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3)

제53편 : 최광임 시인의 '개 같은 사랑'

@. 오늘은 최광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개 같은 사랑
                                          최광임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에 개의 눈과 마주쳤다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빵빵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 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간의 생을 더듬어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
  - [내 몸에 바다를 물들이고] (2004년)


#. 최광임 시인(1967년생) : 전북 변산 출신으로 2002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중앙일보에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를 연재

  디카시란 디지털 시대, SNS 소통환경에서 누구나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시(詩) 놀이



  <함께 나누기>

  보름 전쯤에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3년 간의 계도기간을 거쳐 2027년 부터는 개 식용이 완전 금지됩니다. 보신탕을 즐기던 사람과 육견을 키워 팔던 사람들에겐 충격일 겁니다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면 할머니와 함께 살던 개가 할머니가 세상 떠나고 난 뒤에도 그 집을 떠나지 않는다든지, 교통사고로 단짝을 잃은 뒤 사고 지점 찾아와 서성이는 광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개도 사람처럼 감정을 드러낸다는 말이지요.

  화자는 차를 몰고 가다가 희한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암컷 한 마리가 차가 많이 오가는 도로를 건너자 뒤따라온 수컷이 잠시 멈칫 합니다. 덤프트럭에 부딪쳤나 봅니다. 함에도 수컷은 목숨 걸고 도로로 뛰어듭니다. 이유는 단 하나, 저기 사랑하는 암컷이 있으므로.

  "급정거하며 /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에 개의 눈과 마주쳤다 /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사랑하는 암컷을 향해 도로로 뛰어들려는 수컷의 목숨 건 사랑, 그 강렬한 사랑에 화자는 반합니다. 저런 수컷이라면, 저런 사내가 곁에 있다면 그에게 나를 온전히 다 맡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여자가 없겠지요.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들의 폭주에 수컷의 목숨은 폭우에 금세라도 꺾일 들꽃처럼 간당간당합니다. 그렇다면 포기해야겠지요. 허나 죄라고는 사랑한 일 밖에 없는 눈빛으로 암컷이 간 길로 달려갑니다. 사랑이 죄라면 또 사랑이 가장 강력한 방패이기도 하니까요.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현실 감각을 따르면 좋은 여자이나, 그렇지 않으면 나쁜 여자가 됩니다. 가진 거라곤 사랑 빼놓으면 달랑 두 쪽뿐인 남자를 따르니 나쁜 여자가 될 수밖에요.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여자는 좋은 여자일 겁니다. (남자도 마찬가지) 나쁜 여자는 드라마나 소설의 주인공 밖에는 없겠지요.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
  그런 사내라면 밤을 함께 지내도 후회하지 않겠지요. 그런 사내라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여한이 없을 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는 그런 멋진 사내의 여자가 되기를 꿈꾸었다는 뜻이 되겠지요.

  '개 같은 놈, 개 같은 ××'에 익숙한 우리에게 개 같은 사랑, '개 같은'이 이렇게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할 줄이야. 계산하는 사랑보다 본능에 이끌리는 사랑, 좋으면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사랑이 이 시를 읽으니 새롭게 다가옵니다.











글 옵션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산골일기(16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