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01.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2)

제162화 :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다


   *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다 *


  (1) 뽕나무 위 까치집 두 채


  마을 한 바퀴 돌기는 여전하다. ‘운동’이 주목적이 아니라 걸으면서 글감을 마련하고 글 쓸 내용을 정리하는데 참 좋다. 어제는 돌다가 재작년 하늘로 가신 금산 할머니 댁을 지나치려는데 이질감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돌 때마다 보건만 오늘은 확실히 달랐다. 그 다름은 바로 까치집. 뽕나무에 까치집이 있는 거야 아는데 하나인 줄 알았는데 둘이 아닌가. 세상에! 둘이라니? 어떤 나무든 까치가 두 채를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거긴 큰 전봇대가 서 있고 전선이 지나가기에 한전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자리인데...

  그랬다. 아마도 지난해 여름부터 지었으리라 짐작하나 그동안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져 안 보이다가 나무가 옷을 완전히 벗으니까 드러냈으리라. 금산 할머니 댁 까치집을 보니까 문득 십여 년 전 우리 집 감나무에 지어놓은 까치집 철거 장면이 떠오른다.
  혹 그때 일 적어놓았나 뒤적이니 한 편 보였다. 이럴 때는 참 다행이다. 봄이 되면 글 쓸 거리가 늘어나지만 아직은 찾기 어려운 참이던 터. 계절을 보니 4월 초다. 한참 봄꽃이 피고 나무에 물이 적당히 올라 빛깔 좋을 즈음인데 왜 그랬을까?


(뽕나무 위 까치집 두 채)



  (2) 십여 년 전 우리 집 감나무 위의 까치집 관련 글에서

  시골에 살아본 경험이 없더라도 며칠 머물러 본 사람이라면 도시보다 일찍 일어나게 된다. 그 이유는 보통 세 가지. 첫째 새가 우는 소리, 둘째 닭이 우는 소리, 셋째 새벽부터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 때문이다.
  이 중에서 새 소리를 들으며 눈 뜬다면 어마어마한 행운이 아닐 게다. 허나 산골 마을에 살고 있으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두둑 후두둑", "호로롱 호로롱", "쑤꾹 쑤꾹", "삐쭈 삐쭈", "삐요 삐요", "삐비 삐비", "찌이 찌이 찌이", "찌리 찌 찌리 찌" 등

  솔직히 난 소리만 듣고 어떤 새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아니 새 소리를 듣고 구별 못할 뿐 아니라 직접 새를 보고도 무슨 새인지 이름 아는 경우가 아주 적다. 그래서 가끔 글쟁이들의 글 속에 나오는 '이름 모를 새'니, '이름 모를 꽃'이니, '이름 모를 나무'니 하는 표현을 경멸하면서도 종종 쓴다.


(감나무 위 까치집 한 채)



  백과사전을 뒤져 보면 봄에 우는 새로 제비, 참새, 까치, 꿩, 멧비둘기, 소쩍새, 쏙독새, 파랑새, 밀화부리, 꾀꼬리, 물까치, 호랑지빠귀, 찌르르기, 후투티, 벙어리뻐꾸기, 휘파람새, 청호반새 등이 나오지만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이 훨씬 더 많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새소리는 다섯 마리 정도다. '짹 짹 짹 짹'하고 요란하게 울어대는 참새야 다 들어 아실 터. “삣 삐요코 삐요”나 “호요요 요요” 하고 아주 예쁜 소리로 우는 꾀꼬리와 다 아는 까치, 까마귀, 뻐꾸기 소리다.

  이 녀석들 모두 아침잠을 방해하는 건 아니다. 이 중에서 특히 '까악 까악' 하고 요란히 울어대는 까치 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 녀석의 울음소리는 다른 새에 비해 훨씬 선이 굵고 높다. 소프라노와 테너를 섞어놓아 들으면 이부자리에 계속 누워 있을 수 없다.
  우리 집에는 '나무 우량아 대회'에 나갈 재목이 되는 감나무와 뽕나무가 있는데, 감나무 위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감나무에 까치집이 있다 하니 우리 이사 온 뒤 까치가 세 든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사 오기 전부터 이미 집을 짓고 살았으니 우리가 반대로 세 든 셈이다.




