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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2)

제52편 : 이성선 시인의 '문답법을 버리다'

@. 오늘은 이성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문답법을 버리다
                              이성선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뿐
  여기 들면
  말은 똥이다
  - [산시(山詩)](1999년)
  

#. 이성선 시인(1941년~2001년) :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1972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설악산 인근에 살며 설악산을 글감으로 한 시를 많이 써 ‘설악산 시인’으로 알려졌는데, 예순의 나이에 하늘로 가심



  <함께 나누기>

  이 시인에 대한 평입니다.
  ‘절에 가면 고요하게 자리한 탑과 같은 사람, 산에 들면 새와 나무와 한 몸이 되는 사람, 하늘로 오르면 구름과 벗이 되는 사람’
  저는 거기에 하나 더 붙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쓴 사람’

  오늘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답법’의 뜻을 알아야 풀릴 겁니다. 원래 문답법은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이끌어 주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가리킵니다. 그럼 좋은 뜻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겁니다. 원래 문답법 그대로라면 맞다고 봐야겠지만 오늘 시에 쓰인 문답법은 긍정적 의미가 아닌 걸로 보입니다.

  아래 시행들을 한 번 볼까요.
  “산에 와서 문답법을 / 버리다”
  “이제는 이것뿐 / 여기 들면 / 말은 똥이다”

  산에 들어와 문답법을 버렸습니다. 산에는 그런 문답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겠지요. 다음엔 여기(산) 들어오면 말은 '똥'이라고 했습니다. 문답법에선 꼭 필요한 말이 산에선 필요 없는 똥과 같답니다.
  결국 시인에게 세속에서 주고받는 말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남을 뒤에서 험담하는, 즉 해코지하는 말이라고 봤을 겁니다. 시인에게 산은 그런 타락한 말이 판치는 세상을 잊고 살고픈 곳입니다. 오염된 말들을 피해 산과 구름만 바라보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낸.

  언제나 산은 말이 없습니다. 천년만년 묵언 정진 중입니다. 그 무게감을 느낀 사람이라면 세속에서 주고받는 말이 얼마나 하찮을까요? 떡갈나무 소나무 구상나무 잎사귀로 자신을 두른 채 고요히 수행하는 산은 세상을 모두 담고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무를 가만히 / 바라보는 것 /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살아감이 시인에게는 꼭 필요한 삶이었을 겁니다. 입으로 하는 말보다 가슴으로 하는 말을 더욱 중시하는.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고 구름을 쳐다보면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라고 합니다. 그럴 때라야 진정 듣고자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 아는 고시조 한 수 띄우며 매듭짓습니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하는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시인이 도를 얻은 스님처럼 살다 보니 그의 시를 선시(禪詩)라 하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선시(?)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귀를 씻다 -

  산이 지나가다가 잠깐
  물가에 앉아 귀를 씻는다

  그 아래 엎드려 물을 마시니
  입에서 산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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