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2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89)

제89편 : 이성복 시인의 '밥에 대하여'

@. 오늘은 이성복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원래 시는 1과 2로 이어져 있는데, 1은 생략하고 2만 싣습니다)


       밥에 대하여
                             이성복

  2.
  밥으로 떡을 만든다
  밥으로 술을 만든다
  밥으로 과자를 만든다
  밥으로 사랑을 만든다 애인은 못 만든다
  밥으로 힘을 쓴다 힘 쓰고 나면 피로하다
  밥으로 피로를 만들고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만든다
  밥으로 빈대와 파렴치와 방범대원과 창녀를 만든다
  밥으로 천국과 유곽과 꿈과 화장실을 만든다 피로하다 피로하다 심히 피로하다
  밥으로 고통을 만든다 밥으로 시를 만든다 밥으로 철새의 날개를 만든다 밥으로 오르가즘에 오른다 밥으로 양심가책에 젖는다 밥으로 푸념과 하품을 만든다 세상은 나쁜 꿈 나쁜 꿈 나쁜
  밥은 나를 먹고 몹쓸 시대를 만들었다 밥은 나를 먹고 동정과 눈물과 능변을 만들었다, 그러나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92 초판, 2023년 속간)

  #. 이성복 시인(1952년생) : 경북 상주 출신으로 '77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고, 제4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계명대에 봉직하다 퇴직했으며,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젊은 시인들이 그의 시를 많이 공부한다고 함




  <함께 나누기>

  ‘밥’을 글감으로 시를 쓴 시인이 참 많습니다. 찾아보니 유ㆍ무명 시인들 줄 잡아 쉰 명 가까이 썼더군요. 이름 난 시인만 해도 안도현, 정호승, 김용택, 함민복, 이해인, 이재무, 최승호, 황지우, 정일근, 손택수, 복효근, 문정희...
  그럼 왜 이리도 많은 시인들이 밥을 글감으로 시를 썼을까요?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일이 밥 먹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 부자도, 노숙자도 밥을 먹습니다. 아니 먹어야 합니다. 그 밥상은 다를지언정. 그래야 살기 때문이지요.

  시로 들어갑니다.

  앞 세 시행은 다 아실 겁니다. ‘밥으로 떡을 만든다’ ‘밥으로 술을 만든다’ ‘밥으로 과자를 만든다’. 헌데 다음 시행에 가면 머뭇거리게 됩니다.

  “밥으로 사랑을 만든다 애인은 못 만든다”
  차라리 밥으로 사랑을 만들고 애인도 만든다든지, 아니면 밥으로 사랑과 애인 둘 다 못 만든다든지 하면 짐작 가겠는데... 밥으로 베푸는 사랑을 펼칠 수는 있으나, 밥('물질')으로 진실한 사랑을 만들 수 없다란 뜻으로 새깁니다.

  “밥으로 힘을 쓴다 힘 쓰고 나면 피로하다 / 밥으로 피로를 만들고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만든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이어지는 수사법을 ‘연쇄법’이라고 배웠을 겁니다. 지금도 그런 표현 쓰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부분에 주의하면 ‘밥으로 비관주의를 만들고 아카데미즘을 만든다’가 됩니다. 참 난해합니다.
  다만 세상의 모든 일은 밥으로 인해 일어난다고 말하려 함인지 시인은 계속하여 ‘밥으로 ~~를 만든다’는 형태로 이어갑니다. 그 가운데 '피로하다'란 말이 자주 끼어듭니다. 밥으로 피로를 만든다는 표현은 그만큼 밥벌이 하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새기면 되겠지요.

  “그러나 /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밥이 만들어 내는 것은 피로와 고통과 푸념과 하품과 몹쓸 시대와 동정과 눈물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밥이 나를 먹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희망은 못 만들 거라 화자는 그렇게 단정합니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

  밥이 법이란 말뜻엔, 법이 없으면 참 좋지만 꼭 필요하듯이, 밥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으나 그럴 수 없어 먹는다는 뜻도 되겠고, 또 밥이 법이 되고 나아가 국법이 된다는 표현엔 언어유희를 담았는 듯합니다. '밥 - 법, 국밥 - 국법'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이런 부정적인 밥도 일단 밥이란 말을 입에 올리자 다시 목이 멥니다. 왜냐면 밥이란 말엔 언제나 어머니가 따라다니며, 밥에는 ‘젊으실 적’ 어머니 얼굴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가장 치열한 분야는 밥그릇 싸움입니다.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밥 때문에 남의 생명을 빼앗기도 합니다. 전쟁도 선거도 대부분의 갈등도 밥그릇 싸움에서 옵니다. 내 밥그릇만 소중하다고 여기기에 남의 밥그릇을 빼앗으려 듭니다.

  시인은 그래서 밥이 만들어내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밥, 내 배만 채우면 만사형통인 줄 알았건만 아직 배 곯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참 마음 아픕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8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