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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22.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69)

제69편 : 복효근 시인의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 오늘은 복효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 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2002년)

  *. 누우 : 외국어 표기법상 ‘누우’는 잘못된 표기고 ‘누’가 맞지만, 시의 운율을 살리기 위해 ‘누우’라 쓴 듯.

  #. 복효근 시인(1962년생) : 전남 남원 출신으로 1991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 현재 전북 남원시 소재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데, 교과서에 여러 시가 실려 있을 정도로 좋은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어제 나희덕 시인을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좋은 시를 많이 쓰는 여성시인'이라 소개했는데, 오늘은 '이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시를 많이 쓴 남성시인'을 소개합니다. 바로 복효근 시인.
  오늘 시를 읽고 난 뒤 해설을 읽기 전에 아래 붙인 영상을 먼저 보시기 부탁합니다. 아마 보고 나면 관련 영상을 한 번쯤 봤거나 관련된 글을 읽었다고 고개 끄덕일 겁니다.

  사실 시인이 시로 쓰기 전에 수필가, 목사, 신부, 그리고 글 쓰는 많은 이들이 강론 자료로 또는 수필로 썼기 때문이지요. 글쟁이라면 참 좋은 글감 아닙니까. 아 물론 이런 비판도 가능합니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널 때 몇 마리가 앞장서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게 사실이냐고.
  그럴 때의 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과학적 진실보다 감성적 진실이 우선이니까 그게 옳으니 옳지 않으니 하는 말은 하지 마시라고.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는 쉬워서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겁니다. 특히 영상까지 보셨다면 더더욱. 따로 덧붙일 말이 필요할까 합니다만. 악어 떼가 입을 벌리고 있는 강을 누우 떼가 건너려 합니다. 그 강 너머에 초원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잠시 망설이다가 우두머리 누우 몇 마리가 자진하여 악어 아가리 속으로 머리를 들이밉니다. 자신의 몸이 뜯기는 동안 동료들이 강을 건너도록. 그러다 뒤에 이어진 시행에 눈을 멈추면, 시인이 누우 이야기를 예로 삼았을 뿐 실은 우리 인간 향했음을 눈치채겠지요.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인류사에도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세상을 위기에서 건져 낸 넓고 높은 실천의 대인(大人)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덕에 우리는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음은 불문가지.
  헌데 현재 누우처럼 거친 풀을 뜯고 있는 사람 보았습니까. 누우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고행을 자처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굶주린 악어가 강을 피로 물들이며 희생적인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다른 누우 떼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드는 숭엄한 장면을 생각하면...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강둑에서 굳은 결심으로 몸을 던지기로 결심한 누우가 이 시대의 우리에게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은 살면서 나와 직접 관계없는 남을 위해 단 한 번이라도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한 적 있느냐?”라고.

  글을 끝내려 할 때 문득 떠오른 한 시가 있습니다. 시인이며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란 사람의 이력을 알면 아래 시가 더욱 다가올 겁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덧붙이는 영상입니다.

https://youtu.be/7VB5l7wX2m0?si=DwfqEcwsunTH-EAN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고난주간 주제제기 영상"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문학과경계)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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