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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05.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7)

제75화 : 진실은 벽 너머에 숨어 있네

   * 진실은 벽 너머에 숨어 있네 *



  <하나 - 사진이 감춘 진실>


  코로나가 한창이다가 한풀 꺾여 여행이 잠시 허용되었을 때 거제도에 아는 이들과 놀러 간 적 있다. 그곳은 여행사가 문을 닫게 되자 여행업을 하던 이가 자기 집에 단골을 초대해 하룻밤 묵게 하고 3식까지 헐값에 제공하는 그야말로 밑지는 장사였다.
  왜 이런 일 하느냐 물으니 나중에 세상 좋아져(코로나가 잠잠해져) 여행 갈 때면 자기를 이용해 주지 않겠느냐는 답. 그러니까 장래를 위한 투자라 할까. 나는 낚시할 수 있다는 점에 혹했고, 아지매들은 거기서 찍은 멋진 사진에 혹했고. 어쨌든 이리저리 혹한 아자씨와 아지매들이 짐을 싸들고 갔다.


(아래에 비친 물에 유의해 보세요)



  다른 건 일일이 적지 않겠으나 거기서 겪은 작은 충격을 전하고자 한다. 아지매들이 혹한 예로 든 사진을 보자. 누구나 봐도 황홀할 만큼 깨끗한 호수(?)를 배경으로 하여 찍은 사진. 그러니까 피사체가 잘났든 못났든 이쁘게 나올 수밖에 없는 비경 속의 명작.
  우리는 그 현장에 이르러 잠시 멍했다. 그냥 흔한 갯바위였고 특별히 주변에 유명 관광지도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여행가이드가 마땅한 자리를 찾았는지 우리를 인도한 곳은 살짝 파여 아주 적게 물 고인 갯바위 앞.

  설마? 하다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세숫대야 정도 너비에 담긴 물이 준 어마어마한 효과. 우리가 알고 있던 호숫가에 찍은 사진도 바닷물이 잠긴 포구에서도 아닌 고작 손바닥 네댓 넓이의 물에 반사돼 사진은 그렇게 걸작(?)이 돼 나왔으니...
  (그는 가끔 들통도 갖고 다닌다고 했다. 혹 패인 곳에 물이 없으면 물을 퍼와 담아서 사진 찍으려고)


(언뜻 보면 넓은 호수 같으나  고작해야 세숫대야 두 개 너비의 물)



  요즘도 날마다 마을 한 바퀴를 돈다. 걸으면 건강에 좋다는 점 말고 글감을 얻는다는 이득도 있어 가능한 집을 나선다. 큰길까지 갔다가 돌아와 윗마을로 올라갔다 내려와, 마지막 코스인 계곡 옆을 끼고돌면 폭포(?)가 보인다. 스스로 ‘달내폭포’라 이름 붙인 곳.
  그런데 앞에서 폭포 뒤에 ‘(?)’를 붙였으니 궁금하리라. 물 떨어지는 곳을 모두 폭포라 하면 폭포가 맞지만 실제 폭포라 하기엔 너무 빈약하다. 해도 사진으로 찍으면 그럴듯하다. 아는 이에게 보여줬더니 우리 마을로 구경 와 달내폭포를 보겠다는 사람도 꽤 되니까.






  허나 그 이유 때문이라면 말린다. 폭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론 홍수에 대비하려 깐 콘크리트 바닥이 깨져 그곳으로 물이 집중 쏟아지니 폭포처럼 됐다. 높이라야 고작 1m 조금 넘을까, 그러니까 폭포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진상으론 분명 폭포다, 물소리조차 제법 우렁찬.
  언덕 위에서 보면 콘크리트가 부서져 어쩔 수 없이 만들어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건만 사진만 보면 폭포인 것처럼 느껴진다. 앞에 예로 든 거제도 갯바위에 담긴 한 세숫대야 분량의 물이 준 효과와 달내폭포가 다 겉으로는 그럴듯하다.


