을 풀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재판은 없습니다. 다들 가두기 위한 재판일뿐.

  “그를 죽게 내버려두면 평생을 슬픔 속에 살게 되고 / 그를 용서하면 행복이 온다”
  이 시행을 문화와 문명이 뛰어나다 자부하는 소위 선진국이나 문명국 사람들이 봤다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이 부족민들은 예수를, 석가를 만나지도 않았건만,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계명과 ‘죄인에게도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라’는 계명을 실천한 선각자들이니까요.

  “낮꿈에도 가위눌려 / 허우적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나는”
  화자뿐이 아닙니다. 남의 티끌만 한 허물은 기둥만큼 크게 보지만, 산더미 같은 자기 허물은 먼지처럼 여기는 게 바로 우리들 아닙니까? 남을 용서해 줄 일은 있지 남에게 용서를 구할 일은 없다고 여기는 게 바로 우리들 아닙니까?

  “사소한 일상의 재판으로 / 얼마나 자주 / 스스로를 가두는 판결을 내렸던가”
  남에게는 관대하게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하는 글귀를 책상 앞에 꽂아두고 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삽니다. ‘너를 가두면 나도 갇히고, 너를 풀어주면 나도 풀리는’ 이 단순한 이치를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우린 감옥 앞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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