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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1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63)

제63화 : 정일근 시인의 '사는 맛'

@. 오늘은 정일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사는 맛
                                       정일근

  당신은 복어를 먹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복어가 아니다, 독이 빠진
  복어는 무장 해제된 생선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
  요릿집이 있다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독의 맛을 들이다 고수가 되면
  치사량의 독을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 고수가 먹는 것은 진짜 복어다
  맛이란 전부를 먹는 일이다
  사는 맛도 독 든 복어를 먹는 일이다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의 독 맛
  그 하나라도 독으로 먹어 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사는 맛은
  독이 빠진 복어를 먹고 있을 뿐이다.
  -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2006년)

  #. 정일근 시인(1958년생) : 경남 진해 출신으로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중학교 교사로, 기자로 근무하다 모교인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후 동 대학 석좌교수로 있음.



  <함께 나누기>


  늘 좋아하는 일만 하고, 좋아하는 요리만 먹고,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이러면 참 좋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하고, 싫어하는 음식도 먹어야 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만나야 함을...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는 사람 관련 문제는 넘기더라도 좋아하는 음식만 먹다 보면 영양에 불균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처럼 오늘 시는 인생의 달고 쓰고 맵고 신 맛을 골고루 맛보아야 제대로 된 삶을 알 수 있다 합니다. 그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이라고.


  시로 들어갑니다.


  "독이 빠진 / 복어는 무장 해제된 생선일 뿐이다"

  복어회, 아무리 전문가가 요리한다 해도 청산가리보다 5~13배나 강한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신경독의 치사량을 떠올리면 먹기 힘들지요. 그래도 복어회를 먹을 수 있음은 독 뺀 상태로 회 떠 내놓기 때문입니다. 헌데 화자는 '독을 뺀 복어를 먹는 건 복어회 먹는 게 아니다'라고 합니다.


  "조금씩 / 조금씩 독의 맛을 들이다 고수가 되면 / 치사량의 독을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 요릿집이 있다고 합니다. 진짜 이런 복어 요릿집이 있는지, 또 있다 해도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먹으러 오는 사람 있는가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이해함에는 진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편안함을 찾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시임을 압니다.


  "그 고수가 먹는 것은 진짜 복어다"

  독을 완전히 제거한 복어회는 진짜 복어회가 아니라 독이 든 복어회가 진짜랍니다. 왜냐면 '맛이란 전부를 먹는 일이'므로. 살다 보면 때때로 찾아오는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감정의 맛일 겁니다. 허나 바닥까지 가 닿은 후에야 얻어지는 인생의 독맛이 있습니다.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의 독 맛 / 그 하나라도 독으로 먹어 보지 않았다면 / 당신의 사는 맛은 / 독이 빠진 복어를 먹고 있을 뿐이다"

  삶의 독인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을 이겨낸 사람만이 느끼는 희열 거기서 얻은 삶의 건강한 내공.  복어의 독처럼 조금씩 조금씩 먹어서 몸속에 내성이 생긴 사람처럼 살아야 했는데 그리 못해 이 시행 읽는 순간 누가 나를 지켜보는가 하여 조심스레 뒤돌아봤습니다.


  코로나 오기 전 일화 하나 덧붙입니다.


  카톡으로 시 배달을 받는 이가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열어본 흔적이 없어 전화도 몇 번 했으나 안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사고가 났지 않나 걱정하던 차에 연락이 왔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고.

  순간 제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아니 뭐 하러 그 힘든 곳에 갔다 왔어요?"


  아시다시피 그 순례길은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 넘어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에 이르는 길.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고, 더욱 건강이 좋지 않은 몸이었기에 하루에 20~25km를 걸어야 하는 강행군의 여정을 소화하기에 무리였을 거란 우려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 돈이면 열흘 정도는 유럽 볼 만한 곳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호텔에서 편안히 자며 즐겁게 노닐다 올 수 있으니까요.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이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리로 이끌었느냐고. 무엇이 그런 모험을 하게 하였느냐고.


  '무의미하게 지내는 삶에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고'란 그의 답에 또 물었습니다. '그래 찾았느냐'라고. 그러자 완전하지는 않지만 밑그림을 그릴 정도는 깨달았다고. 그의 말처럼 밋밋한 삶으로는 깊이 또아리를 튼 삶의 의미 다 볼 수 없을지 모릅니다.

  모험과는 거리가 먼, 쉽고 편안한 길 쪽으로 끌리는 일이 꼭 나쁘지만은 않기에. 아니 우리 대부분은 그리 살기에. 하지만 고통과 절망을 피하기만 한다면 삶의 달콤한 과일을 거둘 수 없음도 분명합니다.


  독이 든 복어 요릿집을 찾아가고픈 오늘 아침입니다. 그래서 독이 든 복어회 먹고 면역력을 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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