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 부는 날을 일기로 쓰는 것을 넘으려고 현재진행형으로 투표하는 것을 넘으려고 광장의 집회에 참석한다
많은 것을 배우고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고 나의 절감분을 찾으려는 것이다
돌멩이 같은 분노를 집어던져 울타리에 갇힌 나의 행복을 깨우려는 것이다 — [올해의 좋은 시](2016년)
#. 맹문재 시인(1963년생) : 충북 단양 출신으로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시인의 아버지가 사북 탄광 노동자 출신이라는데 그분을 기리는 [사북 골목에서]란 시집을 펴냈으며,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
<함께 나누기>
2005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진이 한 그림을 분석한 결과를 내놓자 세계 인문학계가 잠시 술렁이었습니다. 바로 모나리자의 야릇한 미소를 분석한 결과 전체 감정 요소 중 83%가 ‘행복’인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 17%의 감정 요소는 ‘혐오감’ 9%, ‘두려움’ 6%, ‘분노’ 2%인 것이라 덧붙였고.
가장 주목받고 논란 많은 그림이다 보니 여기서 얻은 결과가 심리적ㆍ 심미적 이론에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이라 이름 붙였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봐라, 모나리자는 무척 행복한 여자구나.” 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 “모나리자도 100% 행복하지 않구나, 그래서 조금 위안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모나리자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감은 83퍼센트"
사람이 80세를 살면서 행복한 날이 83%라면 66년이 행복하고 나머지 14년이 불행하다는 수치가 나옵니다. 이런 삶이라면 행복하다 해야겠지요. 그러니 부정적인 혐오감 9%, 두려움 6%, 분노 2% 정도라면 그냥 넘겨도 된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모나리자가 오묘하고 행복한 미소를 띠는 것은 / 행복감만이 아니라 / 혐오감과 두려움과 분노가 있기 때문"
'오묘하고 행복한'에 주목합니다. 특히 '오묘함'에. 이 표현이 나오는 까닭은 혐오감과 두려움과 분노가 따르는 미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17%의 부정적 측면이 있어 모나리자의 미소가 현실적이고 건강해서 사람의 마음을 끈다고 봐야 할까요?
"나는 2퍼센트에 기운다"
시인은 행복 83, 혐오감 9, 두려움 6을 합친 98%보다 분노 2%에 더 방점을 찍습니다. 왜 그럴까요? '혐오감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생각하거나, 두려움을 강물에 그냥 흘려보내거나, 행복을 관념적으로 찬양할 수 있지만' 두려움은 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람 부는 날을 일기로 쓰는 것을 넘으려고 / 현재진행형으로 투표하는 것을 넘으려고 / 광장의 집회에 참석한다"
쉬운 시인 줄 알고 덤벼들었다가 이런 벽에 막혀 잠시 주춤합니다. 시인의 의도는 알겠는데 해설하려니 힘들군요. 일기 씀의 목적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에 있고, 투표는 민주시민의 기본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허나 둘 다 소극적 참여라면 집회 참석은 적극적인 분노의 표출입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고 / 나의 절감분을 찾으려는 것이다"
군자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운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논어에서 말합니다. 의롭지 않은 일을 보면 지적하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군자에게 분노는 휴대품과 마찬가집니다.
"돌멩이 같은 분노를 집어던져 / 울타리에 갇힌 나의 행복을 깨우려는 것이다"
그래서 83%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기보다 2%의 분노를 찾는 사람이 되기를 시인은 원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니 저도 제 행복만 찾으려 했고, 실천보다는 배움에만 몰두했고, 분노에는 등한히 한 것 같아 참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