(높이와 폭이 고작 2m 이내인 폭포)



  <둘, 초등학교 교과서가 감춘 진실>


  한때 우리나라 서점 책장을 메웠던 베스트셀러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란 책이 생각날지 모르겠다. 그렇다, 우리의 인성에 가장 영향 주는 지식은 유치원(옛날로 치면 초등학교)에서 배웠다는 뜻이다.
  내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내용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하나가 ‘토마스 에디슨’에 관한 일화. 정확히는 기억 안 나나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어릴 때 에디슨이 알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걸 보고 신기해하자 그의 어머니가 암탉이 달걀을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태어난다고 얘기해 준다. 어느 날 저녁때가 다 됐는데도 아들 에디슨이 집에 오지 않아 어머니가 찾아나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닭장에 들렀다가 쪼그리고 앉은 아들을 발견했다.




  까닭을 물으니 자기도 어미닭처럼 달걀을 오래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태어난다 믿어 그렇게 하고 있었다나. 그 일화의 끝은 이랬다. 그처럼 어느 한 가지를 보면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관찰력에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끈기를 지녔기에 발명왕이 되었다고.
  어릴 때 지녔던 꿈 하나가 ‘에디슨 같은 발명왕이 되고 싶다’였으니 그 교과서 내용이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머릿속을 꽉 채운 존경하는 발명왕 에디슨에 대한 환상은 후배 과학자인 ‘테슬라’와 직류전기와 교류전기에 얽힌 논쟁을 읽으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테슬라의 영특함을 시기 질투하여 자기가 주장하는 직류를 관철하려 온갖 비열한 짓을 다했으니.
  (에디슨과 테슬라에 관한 논쟁은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데, 지금 전기자동차의 효시로 일컫는 ‘테슬라 자동차’가 바로 그 과학자의 이름을 땀)


(왼쪽 테슬라, 오른쪽 에디슨)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얻은 두 번째 환상은 이스라엘 국민성에 얽힌 일화다.


  세계에서 이스라엘 국민만큼 뛰어난 민족이 없으며, 무엇보다 교육을 중시하는 민족이며, 국가를 위해서는 하나로 똘똘 뭉치는 국민성. 특히 1800년간(135년 ~ 1948년) 남에게 빼앗겼던 자기 나라를 찾은 의지와 신념과 불굴의 투지를 지닌 민족.
  그런 이스라엘 국민을 본받자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죽 이어 나왔다. 은연중 내 마음속에도 ‘이스라엘 국민성을 본받아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자리하면서 [탈무드] 등 이스라엘 관련 서적을 열심히 사서 읽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으로 인해 민간거주지에 치솟는 연기)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1800년이나 나라 없이 유랑하다 마침내 자기네 국가를 세운 멋진(?) 민족 말고, 1800년이나 주인으로 있다가 졸지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은 그럼 어디에? 바로 그들이 팔레스타인이다
  우리가 살던 집에 갑자기 엉뚱한 주인이 나타나 원래 우리 집이니 무조건 나가라고 한다면? 아니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던 땅인데, 그보다 더 오래전 땅 주인이었다면서 나타나 나가라고 한다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이 끝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하마스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죽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허나 이제 초등학교부터 제법 성인이 될 때까지 갖고 있던 유태인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께 이스라엘 방위군의 드론 공격으로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 차량에 탄 자원봉사자와 의료인 7명이 숨졌다는 뉴스가 떴다. 서방 언론은 물론 각 나라 정치인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시점에 유태인은 아직도 다른 나라 국민의 선망이 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드론 공격으로 박살난 구호단체 트럭)



  <셋, 진실이 드러난다면>


  벽 너머에 숨겨진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앞에 예로 든 거제도 갯바위 사진과 달내폭포는 진실이 드러난들 ‘에이 속았네!’ 한 마디로 끝나리라. 허나 에디슨과 이스라엘에 관한 내용은 한 사람 한 나라의 모습을 알기 전까지 모르고 지냈다가 그 실체를 알게 되면...
  앞으로 얼마나 벽 너머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날 것인가? 어떤 경우는 정말 알고 싶지 않다. 특히 내가 알고 있던 진실과 반대일 경우엔.

  *. 앞 사진 넷 말고는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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