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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23. 2024

목우씨의 첫사랑편지(7)

제7화 : 첫사랑의 편지(7)

@. 제게 학교와 학생은 어느 때든 첫사랑이었고, 그때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첫사랑의 편지입니다.

  당시 여고 1학년 소녀가 보낸 편지인데, 읽으면서 잠시 그때 추억에 잠깁니다.


         * 첫사랑의 편지(7) *


  선생님 읽어주십시오.

  해변의 모래알들이 알알이 반짝이던 낮이 지나고 황혼과 해그림자를 맞이했습니다.
  온 누리를 뒤덮던 푸른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고 연이어 적막이 대지를 맞이했습니다.

  바닷가엔 차가운 모래를 디디며 걷는 소녀의 발엔 차가움이 스며듭니다.
  저 멀리 보이는 아기자기하고 정다워 보이는 텐트들이 줄지으며
어두운 모래사장엔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유행가 소리가 드높습니다. 고요한 적막의 바닷가에 진동하는 노랫소리...

  선생님!
  그간 몸 건강히 잘 계시겠죠.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친구랑 둘이 책 보고 있으니까 동생이 오더니만 손을 내미는 거예요. 왜 그러냐니까 선생님 이름을 대면서 아느냐고 하잖아요. 얼마나 기뻤는지... 달라니까 돈과 교환하자는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선생님!
  추천해 주신 글귀는 감사합니다. 답장해 주신 데도 감사하구요. 처음엔 별로 기분 좋은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고마워요. 전 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알고 있다는 게 행복해요.
선생님 보통 때 사용하던 말을 그대로 적으려니까 당연히 소홀해질 수밖에요. 철자법에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되는 걸 가지고 신경을 쓰지 않아서 가지곤.

  선생님!
  거제도로 캠핑 가셨다구요. 검게 탄 얼굴, 타지 않으셨어요? 제 상상헨 많이 타셨을 겁니다. 내 시야에 선생님 얼굴을 그려봤어요. 갑자기 꾹 꾹 웃음이 나와요.
  재미없었다니 실망이에요. 재미있었으면 선생님께서도 첫 교단에 선 여름방학 기억을 뚜렷하게 생각하실 텐데 안 그러세요? 더구나 학생들과 말이에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먼 훗날 추억도 되길 거구요.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요번에 재미없었던 것만큼을 포함해서 재미있으셔야 해요.

  선생님!
  제가 편지를 할 때 생각하길 답장 쓸 것이 밀려서 무척 바쁘겠구나 생각했는데, 사실 편지를 부치고 난 다음 날부터 편지 온 날까지 밖에 나가다 우체통을 쳐다보고 들어올 때 쳐다보고 하루가 지겨우리만큼 기다려졌어요. 우체통 보는 버릇도 생겼구요.





  선생님!
  요즘 학원에서 정은이 자주 만나요. 무척 세련되었어요. 말씨도 예쁘게 하구요. 어리광 부리는 건 여전해요. 가끔은 쥐어박아 주지요, 뭐. 너무 그럴 땐 얄밉기까지 하거든요.
  부기 선생님께서 저에게 애교가 만점이라고 하시지만 정은인 못 당하겠어요. 그럼 난 문학에 대해서 질문을 조금 하면 금방 울상이에요. 요 귀여운 것을 울려서야 쓰겠어요. 귀엽게 봐줘야죠. 윤정인 만날 때만 죽겠다는 소리만 연발. 아이 어떡하죠. 오빠 잘 있냐는 소리는 항상 하구요.

  선생님!
  아침저녁엔 날씨가 제법 쌀쌀하죠. 감기 조심하세요, 선생님 여름방학 얼만 남지 않았지만 뜻있게 보내세요,
  선생님 이만 펜을 놓을까 합니다. 몸 건강히 안녕히 계셔요.

           78. 8. 10日 21시 37.38초





  <함께 나누기>

  혹시 편지지 오른쪽 맨 위 글자 보이십니까? 저도 어제 다시 읽다가 발견한 것인데 첫 장이 ‘물’, 둘째 장이 ‘망’, 셋째 장이 ‘초’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잊지 마세요’란 뜻의 물망초를 넣었군요. 예전에는 이런 형태로 표시했나 봅니다.
  내용 속에 나오는 학생들과 해수욕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세 명인가 네 명인가가 방학 직전에 찾아와 거제도 구조라 해수욕장 가고 싶은데, 부모님이 자기들끼리 가면 절대 허락하지 않으나 선생님이 함께 가 주시면 허락해주신다나.

  그때 한 번 '쓴 경험'을 한 뒤로 두 번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나 사내들이 우리 애들 노는 곳에 와 집적대는지... 저를 믿고 맡긴(?) 부모님 생각에 혹시나 무슨 일 생길까 봐 텐트 쳐 주고 밤에는 자지 못한 채 불침번 서야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차로 이동하면 금방인데 그때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또 숙소는 없다는 정보에 텐트 두 동 빌려서 갔는데... 그때 그 애들이 돌아가 친구들에게 재미있다고 떠벌려서 다른 애들도 자꾸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느라 혼이 났습니다.

  편지 쓴 소녀랑 구조라 갔던 소녀들 다들 잘 살고 있겠지요. 그러길 잠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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