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12. 2024

목우씨의 첫사랑 편지(3)

제3화 : 첫사랑의 편지(3)

  @. 제게 학교와 학생은 언제나 첫사랑이었고, 그때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첫사랑의 편지입니다.

  편지 쓴 연도를 보니 1학년때 가르쳤던 학생이 졸업하고 취직하기 위해 서울 왔는데 잘 안 되선지 갈등하는 내용 같군요.


         * 첫사랑의 편지(3) *


  지금 창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달무리 진 하늘가에 서러움이 커서 그렇게 흐느끼나 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제 마음을 닮아갈까요. 지금 저의 심정은 무척이나 착잡하답니다.
  비 오는 밤에 추억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제어하면서 무표정하게 그리다 단정히 앉아 있는 전화기에 시선이 머뭅니다. 가까이 계시면 한 번 걸어볼 수도 있는 문제련만 하는 안타까움이 뇌리를 스칩니다.

  그간 안녕하시겠죠? 늦게나마 안부 여쭙니다.
  선생님 어때요, 어떤 밤이면 선생님과 웃고 즐기던 순간들이 너무도 그립답니다. 벗들의 얘기 소리도. 지금은 하이얀 밤을 보내는 것도 무의미하기만 합니다. 오직 그리움으로 가득한 가슴이기에…

  봄의 내음이 가득한 이곳 서울은 화려함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온통 허무감으로 가득합니다. 밝은 세상과의 화합은 어려운 체질인가 보죠. 선생님은요?



  선생님!

  모든 것 다 털어버리고 훌훌히 떠나고 싶어요. 취업을 앞둔 심정이란 제각각이겠지만 저는 또다시 제가 파놓은 후회의 늪 속을 방황하게 됩니다.
  뚜렷치는 않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면서도 제 생활의 현실은 보잘것없고 결점투성이의 한 마디로 형편없는 생활이었어요.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위해 노력할수록 더 좌절과 후회와 열등의식 속에서 번민하게 됩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게 된다는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사람들이 깊이 잠든 이 시각에 스탠드의 작은 불빛을 벗하며 이제 뛰어야 할 새로운 사회, 나아가 저의 생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꽤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군요. 동물들은 생존하기 위한 조건으로 만족하지만 사람의 머릿속에는 사고하는 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상을 향해 뛰도록 만들었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번민과 고뇌 속에서 그리고 결코 평탄할 수 없는 생을 살아가면서 제 자신이 인간으로 지상에 태어난 것을 무척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비록 고달프더라도 내일이 있으니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꿈이 있는 내일이…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뜁니다. 여고 졸업의 의미도 우리의 생을 통괄해 볼 때는 대단하지 않은 일이지만 하나의 매듭을 짓는다는 점에서는, 그리고 또다시 새 출발한다는 견지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같군요.

  길지도 않은, 단 하나뿐인 짧은 삶을 생각하면 무의미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고 다짐을 합니다.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어요. 무한한 가능성을 저의 것으로 만들어 되돌아보아도 비참해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선생님께 윤동주 님의 시 한 편을 소개할께요. 제가 아끼는 시 중 하나예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序詩

  선생님!
  이 밤에 저는 조그마한 기쁨에서도 만족이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가슴 작은 사람이고 싶어요.

  1981년 5월 17일 ○○ 드림


  <함께 나누기>

  오늘 이 편지를 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내용보다는 글씨체입니다. 참 단아하게 쓴 글씨라 지금 읽어도 정겹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했던 학교는 실업계 여고라 졸업하면 취직해야만 했는데 아마도 직장을 구하려 서울에 올라갔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은 듯.
  그래도 글씨체만큼이나 반듯한 사고를 지녔으니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갔으리라 믿습니다. 이 소녀에게 뭐라고 답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그 뒤 한두 번 더 연락을 주고받은 듯한데 제 결혼 후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부디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첫사랑 편지(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