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23.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67)

제67화 : 나의 고뿔이 남의 중병보다 더 아프다

@. 오늘은 제가 쓴 생활글(수필)을 배달합니다.


     * 나의 고뿔이 남의 중병보다 더 아프다 *


  몇 년 전 심장시술 받으러 서울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시술하기 하루 전 입원한 뒤 몇 가지 검사를 받느라 검사실을 오갈 때였다. 앞에 또래의 남자가 서 있어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가끔 가슴에 손대면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게 느껴져 무슨 나쁜 병이 아닌지 검사받으러 왔다며 혹 중병 선고받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심장 관련 병을 앓은 경험이 있는 이라면 그 정도 증상은 별일 없다는 걸 대략 짐작할 테고, 또 별일 있다고 한들 진짜 별일 아닌 가벼운 이상으로 나올 공산이 아주 크다는 것도 안다.

  그때 문득 그와 처지가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야 검사 한 번만으로(?) 끝나겠지만 나는 당장 내일 심장을 전기로 지져대는 시술이 예약돼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가 하는 걱정은 옛날 중국 기(杞) 나라 사람이 하는 근심(기우 : 杞憂), 즉 밖에 나가 걸어다니다 땅이 푹 꺼지거나 하늘이 무너져 내릴까 하는 걱정, 정말 아무 쓰잘데기 없는 걱정으로만 여겨졌다.




  다음날 '전자도극(심장)절제술'이란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시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보낸 뒤 입원실로 갔다. 아시겠지만 입원실엔 비슷한 환자들끼리 모인다. 그러니 내가 머물 입원실도 모두 심장 관련 수술이나 시술받은 환자들만 있는 곳이다.
  내 자리는 여섯 명의 환자가 있는 방 출입문 왼쪽에 배당받았다. 자리에 눕자마자 오른쪽 침대의 환자가 무슨 수술받았느냐고 묻기에 시술 이름을 댔다. 속으로는 나보다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없거나 있더라도 비슷한 정도이겠지 하며.

  그의 첫말이 “에이, 호리뺑뺑이잖아 (별것 아니잖아)!”였다. 남은 생사를 넘나드는(?) 시술을 받고 왔는데 그냥 내던지는 말에 화가 났으나 신참의 처지라 못 들은 척 넘겨버리려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입원실 동료 다섯 명의 병명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게 아닌가.
  그는 가장 약한(?) 심장혈관성형술 뒤 스텐트 - 의료용 금속으로 제작된 작은 망 튜브 -를 두 개나 박았고, 내 맞은편의 젊은 환자는 길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와 응급 심장수술을 받았으며, 바깥 창 쪽의 두 환자는 예전에 한 번 심장수술 받았는데 재발하여 다시 수술한 뒤 상태를 살피는 상태며, 입원실 들어온 이래 산소호흡기를 달고 계속 눈 감고 있는 오른쪽 환자는 수술 후 경과가 좋지 못하다고 하면서 고개를 살며시 젓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그 사내 말의 요지는 내가 아주 가벼운 상태라는 거였다. 그럼 그의 정보가 위로가 되었을까? 아니다. 그들이 아픈 건 아픈 거고 내가 아픈 건 아픈 거니까. 잠이 들 무렵에 통증이 찾아왔다.

  아시다시피 통증은 잠들 무렵 몰래 과수댁 찾아가는 홀아비처럼 살며시 찾아온다. 아프니까 당연히 신음했다.  무통주사를 맞고 진통액 통을 달고 있건만 허벅지에 구멍 두 개를 뚫어 심장까지 전선 끼워넣어 지져댔으니 아무리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해도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때 떠버리 사내가 한마디 하는 게 아닌가.
  “아이구 아재요, 엄살이 너무도 심하시네.”
  조금만 덜 아팠더라면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뭐 저런 인간이 있나 하는 생각에 입원실 잘못 들어왔구나 한탄하며 나오는 신음을 삼키려 애쓰다 밤을 하얗게 새웠다.




  다음날 아침 심각한 상태의 환자 쪽에 간호사와 의사가 오가더니 침댈 밖으로 옮기자 떠벌이는 내게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내 그 자리 소독 후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40대 초반의 사내였다. 헌데 그 환자는 원래 우리 입원실에 와야 할 환자가 아니었다.
  그는 갑상선 쪽에 이상이 생겨 수술받았으니 내분비내과 입원실로 가야 했으나 거기에 환자가 꽉 차 이쪽 심장내과로 왔다는 거였다. 초등학교 다님직한 열살즈음 아들과 애리애리한 - 나중에 30대 후반임을 알게 되었으나 내 나이라면 그렇게 보임 - 아내, 이렇게 네 가족은 첫눈에도 행복해 보였다.

