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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06. 2024

목우씨의 첫사랑 편지(9)

제9화 : 첫사랑의 편지(9)

  @. 제게 학교와 학생은 어느 때든 첫사랑이었고, 그때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첫사랑의 편지입니다. 

  44년 전 부산 모 여중에 근무할 때 받은 걸로 보이는데, 당시 여중 2학년 학생이 보낸 편지입니다.



         * 첫사랑의 편지(9) *


  정OO 선생님께--


  만물이 소생하고 노곤노곤 거리는 이 봄날에 별고 없이 잘 지내는지요? 선생님, 고민이 있어 이렇게 펜을 듭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받고 있어요.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애들이 오해하고 있는가 봐요. 선생님 어떡하면 좋아요.
  (솔직히 말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지금 친구가 이성 교제를 하고 있어요. 나는 아직 어려서 모르지만 그 앤 절 믿고 상대방 얘기해 줬어요. 그런데 저는 경숙이에게 말해버렸어요. 우리 반 애들은 반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소문이 엉뚱하게도 나쁜 풍문이 돌아서 그 애들이 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전 어떡하면 좋아요. 선생님께선 그러셨죠. 고민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셨죠. 막상 말하자고 하니 어쩐지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어떻게 좀 좋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그 애와 아무 부담 없이 사귀고 싶었는데 엉뚱한 오해로 그애와 나 사이에는 원수처럼 되어버렸어요. 어떡하죠?

  지금 제 마음은 찹찹하고 초조하고 복잡해요. 가슴이 답답해요. 전 선생님을 믿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 혼자만 알고 계셔요, 제일 무서운 게 선생님들이에요. 만약 우리 선생님께서 아셨다면 그애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요.
  저는 선생님을 흠모합니다. 그 누구 못지않게 말입니다. 선생님을 흠모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건 거기에 끼어들지도 못합니다.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싶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생님은 영웅이에요. 제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 하나입니다. 선생님의 웃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어요. 어쩌면 그렇게 천사같이 웃어요? 인자한 하느님 같았어요.

  선생님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 믿을 사람이 없어요. 친구도 없구 저는 지금 너무나 외로워요. 너무나 고독하답니다. 전 인생이란 단어가 신비해요. 삶의 행복, 삶의 기쁨, 인생관, 행복이란 단어들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가 봐요. 삶의 의욕 저에겐 그런 게 없어요. 그저 이대로 뿐이에요.

  선생님, 저에게 행복을 가르쳐 주세요. 저에게도 인간이란 칭호를 내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전 인간쓰레기 같아요. 공부도 못하고 키도 작고 무엇이든지 못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전 지금 하나의 쓰레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뿐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이 말은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 행복이 없어요. 그저 슬픔밖에 없어요. 하루살이 인생은 저에게 너무나도 길어요. 세상은 악마 같아요. 너무너무 지독해요.
  순박하던 사람이 어쩌면 그래요, 악마 같아요, 악마!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잘해주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바뀔 수가 있어요? 의심스러워요. 사람들이 무서워요. 이중인격자 같은 사람들. 겉으론 좋은 척 속으론 시커먼 마음이 가득차 있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 미워요.




  저는 누구든지 믿지 못하겠어요. 아!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 선생님 절 좋은 길로 인도해 주세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오해를 풀게 어떻게 좀 가르쳐 주세요. 꼭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에게만 물어보고 여쭙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띄워 보냅니다.

  제가 선생님에게 심하게 야단맞은 적이 있어요. 선미와 함께 그때 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벙벙했지만 지금은 대강 알겠어요. 선생님 저는 웃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무척 화를 냈어요. 그때 선생님 얼굴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요.
  선생님께서 심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땐 얼마나 섭섭했는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그때의 내 마음은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 마음이 그때와 꼭같아요. 그러니 저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세요.

  선생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정말 정몽주 님의 핏줄이세요? 저도 정몽주 님의 핏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경숙이에게 어쩌면 친척일 거라고 말했어요. 답장해 줄 때 꼭 적어주세요.

  흠모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면서 선생님께 항상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1980년 6월 7일 토요일
  선생님을 흠모하는
  2학년 7반
  - OO이가 -



  <함께 나누기>

  편지를 읽으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받던 소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지금의 저도 참 아픕니다. 제가 제대로 된 해결책 제시했는지, 그 덕에 소녀가 집단따돌림에서 해방되었는지, 모든 게 궁금합니다만 알 길 없네요.
  그리고 제가 무섭다고 했다간 또 인자하다 했다간 갈팡질팡하면서도 편지상담 의뢰를 한 걸 보니 당시 아이들 심정을 조금 알 듯합니다. 그땐 여고생도 이성 교제가 금기시 되었는데 여중생이 그런 일 있었다면. 만약 그런 소문이 담임선생님 귀에 들어갔다면...

  그 시절 학생부 교사로 교외지도 담당이라 합동생활지도 자주 나가 잘 압니다.  롤러스케이트만 타도 문제아로 취급받던 시절에 이성교제했다면 바로 정학 처분받던 시기였으니...
  부디 친구와 화해하고, 그 친구도 선생님들 모르게 지나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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