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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30. 2024

목우씨의 첫사랑 편지(8)

제8화 : 첫사랑의 편지(8)

@. 제게 학교와 학생은 어느 때든 첫사랑이었고, 그때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첫사랑의 편지입니다.

  당시 여고 3학년 학생이 보낸 편지인데, 읽으면서 잠시 그때 추억에 잠깁니다.


      * 첫사랑의 편지(8) *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나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을 느끼며, 저의 부족함을 느끼며, 어리석음을 느끼며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저의 병적인 정신상태가 결국 오늘 같은 이 부질없는 발언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닌 어딘가 한 부분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지금까지의 자라온 과정, 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던 작은 욕망. 세상에 대한 나에 대한 불만 덩어리가 녹는 것 같을 땐 한 번씩 저를 당황하게 or 실의에 빠지게 합니다.

  선생님은 제가 한 말을 진심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요. 또한 저를 욕하고 계셔도 전 탓할 수 없습니다. 지금쯤 저에 대한 미운 감정이 마음속에 자리잡혀 있겠지요? 지금 저의 심정은 그 미움이 들어앉지 못하게 쫓아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아! 어리석고 가증스런 인간의 울음이여!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묻어버리려는 지극히 불쌍한 범인들의 심리 때문에... 나의 단점, 나의 큰 약점, 아무 뜻도 없이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결정해서 망설임 끝에 한 마디 한 말이...

  그때의 상황은 오직 그 대화 속에 나도 끼어들고 싶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그 다음 나올 대답은 생각도 않고 우둔한 나의 머리가 밉기도 합니다. 오늘 저의 아무 뜻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불쑥 튀어나온 말. 제가 한 말은 결코 선생님의 어떤 면을 봐서 경제 동물이라고 한 건 아닙니다.

  제가 선생님의 무슨 면을 얼마나 봤다고 감히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단지 그건 저의 순간적인 오판 때문이라고 어리석게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국어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께서 배워 주는 진리를 믿는 제가 뭣 땜에 그런 말을 불쑥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제 정신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그것만을 내 스스로 변명하면서 이렇게 감히 서신을 드립니다. 선생님의 넓은 아량으로...

  부족한 제자



  <함께 나누기>


  45년 전의 편지를 읽으면서 가끔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입니다. 편지 쓴 소녀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제게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으니...
  다만 그때는 점심 식사 후 밖에 나가 운동장 쪽 벤치에 앉아 있으면 소녀들이 주변으로 몰려들고, 그럴 때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편지 쓴 소녀가 저더러 ‘경제 동물’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문맥으로 보면 돈을 밝히는 사람이란 뜻 같은데...

  어쩌면 여러 친구들 가운데서 제 시선 끌기 위해 무심코 던진 말이 실수로 잘못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좀 난감함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그때는 교사 초임이라 순수했을 텐데...
  지금쯤 그 소녀도 할머니가 되어 그때 일을 까맣게 잊고 살겠지요. 만나 그때 일을 물은들 대답할 수 없을 테고. 이 소녀는 한 5년 전까지 연락을 주고받곤 했습니다. 이런 편지가 있는 줄 알았으면 만나는 장소에 들고 가 물어보았을 텐데.

  이렇게 또 한 편 첫사랑의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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