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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0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90)

제90편 : 김용택 시인의 '사람들은 왜 모를까'

@. 오늘은 김용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 [사람들은 왜 모를까](1997년)

  #. 김용택 시인(1948년 출생) : 전북 임실 출신으로 00농고가 최종 학력인데, 교사채용시험을 통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직. 1982년 [창작과비평사]를 통해 등단했고, ‘섬진강 시인’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제12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함께 나누기>

  아마도 ‘이 작품 본 적 있는데?’ 하실 분이 많을 겁니다. 여러 곳에서 많이 읽히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에 나오는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란 시구를 제목으로 한 산문집도 나왔으니까요.
  김용택 시인의 시는 내용도 읽기도 쉽습니다. 특히 운율이 잘 살아 있어 읽는 맛을 줍니다. 그러나 내용을 가만 솜솜 뜯어보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쉬우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게 바로 김용택 시의 매력인지 모르지요.

  제목 「사람들은 왜 모를까」에 잠시 눈길 줍니다.  나만 알고 있음을 자랑함이 아니라 마땅히 알아야 할 내용을 모름에 대한 안타까움이지요. 이 시는 솔직히 그냥 읽으면 쉬운 시입니다. 그러나 분석하려 들면 어려운 시입니다. 첫 구절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이 시행도 많은 분들이 책갈피에 끼어두고 꺼내 읽는 부분입니다. 이별이 손끝에 있다 함은 바로 곁에 다가왔다는 뜻이겠지요. 그럼 이별에 따른 서러움이 밀려올 텐데 저 멀리서 온다고 합니다. 빨리 와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건만 고통을 더 주려는 듯 멀리서 천천히 옵니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그렇죠, 아무리 낙천적 사람이라도 그만이 지닌 고독을 누가 알겠어요? 오히려 겉으로 느긋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 늘 쫓기는 심정으로 사는지도. 자연도 마찬가지지요. 한없이 화려해 보이지만 계절에 따라 고독이 따른다는 것을요. (사실은 그걸 보는 사람의 느낌이겠지만)
  벌거벗은 겨울이야 말할 것 없지만, 새싹 움트는 봄도, 녹음으로 치장된 여름도, 온갖 빛깔의 옷을 갈아입는 가을도 외로울 때가 있겠지요.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모든 꽃은 흔들리며 아픔 속에서 피어납니다. 때로는 모진 바람을, 불볕더위를, 장대비를 맞으며 피어납니다. 바람 없이 뙤약볕 없이 폭우 거치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그런 아픔 속에 피어나기에 꽃이 아름답다고 하겠지요.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앞의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는 시행을 다르게 표현할 뿐 같은 내용입니다. 이별이 손끝에 닿으면서 고통 또한 꽃처럼 천천히 피어납니다. 이쯤 되면 고통을 괴로워하기보다 삶의 한 축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얼굴을 다 드러낸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인보다 뒤에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게 느껴지겠지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그러니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내 손발이 닿지 않는 곳에 그리움의 향기를 머금으며 머물러 있겠지요.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봄이 온다 하여 꽃이 그냥 피어나는 게 아닙니다. 겨울의 엄혹함을 견뎌냈기에 꽃이라는 결실을 얻게 됩니다. 이별, 아픔, 외로움, 서러움, 그리움 같은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일수록 더욱 이쁜 꽃으로 변합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만발한 꽃보다 필 듯 말 듯 살짝 벙근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가야 할 때를 알고 떨어지는 꽃잎들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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