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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29.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4)

제54편 : 정호승 시인의 '국화빵을 굽는 사내'

@.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국화빵을 굽는 사내
                                     정호승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 [내가 사랑하는 사람](2021년)

#. 정호승 시인(1950년생) : 경남 하동 출신으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 고교 교사,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40세 때 직장을 그만두고 시를 쓰고 강의를 다니는 전업 시인으로 생활

  노래로 불린 시만 해도 수십 편, 교과서에도 수십 편 실린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시인



  <함께 나누기>


  한 달 전 크리스마스에 뉴스 하나가 떴습니다. 명동 노점에 일본식 붕어빵 크로와상 타이야끼가 4000원으로, 우리가 아는 붕어빵이 4개 5000원. 뉴스에 떴다는 말은 국민 군것질 감이 너무 비싸다는 의미. 그렇게 아무나 사 먹던 국화빵(붕어빵)이 아무나 사 먹지 못하는 빵이 되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첫 시행부터 참신한 표현이 바로 튀어나옵니다. '눈물을 굽는다' 이런 멋진 표현이 시인의 시집을 읽게 만들지요. 국화빵 장사는 앞 뉴스에 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눈물 그렁그렁 한 삶에 붙잡혀 삽니다.

  그리고 '구울 줄 아는군'은 장사치가 가진 국화빵 만드는 능력을 말함이 아니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일하는 가장의 자세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구워지는 눈물은 단순히 삶의 힘듦이 아니라 따뜻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이 시행에선 '따끈따끈한'에 주목해 봅니다. 갓 구웠으니 따뜻하겠지만 그보다 우리네 삶의 추위를 녹이는 열기가 됩니다. 황량한 도시의 밤거리에 붕어빵 수레에 달린 카바이드 등과 함께 모락모락 솟아나는 김과, 입안에 들어갔을 때의 온기까지 포함한.


  “오늘도 한강에서는 /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이 시행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릴' 수 없습니다.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야 가능합니다. 그럼 어떤 뜻일까요? 한강이 '삶의 터전'이라면 그물로 물이 다 빠져나가니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허전한 현실.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고작 그물에 묻은 물로는 병(가난)을 고칠 수 없습니다. 두레박에 가득 물이 차야만 병이 나을 텐데 우리네 서민은 절대로 낫지 않는 병. 꼭 물을 경제적 가치로만 한정할 필요 없이 희망이라 해도 되겠지요. 현재의 궁핍을 떨칠 수 있는 정신적 위안 같은 것으로.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 넣을 줄 아는군”

  직접적으로 해석하면 눈물을 밀가루 반죽으로 본다면 거기에 설탕을 조금 보태 국화빵을 만듭니다. 서민의 눈물에 보태는 설탕, 그 설탕 때문에 조금은 추운 겨울을 보내기 수월하겠지요. 비록 현실의 팍팍함을 벗어나기엔 부족하더라도.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눈물 섞인 빵을 먹어본 사람이라야 눈물에 절어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밑바닥 삶을 살아본 사람은 절망에 빠져 사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화자 역시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국화빵 장수의 눈물을 이해합니다. 오늘도 추위를 무릅쓰고 오가는 손님 기다리는 그 마음을.


  제가 단순히 끄적인 해설보다 한 번 더 조곤조곤 씹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다가오는 시입니다. 또 국화빵에서 이웃의 눈물을 보는 따뜻한 시선을 길러야 함을 시인은 바라고 있을지도...


  오늘 시 해설에서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란 시행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시 맛이 달라집니다. 제 해설은 다만 참고일 뿐.

  참고로 시인은 국화빵을 글감으로 '국화빵의 추억'이란 또 한 편의 시를 더 썼습니다.


  *. 아래 사진은 [매일신문](2011년 1월 27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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