  허나 아들딸이 가고 아내만 남은 밤이 되면서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 얼마나 앓는 소리를 내는지…
 “아이구, 아야!” “아이구, 아야!” 하는 소리를 입에 달았다. 다분히 아내를 의식한 신음임을 알면서도 가만있을 수 없어 내가 한마디 했다.
  “마, 엄살 그만 좀 피우소!”




  나와 형 아우 하며 지내는 막일하며 벌어먹고 사는 이가 있다. 그는 작년 어깨가 고장 나 회전근개파열로 수술을 받았다. 이 병을 수술받은 이나 환자 가족이면 다 알리라. 수술 후 적어도 6개월은 통증이 있어 일을 제대로 못한다. 그러니 막일하는 이에겐 치명적이다.
  뻔히 아는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직접 돈을 줘 도와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해, 생각하다 아파도 대충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맡기곤 했다. 한 번은 지붕에 물 새는 곳 때우는 공사를 맡긴 뒤, 일을 마치고 잠시 이야기 나누던 중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형, 요즘 내 소원이 뭔 줄 아오?”
  짐작이 잘 안 가 잠시 그를 보자,
  “할 수만 있으면 형처럼 사는 거요.” 하는 게 아닌가.
  한동안 멍했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가 그의 이상형이 되다니…
  ‘재산이라곤 꼴랑 삼성전자 10주와 시골집 한 채밖에 없는데...’

  그러다가 문득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전셋집도 아닌 월세에다 하루 벌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형편에 집 있고 꼬박꼬박 연금 나오는 생활을 하는 내가 부러울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내가 다른 이의 부러움 대상이 되겠는가.’




  살다 보면 힘들 때가 많다. 나도 그랬다. 결혼할 때부터 빚을 안고 시작했으니 힘들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아내랑 돈 문제로 다툴 때면 입을 닫는다. 그 빚이 빌미가 되어 40년 가까이 직장 생활했으나 끝내 울산에서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해 시골로 옮겨온 처지가 아닌가. 그나마 시골에서도 산골로 왔기에 400평 가까운 땅과 집을 가지고 살 수 있는데 그런 내가 그의 이상형이 되다니...
  그날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게 없다는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 누군가가 부러워할 생활이라면 내 생활을 그리 아파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 가만 생각하면 나보다 나은 이를 보면 한없이 처지가 슬퍼지지만, 아래로 보면 나보다 못한 이가 수두룩빽빽하다. 비록 아들이 포기한 재산이지만.

  언젠가 아들과 술 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눈 적 있다. 그때 농담 삼아,
  “아빠 엄마는 나중에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할 거다.” 하니까, 잠시 심각한 얼굴이더니,
  “도대체 얼만데요?” 하기에, “~~원쯤 된다.”라고 했더니,
  “아이고 꼴랑, 다 줘 버리소. 그까짓 거.”




  고뿔은 ‘고 + ㅅ + 불’로 나눠지는데 옛말에 ‘고’는 ‘코’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고뿔’은 ‘코에 불이 나다’ 즉 ‘감기’를 뜻한다. 해서 ‘나의 고뿔이 남의 중병보다 더 아프다.’라는 말은, 남 보기에는 내가 고작 감기에 걸렸을 뿐이지만, 남이 앓는 중병(重病 : ‘암’ 같은 병)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다. 달리 ‘남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다 해도 나의 작은 괴로움보다 마음이 쓰이지 아니함’을 이를 때 쓰기도 한다.

  육체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내가 앓고 있는 병은 어느 누구의 병보다 더 아프다. 헌데 둘러보면 실제로는 나보다 더 아픈 이들이 많다. 나보다 덜 아픈 이만 바라보면 그 아픔이 더 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보다 더 아픈 이를 보면 아픔을 덜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아직도 덜 수련되었는지 나를 이상형으로 삼는 동생뻘 되는 이의 아픔을 보면서 잠시 아픔이 좀 덜한 것 같더니만 아주 잠깐뿐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은 없는 것 같다. 아,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보다 더 크게 보이는 날은 언제 올까?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6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