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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6.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0)

제160화 : 흔적은 없으나 흔적은 남는다

  * 흔적은 없으나 흔적은 남는다 *



  (1) 우리 집 텃밭에서

  며칠 전 텃밭에 남새 뜯으려 나간 아내가 들어오더니,
  “아 미치겠네. 그놈이 또 내려와 시금치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놨어요.”
  아내가 말한 ‘그놈’은 고라니다. 녀석이 하도 들락날락하기에 울타리까지 만들어놓았는데도 제 집인 양 드나든다.

  그래도 이상하여 한마디 했다.
  “고라니 들어올 구멍 다 막았는데 들어올 리 없잖아.”
  “고라니 아니면 뜯어먹을 놈이 또 누가 있어요?”
  그 말에 대꾸할 말이 없다. 산토끼 없는 뒷산에 고라니 아니면 뜯어먹을 짐승이 살지 않으니.


(달내계곡에 선명히 찍힌 고라니 발자국)


  마을 한 바퀴 돌고 와서 텃밭에 가보았다. 아내 말대로다. 시금치 부드러운 부분이 다 뜯겨나가 있다. 어떤 녀석이든 뜯어먹은 게 분명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땅바닥을 살펴보았다. 없다. 샅샅이 훑어봤으나 없다, 고라니 발자국이.
  엊그제 비가 와 바닥이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 고라니가 왔다 갔으면 그 자국이 남아야 한다. 헌데 그게 없다. 이상하다. 녀석의 발자국은 없고 시금치는 뜯겨나가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의문은 들었지만 형사 콜롬보처럼 파헤칠 수도 없으니.

  다음날 시금치를 뜯어먹은 녀석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까치. 세상에 까치가, 아니 새가 풀을 뜯어먹다니. 까치와 까마귀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면 총알같이 날아와 그곳 뒤지는 일이야 몇 번 봤지만 시금치 같은 풀을 먹다니. 대체 가능하단 말인가.
  그날 시금치 밭에 몰려든 까치를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했으리. 한편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먹이 없으면 시금치라도 먹으랴 싶어서. 인터넷을 뒤적이니 새가 풀 뜯어먹는 내용 담은 영상이 제법 나온다. 그러니까 새가 풀을 뜯어먹는다는 말은 사실이다.


(돌벤치 위에 새겨진 까치 발자국 무늬 : 동아일보 2022년 4월 7일)


  (2) 겨울 바다에서

  나는 여름에 복잡할 땐 해수욕장 가지 않고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겨울에야 해수욕장을 찾는다. 분답함을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가장 자주 찾는 곳은 포항에 있는 칠포해수욕장이다. 이곳은 넓은데 겨울엔 찾는 사람이 없다는 장점(?)을 지닌다.
  넓디넓은 해수욕장에 오직 나 혼자다. '독차지하다'는 말이 딱 맞게. 혼자라면 내 맘대로 노닐 수 있다. 「해변의 여인」(나훈아)을 마음껏 불러도 되고, 백사장에서 마음껏 달음박질해도 된다. 아득히 넓은 백사장을 독차지함이 얼마나 좋은지. 호사도 이런 호사가 또 없다.

  아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갈매기가 날아와 저 멀리 앉는다. 나는 '홀로 분위기'를 깨뜨린 녀석들이 괘씸했고, 녀석들은 '굴러온 돌'이 괘씸했으리라. 그래도 그만.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놀면 그만. 그렇게 나는 혼자 저기까지 갔다 왔다 했고, 갈매기는 여기 앉았다간 날아서 저기로 갔다를 반복한다.


(백사장에 찍힌 갈매기 발자국)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녀석들이 잠시 놀다간 곳에 가보았다. 역시 있었다. 갈매기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힌 채로. 돌아보았다. 내가 누비고 다녔던 백사장에도 발자국이 뚜렷하다. 만약 과학수사대라면 신은 신발 크기와 상품명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고라니 까치만 흙에 발자국 남기고 갈매기만 모래에 자취 남기는 건 아니다. 나도 내 자국 남긴다. 일부러 팔짝 뛰었다가 내려왔다. 발자국이 전보다 훨씬 선명하다. 이러면 적어도 일부러 지우지 않는 한 며칠은 가리라.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


  흔적은 꼭 동물과 사람만이 남기지 않는다. 개울가 조약돌이 둥긂은 오랜 시간 흐르는 물이 할퀸 흔적의 무늬다. 재작년 제주도 ‘한달살이’ 할 때였다. 몇 번이나 날씨와 시간으로 하여 기회를 놓치다 마지막 날에 '용머리 해안'을 찾았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용머리 해안이 왜 유명한지, 제주도 가면 왜 꼭 들려야 하는지. 안 보면 제주도 찾은 감흥이 줄어들 정도다. 파도가 부딪쳐 바위를 깎아 만든 절경. 세계적인 유명 조각가 백 명이 모여 십 년 넘게 깎아도 저런 작품은 도무지 만들지 못하리라.

  용머리 해안을 창작한 작가는 다름 아닌 파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살짝살짝 건드렸을 뿐이나 바위는 환상을 그려내고. 어디 파도뿐이랴. 바람도 한몫했으리. 어쩌면 갈매기똥도, 그리고 통통배의 기적소리도 보탰을지 모른다.


(파도가 할퀴어 만들어진 용머리 해안)


  (3) 꼭 흔적을 남겨야만 할까

  백사장에 어떤 갈매기는 흔적을 남기지만 그 위를 한 바퀴 휘돌다 가는 갈매기의 흔적은 없다. 바람도 마찬가지다. 세게 불어 저가 무너뜨린 건물이나 나무는 흔적이 남지만, 살며시 불다 스쳐 지나간 바람은 꼬리가 없다.
  뿐이랴, 달내계곡을 지나쳐 간 멧새, 개구리, 청둥오리, 산비둘귀, 백로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바닷가엔 파도가 만든 자국은 더러 보이지만 바위 사이에 핀 해국(海菊)의 향기는 남아 있지 않다.

  나도 날마다 마을 한 바퀴를 돌지만 내가 남긴 십여 년의 흔적은 사라져 찾을 수 없다. 그럼 나는 여기 살지 않았던가. 바닷가 해국은 향기를 풍기지 않고, 개울을 지나쳐 간 개구리는 한 마리도 없었는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흔적 남기지 않았을 뿐 다 그곳에 있었다.


(개구리는 개울을 수십 번 건넜으나 흔적을 남기지 않음)


  우리 인간도 그렇지 않은가. 역사에 이름은 남긴 사람은 그 흔적이 뚜렷하지만 무명의 서민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럼 그들은 살지 않았는가. 남기는 게 없었는가. 눈에 보이는 흔적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흔적의 중요성도 그에 못지않다.

  용머리 해안의 기암절벽은 파도가 남긴 흔적이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시간의 흔적이다. 아무리 파도가 세도 단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걸려야 하니까. 결국 내가 남긴 흔적도 뚜렷하지 않으나 시간의 흔적은 유명한 이들과 다를 바 없다. 그 흔적이야말로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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