  우리 집 감나무는 참으로 크다. 그 크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높이는 10m쯤 되고, 둘레는 어른 둘이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다. 그러니 붙은 잎사귀와 달린 감의 무게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헌데 문제는 이 감나무가 재작년부터 뿌리 쪽이 썩어가더니 구멍이 점점 더 커져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되었다.
  그동안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썩어가는 뿌리 쪽에 무균흙(황토나 백토)을 채워 넣으면 더는 부식이 진행되지 않을 거라 했으나 처치가 잘못됐는지 계속 썩어가는 게 아닌가. 이제 곧 나뭇잎이 달리고 또 5000개 가까이 감까지 달리게 되면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테고...

  그래서 결정해야 했다. 감나무를 자르기로. 다 잘라낼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높이를 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대로 뒀다 태풍이 와 견딜 수 없어 넘어지면 전봇대는 물론 아랫집까지 덮치게 된다.
  감나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자르면 그만이나 그 위에 터를 잡은 까치집 처리가 난감하게 된 것이다. 까치집이 감나무에서도 높은 곳에 지어져 있으니 나무를 자른다는 말은 까치집을 없앤다는 말과 같다.


(까치집 제거 장면 - 구글 이미지에서)



  까치가 행운을 불러오는 길조(吉鳥)에서 어느 순간부터 해조(害鳥)로 바뀌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녀석이 사과, 배, 포도, 감, 블루베리 같은 과실을 쪼면 손실이 엄청나고, 당근, 토마토, 시금치 등의 밭작물도 지나가면 수확량이 팍 떨어진다.
  그리고 다른 조류 알이나 파충류도 잡아먹어 지역 고유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고, 전신주에 만들어진 까치집은 정전 사고를 일으켜 공장 가동 중단 등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화재의 위험까지 낳는다.

  하지만 내게 까치는 해조도 길조도 아닌 그냥 반려조(伴侶鳥 : 반려견 반려묘처럼)라 할까. 내 집에 녀석이 들어온 게 아니라, 내가 녀석의 집에 들어왔기에 좀 봐 달라고 사정해야 할 판이다. 쫓아내선 안 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새인 셈이다.
  고민하다가 우리 마을 나무타기 고수인 양산댁 어른께 부탁했더니 "올라가 자르는 건 문제가 아닌데 까치집이…" 하며 말끝을 흐리신다. 아무리 하찮은 새집이라도 집은 집인데 '어떻게 함부로 부수느냐'는 말씀이다. 옳은 말이다.

  특히 요즈음이 산란철인데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 날아다닐 때가 지나면 자르자고 하신다. 그러다 감나무 뿌리를 한 번 더 보고 오시더니 "아 놔두면 안 되겠는데…" 하셨다. 그리고 까치집은 무너졌다.




  (3) 굴러온 돌이 주인 행세하다니


  우리가 이 마을에 집을 짓지 않고, 마을길도 전봇대도 세우지 않았으면 까치는 그냥 그 자리에 살아도 아무 탈 없었을 게다. 만약 감나무 뿌리가 썩어 쓰러지면 동물의 본능상 제가 먼저 알고 피할 테고. 주변에 높은 나무들이 많으니 또 지으면 될 터.
  헌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처럼 먼저 까치집을 철거했으니…. 미안한 마음에 다시 한번 까치집을 올려다보았다. 까치는 아무 나무에나 집을 짓지 않는다. 높으면서도 튼튼한 나무라야 한다. 그래야 천적인 고양이나 뱀으로부터 알을 보호할 수 있으니...

  전봇대에 집 짓는 까닭이 거기 있다. 사람들이 집을 지으면서 자꾸만 높은 나무를 베어내 버리니 까치가 집 지을 안전한 장소가 전봇대밖에 없다. 금산댁 할머니네 뽕나무에 지은 까치집 두 채도 한전에서 보고 갔다니 얼마 안 있어 곧 파괴되리라. 참 안타깝다.
  까치의 먹이는 새알, 쥐, 올챙이 등 동물성 먹이와 쌀, 콩, 감자, 사과, 배, 복숭아, 포도,등 식물성 먹이 모두를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다. 허나 사람들이 먹다 버리는 음식물 찌꺼기가 주요 먹이가 된 지 오래다. 즉 인간 곁에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불편하다고 그들의 집을 부수니 까치는 이제 어디에다 집을 지어야 할까?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7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