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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2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85)

제85편 : 조태일 시인의 '달빛'

@. 오늘은 조태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달빛
                                   조태일

  달빛 속에서 흐느껴본 이들은 안다

  어째서 달빛이 서러운 사람들을 위해
  밤에만 그렇게 쏟아지는지를

  달빛이 마냥 서러워
  새들도 눈을 감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세상을 껴안을 때
  멀리 떠난 친구들은 더 멀리 떠나고
  아직 돌아오지 않는 기별들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듯 멀어만 가고

  홀로 오솔길을 걸으며
  지나온 날들을 반성해 본 사람들은 안다
  달빛이 서러워 오늘도
  텅 빈 보리밭에서 통곡하는
  종달새들은 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세상을
  힘껏 껴안으며 터벅터벅
  걷는 귀갓길이
  왜 그리 찬란한가를 아는 이는 안다
  -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2](2015년)

  #. 조태일 시인(1941년 ~ 1999년) : 전남 곡성 출신으로,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이 시인의 이름 앞에 ‘저항시인’, ‘민족시인’이란 접두사가 붙습니다. 군사정권에 맞서 싸우며 서민의 삶을 시로 표현한 시인이라 그렇습니다.

  살아 계시는 동안 '소주에 밥 말아 먹는다'는 풍문을 낳은 시인, 그분을 기리는 '조태일문학상'이 2019년 제정되었습니다.




  <함께 나누기>

  조태일,
  제가 처음 이 시인의 시를 만난 건 물론 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나온 「국토서시(國土序詩)」를 가르치면서였죠. 그때 무척 선 굵은 시를 대하면서 ‘아, 이렇게 시를 쓰는 시인도 있구나!’ 하며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햇빛'과 '달빛'은 대조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는 낮에 비추고 다른 하나는 밤에 비추기만 다를 뿐. 물론 차이는 존재합니다. 햇빛은 자기 빛이 삼라만상에 두루 비치기를 바라며 빛을 냅니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동물도 식물도 다 같은 혜택을 받습니다.
  헌데 달빛은 어둠에 살기를 원하는 - 또는 어둠에 살 수밖에 없는 - 존재를 향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가난한 이들이나 소외 받는 이들, 동물이라면 눈이 퇴화하여 밝은 곳보다 어둠에 적응한 것들을 향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어째서 달빛이 서러운 사람들을 위해 / 밤에만 그렇게 쏟아지는지를”
  달빛은 그렇지요, 서러움에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을 향하지요. 서럽고 서러워서 그 서러움을 해소 못하는. 가끔 외로운 이들을 향해서 달빛은 쏟아지기도 합니다. 아파서 괴로워서 흔들리는 사람을 향해 쏟아짐은 물론.

  “멀리 떠난 친구들은 더 멀리 떠나고 / 아직 돌아오지 않는 기별들도 / 영영 돌아오지 않을 듯 멀어만 가고”
  살다 보면 그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듯이 깊이 우정을 나누던 벗도 떠나고,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많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럴 땐 달빛이 마냥 서러워 새들도 눈을 감습니다. 그래도 달빛은 그런 새 같은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더욱 환한 빛을 그에게 줍니다.

  “홀로 오솔길을 걸으며 / 지나온 날들을 반성해 본 사람들은 안다”
  반성한다는 말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전제가 필요한 말입니다. 무슨 잘못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잘못을 반성하며 오솔길을 걷습니다. 아마 그때의 달빛은 오솔길을 내리비추며 유달리 빛날 겁니다. 그리고 그가 반성하는 말을 다 들어줄 겁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세상을 / 힘껏 껴안으며 터벅터벅 / 걷는 귀갓길이 / 왜 그리 찬란한가를 아는 이는 안다”
  그렇지요. 세상을 비관하고 세상을 원망할 때 달빛은 어김없이 그를 찾아옵니다, 어루만지러. 아무도 곁에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 달빛은 바로 곁에 옵니다. 그러니 터벅터벅 걷던 그 길이 이젠 찬란하게 빛납니다.

  한 번쯤 달을 바라보며 흐느껴 운 경험 있는 이라면 이 시가 다가올 겁니다. 그럴 때 달빛의 어루만짐을 느낀 이라면 더욱 더. 오늘 밤에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달빛은 다가올 겁니다. 달빛의 어루만짐에 세상을 힘껏 껴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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